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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성 Nov 12. 2022

일기

대학원 면접. 다른 편으로 가기 위해 통과할  뿐이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와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기소개서부터 삐거덕거렸다. 나를 소개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출생지가 어디이고,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돌봄을 받았는지. 이런 것까지 써야 하는지 아리송했다. 그래서 포털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검색어 ‘대학원 자기소개서 쓰는 법’이라고 쓰고 엔터키를 ‘탁’하고 누르니 검색 결과가 주르륵 올라왔다. 다양한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대략 감을 잡았다. 잘 쓰려는 마음을 비우고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했다. 내가 왜 상담심리 공부를 하게 되었고, 공부하면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를 바탕으로 어떤 상담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썼다. 연구계획서는 먼저 전공 교수님들의 논문을 찾아 읽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논문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고 그와 연결된 연구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접수 하루 전날까지 수정을 거듭하다 당일 아침, 서류를 학교에 직접 제출했다.     


면접을 보기 이틀 전부터 나의 몸은 긴장했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불안감에 잠까지 설쳐댔다. 하지만 불안감 곁에 기쁨도 공존했다. 나의 길을 찾았다는 사실과 그 길을 잘 가고 있는 내가 대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면접일이 되었다. 검은색 슬랙스 바지와 흰색 블라우스, 겉에 검정 재킷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긴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단단히 묶고 현관 거울 앞에 섰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두 눈은 간절함과 진지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흔둘, 늦은 나이에 대학원 면접을 보기까지 숱한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많이 경험했고 많이 아팠다. 다른 편으로 가기 위한 문 앞, ‘온 힘을 다해 문을 열고 들어가리라’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OO대학교 교육대학원 면접대기실에 들어간 나에게 관계자분께서 물어왔다. 나의 이름을 말했더니 증명사진이 붙여진 수험표를 주었다. 수험표를 받아 든 나는 안내해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먼저 와있는 대기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아마도 면접 예상 질문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뜨거운 열정과 긴장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을 보니 나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보려고 가방에 넣어 두었던 면접 예상 질문지를 꺼냈다. 이내 긴장한 탓인지 글이 눈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빙빙 돌기만 했다. 종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차라리 호흡을 차분하게 하여 의식을 더 명료하게 깨어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조 면접실로 들어가겠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1조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에 힘을 주고 면접관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여유로운 몸짓에 반해 긴장감이 뱃속을 훑고 지나갔다. 호명 순서대로 면접실에 놓인 의자에 차례대로 앉았다. 내 이름은 두 번째로 불렸다. 두 무릎을 붙이고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의식이 멈춰버리지 않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두 분의 교수님이 맞은편에 앉아서 우리를 보고 계셨다. 눈이 마주쳤고 이내 첫 번째 질문이 들어왔다. “ OO대학교에 입학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작년 12월 인문 책방에서 ‘나를 위한 글쓰기’에 참여했다. 글쓰기의 핵심 목표는 ‘자기 성찰과 재탄생’이었다. 자신의 삶을 글쓰기로 재구성하면 관계의 재발견이 일어난다. 글쓰기를 하면서 마냥 아프기만 하고 힘들었던 시간이 생각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이라고 생각한 지나온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즐거움과 기쁨, 사랑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면서 더 깊게 나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적고 싶었다.     


몇 군데의 대학원을 살펴보던 중 OO 대학교 교수님의 자문화 기술지 연구 논문을 읽게 되었다. 몇 년 동안 연구자의 자기 관찰과 해석을 통해서 이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유의미가 있는지 이론과 연결해서 쓴 논문이었다. 인상적이었고 감동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글쓰기였다. 이것이 OO 대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던 이유였다. 나는 면접 마지막에 이야기했다. ‘협력적 자문화 기술지를 통해서 조각나 있던 나의 시간을 하나로 연결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라고.     


길게만 느껴졌던 면접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와 숨을 한차례 크게 들이쉬었다.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발표가 났고, 나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받아 들고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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