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는 아마도 흑백이었던 것 같다. 흑백이 아니었어도 2도 인쇄[2가지 색을 사용한 책, 예를 들어 블랙과 사이안(블루)]를 한 책이었을 것이다. 바로 개념 정의가 '빡'하고 등장해서 흥미 유발 따위는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내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진심으로 봤던 적이 없으니 내용도 기억이 안 난다. 교과서가 흥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은 기필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어 나는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내가 교과서를 만들었을 때는 스토리텔링과 창의융합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개념을 설명할 때에도 실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로 흥미를 끌고 시작하는 방식이 유행이었다. 그랬다 해도 그렇게 흥미롭진 않았다. 교과서는 교과서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가졌던 '교과서는 재미없다.'라는 선입견이 이번에 아이가 배우는 수학 교과서를 보고 달라졌다. 출판사 이름부터 흥미롭게도 아이스크림미디어였다. 판형도 분명 교과서이긴 했다. 그냥 후루룩 넘겨보면 교과서는 교과서다. 그런데 머리말 부분이 이전의 교과서에서는 본 적 없는 형태였다. 보통 교육 서적의 머리말은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누구도 읽어보지 않을 말들과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머리말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 이 책의 머리말은 어린이 수학 그림책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장의 어미도 '~입니다.'가 아니라 '~이에요.', '~거예요.'처럼 부드러운 구어체이다. 이 수학책을 아이들에게 거부당하지 않을 재미있는 책으로 만들어보겠다는 편집자들의 엄청난 센스와 노력이 느껴졌다.
그 뒤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내용도 한 단원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같은 주제로 흘러가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삽화도 딱딱하지 않고 그림책 삽화처럼 귀여웠다.
물론, 문제가 나올 때는 이전 교과서처럼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건 교과서지 그림책은 아니니까 개념과 문제는 반드시 있다. 그렇지만 인형 놀이처럼 스티커로 코디를 해보는 부분이라든지 놀이 부분이라든지 흥미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여서 정말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교과서를 재밌는 만화책 보듯이 첫 장부터 차근히 읽어보는 학생이 잘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책 중에 교과서 만드는 일이 제일 까다롭고 힘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여러 종류의 책들을 편집해 봤지만 교과서는 정말이지 엄청난 노고가 들어가는 책이다. 그래서 앞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게 애써 만들어진 책이 참 재미없는 책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교과서가 이렇게 흥미로워지는 날도 오는구나 싶어 신기했고, 이 책을 만든 편집자분들을 한껏 칭찬해드리고 싶어졌다.
책을 좋아하는 아들이 이 수학 교과서를 보더니 믿을 수 없는 교과서라고 나와 같이 감탄했는데, 내가 감탄해서 그냥 따라서 감탄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수학 시간이 전보다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때, 이제 수학이랑 더 친해져 보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