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공녀다

길치이기 때문~

by 배초향

나는 지공녀이다


난 어떤 때 나를 생각하면 너무 어이없을 때가 많다. 정말이지 왜 그럴까 한다. 그렇다고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지만 상당한 불편함은 있다. 눈치, 음치, 기계치, 몸치, 길치 등 등, 길치는 유독 여자들에게 더 많다고 하지만 난 더욱 심한 것 같다. 난 길치이다. 젊어서부터 그랬는데 나이가 먹어가니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요즘이나 내비게이션이 나와 그나마 다행이지만 난 도대체 방향감각이 부족하다.


한번 가본 곳을 두 번째에 바로 다시 찾아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매번 다니는 길도 뭔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도 보고 찾아가는 것도 다른 도면 보는 것보다 더 느리다. 가만히 서서 정신을 가다듬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도 한다. 왜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데 이상하다고들 하는데 난 그게 그렇게 어렵다.


헤매고 있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면 내 대답은 간단하다. “넌 왜 나보다 공부 못했어?”라고 소심하게 속으로 말한다. 길치이지만 지금도 난 기억력도 좋고, 숫자도 잘 외우고 판단력도 정확하다. 일하는데 전혀 지장을 느끼지 않는다. 뇌 연구가들은 뇌에서 장소 관련 기억을 저장하는 신경세포들이 제대로 기능을 못해서 그런다고 한다.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길치와 뇌 기능 간 상관관계는 분명하지는 않다고 한다. 어떨 땐 치매 발병 위험이 크지 않을까 걱정도 해본다. 치매 걸린 분들이 장소 구분 못하고 헤매는 것을 많이 봐와서 그런 생각도 든다.


길치의 가장 큰 단점은 운전을 못한다. 수없이 도전했지만 매번 다니던 길도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고, 내비게이션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남을 업신여긴 것은 아니지만 ‘차 앞유리창에 맨발을 위로 올리고 낮잠 자는 무식하게 보이는 트럭 운전수도 운전만 잘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주머니도 차를 씽씽 잘도 돌리며 놀러 다니는데 도대체 나는 왜 못하는 건가’를 수없이 외쳤지만 난 불가능이었다. 그래 나 잘하는 것이나 하자고 포기했다.


운전을 못해서 생기는 불편을 정말 많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놀러 못 간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간다. 택시 타고 혼자 멀리 가는 건 용기가 안 나서 꼭 누군가와 같이 가야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식물을 찾아가는 것이 아무래도 느리다. 내가 운전을 잘했으면 맨날 집에 있는 시간이 없었을 건데 그래도 자중되는 편이다.





길치 덕분에 운전을 못해 난 출퇴근을 지하철 타고 다닌다. 우대권이라고 쓰여있는 공짜표를 내고 다닌다. 개찰음이 일반표와 달리 두 번 신호음을 낸다. 매일 출퇴근해 한 달 10만 원 남짓 내 주머니 돈이 아닌 세금을 축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은근히 공짜를 좋아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이 운전해 주고, 돈도 안 내고, 멀미도 안 하고, 시간도 정확하게 목적지에 내려주는 가장 큰 차. 내 자가용인 지하철이다.


본인은 콩나물 같은 속을 뚫고 들어왔으면서 다음 역에서 타는 사람에게 ‘웬 사람이 이리 많이 타? “ 하며 소리치는 얼빠진 사람도 있고,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큰 소리로 아무 내용도 없는 통화하는 아줌마도 있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치는 혀 고꾸라진 빨간 술꾼도 있고, 타면서부터 가방을 열어 자기 집 안방인 냥 화장을 시작하는 아가씨도 있지만 그래도 출퇴근길 지하철이 좋다.


우리나라 복지가 너무 잘되어있다는 생각이 매번 드는 것은 이 공짜표 때문에 더 든다. 어르신들이 집에 있으면 건강보험료가 더 올라가서 결국에는 공짜표를 주는 것이 오히려 복지비가 덜 든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겠지만 말이다. 유독 지하철이 잘 발달되어 있는 서울에만 복지가 집중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은데 지하철이 안 닿는 곳에 사는 분들이 반발을 안 하는 것을 보면 국세가 투입되지 않아서 그런가 싶기도 한다. 지하철 적자 보전을 중앙 정부에서 책임지라는 포스터를 많이 본 것 같다. 공짜로 차 타고 다니면서 무슨 불평이 많냐고 하겠지만 난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당하게 내고 다니고 싶다.


나이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친구들이 만 육십 서너 살 되면 걱정하는 것이 있다. 웃기는 얘기이긴 하지만 65세가 빨리 되기를 기다린다. 괜히 재수 나쁘게 나부터 노인연령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65세가 넘으면 그다음부터는 천천히 나이 들기를 원한다. 그게 얼마나 된다고, 사소한 것 가지고. 그래도 어쩌든 나이 드는 것은 싫지만 지하철 공짜는 좋긴 하다. 그래도 모든 사람을 공짜표를 주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편복지라고 하지만 월급 받고 출퇴근하는 사람까지 복지혜택을 다 누린다는 것은 생각해 볼일이다.


지하철의 누적적자가 얼마라는 기사를 많이 접하지만 매일 지하철 타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꼭 정당한 적자는 아닌 것 같다. 표를 안 내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다. 가장자리에 있는 문으로 살짝 빠져나가도 전혀 제지를 당하지 않는다. 역사가 큰 곳은 직원이 없는 곳이 있다. 어른이 학생 표를 내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우대권을 내고 다니는 젊은이들도 많이 봤지만 안에만 있는 역무원은 여전히 관심 밖인 듯하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는 지하철 안을 보면 금방 실감한다.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지하철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공짜표가 그리 편하지 만은 않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지구온도 올리는데 일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며 매일 지공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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