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회
마지막 가을 주말, 청계산에 간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작가협회 사람들과 같이 하는 날이다.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작가라는 동지 의식이 있어 반갑다. 20여 명이 함께했다. 지하철 ‘청계산입구역’은 언제나 북적거린다. 가을이라서 등산객이 더 많다. 오늘은 등산이라기보다 가을 숲길을 산책하는 야유회다.
입구를 가득 메운 등산객과 섞여 산길로 들어서니, 바람결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낙엽이 비 오듯 쏟아진다. 고운 빛깔의 낙엽이 쌓여 산길을 덮고 있다. 약간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걷는다. 목덜미에 파고드는 바람 때문에 머플러를 한 번 더 감아본다. 한해의 삶을 마무리하는 식물들의 가을은 부산스럽다. 따사로운 햇살 받아 열매를 키운 후, 파란 하늘 아래 알록달록한 잎을 매달고 있다. 잎사귀를 아름답게 치장하여 떨구어내는 마지막 몸부림은 처연하다. 자식에게 예쁜 옷 입혀 멀리 여행 떠나보내는 어미의 심정을 헤아리며 가을 숲길을 걷는다.
뒹구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던 시절이 있었건만 지금은 휩쓸려 날리는 모습이 측은하다. 너울너울 춤추며 날린 아래로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내려가 만져보니 손이 시리다. 차가운 물 위에 떠서 바위에 부딪치고 물줄기에 휩쓸린다. 물그림자 따라 떠나가는 조각배 같은 낙엽을 조용히 배웅한다. 여릿한 햇살이 상처 난 그를 위로하듯 살그머니 내려앉는다.
마주한 나무 하나하나에게 인사하며 느릿느릿 걷는다. 숲해설가 친구들과 공부하며 수없이 다니던 산길. 그들과 함께 봤던 나무들이 보이자 그리워진다. 자주 봐서 정들었을까. 숲속의 나무들도 자주 볼수록 애정이 깊어진다. 내 소유인 양 반갑고 애틋하다.
작가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걷는 숲길. 요즘 글쓰기에 빠져 있으니 얘깃거리가 많다. 한국작가협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게 되어 축하 인사를 받았다. 조금 일찍 시작했다면 소설 쓰기에 도전해 볼 건데 아쉽다. 왕언니라고 부르니 어색하고 부끄럽다. 내가 언제 왕언니가 됐을까.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다.
나무는 한겨울 혹독한 추위를 혼자 견딘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잎을 떨구고 삭정이를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선 채 잔인한 계절을 보낸다. 춘화현상을 겪고 새봄에 잎을 틔운다. 나도 봄풀처럼 살고자 노력하며 오늘에 왔다. 인내하고 또다시 싹을 내며 살고자 했다. 고목이 되어가는 지금, 문단에서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생각한다.
나무의 겨우살이 시작은 잎의 색상이 변하기 시작할 때부터다. 사람보다 겨울을 일찍 준비한다. 겨울 동안 먹을 것을 쟁이는 사람과 달리 식물은 벗어던지기 시작한다. 사람만이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나뭇잎이 물든다는 것은 초록색 엽록소가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잎 안에 숨어있던 노란색과 붉은색이 남아 아름다운 낙엽이 된다. 푸르던 가을 하늘이 눈 내리는 잿빛으로 변하는 겨울이 되면 서서히 땅속에 묻혀 어미를 위한 거름이 된다.
30분 산길을 오른 후 시 낭송을 하기로 했다. 계곡 옆 커다란 참나무와 단풍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에 빙 둘러앉았다. 마지막 가을이라고 말하듯 나뭇가지 끝에 달린 잎새까지 떨치려는 칼바람 소리가 스산하다. 물소리, 바람 소리, 낙엽 날리는 소리,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가을 합창 무대가 열린다. 외롭고 쓸쓸한 가을 느낌이 멋스러움으로 변한다. 알록달록 옷을 입은 등산객도 단풍만큼 예뻐 보인다.
가져온 간식을 꺼내 먹은 후 시 낭송을 한다. 시 낭송하는 한 사람이 노래로 불리는 유명한 시들을 골라 인쇄해 왔다. 시 낭송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자 돌아가면서 낭송을 시작했다. 잔잔한 배경음악까지 깔아주니 멋진 숲속 무대가 됐다.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다들 잘했다. 시를 쓰는 분들이라 감성이 배어 있으니 그러나 보다. 가을의 느낌이 배가 되었다. 나는 박문호 님의 시 ‘님이 오시는지’를 낭송했다. 비 오듯 내리는 낙엽이 갈채를 보내는 ‘숲 속 시 낭송 무대’는 숲속 오페라무대 같았다.
가을로 들어온 나이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추워진다고 웅크리지 않고 허리를 펴야겠다. 떠나는 것에 미련 두지 않고, 내일에 희망을 품는다. 가을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순리를 되돌아본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기며 부지런히 글쓰기에 매진해야겠다. 사라져 가는 것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알록달록한 아름다운 가을을 눈으로 담으며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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