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내 생애 첫 비행기에, 첫 해외여행이었다. 하필 첫 해외여행이 유럽이라 제일 멀리 가본 게 서울 1박 2일이고 경상도에서 딱히 벗어난 적이 없던 나는 유럽의 엄청난 분위기와 풍경, 건물들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모든 길들이 비현실적이었다. 더 있고 싶은 곳을 일정 때문에 더 오래 있지 못해 아쉬웠던 순간도 있고. 말도 못 하게 아름다운 야경과 풍경에 놀랐던 순간들도 많았는데, 많은 세월이 지나서 더 많이 떠올리게 되는 건 여행에서 고생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다.
한 번은 리턴해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배를 타야 하는데 다른 도시로 가는 배를 타서 부랴부랴 물어 물어 내려서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왔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역에 맡겨둔 짐이 사라져 버리고 패닉 상태가 되었다가 다른 일행이 다음 행선지로 옮겨주었다는 연락을 받고 안심한 후 지친 몸으로 스위스로 가는 기차를 탔다. 망연자실해서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실화인가 의심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옥빛 호수가 나타나서 이건 그림인가 뭔가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기차를 탈 때는 정신도 없고 힘들어서 몰랐는데 도착지에 내려서 기차를 보니 내가 망연자실해서 탔던 그 기차가 알고 보니 알프스의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볼 수 있다는 골든패스 기차였던 것이다.
또 한 번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진실의 입을 찾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아니어서 지도앱을 보고 다니던 시절이 아니었다. 종이 지도를 들고 다니면서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물어보며 갔었다. 그런데 내가 잘 못 알아들은 건지 그들도 관광객이라 잘 몰랐던 건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여긴가 하고 걷다가 유명한 곳인 듯한 곳이 나타나 잠시 구경하고, 또 걷다가 여기도 유명한 곳인 것 같은데 하면서 이곳저곳을 다 찍고 마지막에 드디어 어렵게 진실의 입을 찾았었다. 38도가 넘는 엄청난 더위에 두 발로 로마 주요 관광지를 다 돌아보고 마지막에야 도착한 진실의 입에서는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사자 입에 손 넣어보자고 오래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 그냥 보고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짐했다. 로마는 뙤약볕에 엄청 고생하며 걸어 다녀서 더는 와보고 싶지 않다고. 후회가 없다고 말이다. 다시 가보고 싶지 않다는 맘은 여전하다.
그런데 당시에 고생스럽다고 생각했던 여행의 순간들이 지나고 나서는 내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나 예능의 에피소드처럼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미화되어 다시 자리 잡았다. 그 당시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 그런 마음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게 또 여행이 주는 반전이다. 훗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안줏거리가 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고생스러운 여행이 나중에 생각해 보면 더 좋다는 건 아니다. 편하고 좋았던 여행이 더 좋다. 다만, 여행은 고생스럽고 힘들었어도 지나고 나면 이상하게 더 얘기하게 되고 미화되는 매력이 있다. 그게 참 희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