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참나무
아파트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것이 조경이다.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면 깔끔하고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파트관리실에 취직했다. 경력 단절 후 제2의 직장이었다. 취직은 했지만 그리 녹록한 직업이 아니었다. 전문 분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여야 했다. 인사부터 설비 분야까지 모른 것이 없어야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시 조경 관리에 필요한 ‘조경기능사’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조경학과 출신들이 취득하는 자격증이지만 업무에 도움 되고, 취직할 때도 필요할 것 같아 도전했다.
40대 초반이었으니 공부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식물에 대해 문외한이라 신경이 쓰였다. 필기와 실기로 나뉘어 두 번에 걸쳐 실시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데 합격률이 높지 않았다. 실기 시험에서 많이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기초적인 것이었지만 당시 식물이라고는 소나무와 은행나무 정도 알던 때였으니 긴장하며 시험 봤다.
필기는 교재가 시중 서점에 나와 있어 공부하기 쉬웠다. 실기 시험은 조경 설계도 그리기 등 작업을 직접 해야 해 어려웠다. 나이 든 사람들은 모눈종이의 눈금이 보이지 않아 힘들어했다. 그리고 나뭇잎 20여 개 모아두고 이름을 쓰라고 했다. 박석을 깔고, 수관주사도 줘야 하고… 혼자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학원에 다녔다. 전문학원이 없어 조경에 대해 아는 사람이 수강생을 모아서 가르쳤다. 모래 위에 박석을 다 깔았는데 그 위를 밟아 망가뜨린 하이힐 신은 시험 감독관 때문에 난감하기도 했다. 어쨌든 여러 절차를 거쳐 취득한 자격증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시험 보는 장소에서 식물 가지를 꺾어온다는 정보가 있어, 미리 그곳에 가서 식물 이름을 익혔다. 측백나무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그때 알았다. 식물 이름을 외우는 게 꽤 어려웠다. 그래도 손 닿는 곳에 있는 식물 이름은 많이 외워 자신 있게 시험에 임했는데 특이하게 생긴 잎이 하나 있었다. 키가 큰 나무라서 아래에 달린 잎이 없어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나왔던 나뭇잎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은데 이 독특한 나뭇잎만 떠오른다. 대왕참나무였다. 그 뒤로도 이 나무는 내 눈에 자주 띄지 않아 귀한 나무인가 보다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일들이 간혹 있지만 그 나무를 보면 오래전 시험 보던 때가 떠오른다.
숲 공부를 시작하면서 참나무 종류가 무척 많다는 것을 알았다. 도토리가 열리면 다 참나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표적인 참나무로는 상수리,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를 주로 ‘참나무 6형제’라고 한다. 또 도토리가 열리는 가시나무로는 붉가시, 종가시, 참가시, 홍가시나무 등 종류가 많다. 우리나라 산의 천이과정에서 극상림에는 서어나무가 있지만 그 아래에는 참나무가 있다. 그 정도로 참나무는 산에 가면 가장 많이 보이는 나무다. 산불이 났을 때 피해를 적게 입고, 자연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먼저 잎이 나올 정도로 강한 활엽수다.
요즘 참나무가 도로나 공원에 많아지고 있다. 20여 년 전에 봤던 그 대왕참나무가 요즘은 흔하게 보인다.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우리나라에 적응하여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숲’에 갔더니 대왕참나무와 루브라참나무가 같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루브라참나무는 ‘물향기수목원’ 한쪽 길가에도 쭉 늘어서 장관이던 걸 본 적이 있다. 대왕참나무와 루브라참나무는 고향이 같은 북미 동부 원산이다. 키가 20m가 넘으니 다 크면 늘씬하다. 참나무는 수명이 120여 년으로 그리 길지 않아 고목이 된 나무는 볼 수 없다.
루브라참나무는 결각이 깊지 않고, 열매도 일반 도토리보다 크다. 심재가 붉어 레드오크라고 불린다. 대왕참나무는 결각이 깊게 파여 王자 모양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각 끝에 핀 모양의 털이 달려있어 pin오크라고도 한다. 참나무는 흔히 맥주통으로 사용되고 있다. 커다란 키와 잎에 비해 열매가 너무 작아 볼품이 없다. 이름값을 못하는 나무다. 커다란 잎이 달린 나무가 많이 있지만 대왕참나무와 루브라참나무의 독특한 결각의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한다.
루브라참나무와 대왕참나무
대왕참나무라 하면 보통 1936년 올림픽 마라톤에서 1등을 한 손기정 선수를 떠올린다. 히틀러에게 받았다는 월계수는 실제 유럽참나무다. 유럽참나무는 우리나라 기후에 맞지 않아 기르기 힘들어 그랬는지, 현재 손기정공원에 대왕참나무가 손기정 선수가 받은 나무라고 심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해에 강하고 낙엽이 아름다운 대왕참나무는 공원이나 길가에 많이 심겨 있다. 특히 나뭇잎은 겨우내 떨어지지 않고 고엽이 된 상태로 있다. 다음 해 새잎이 나오면서 떨어진다. 겨울에 잎을 달고 있거나 낙엽 상태로 있는 건 나무마다 다른 특성이다. 지금도 예쁘지만 이름값에 걸맞은 더 멋진 대왕참나무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도로나 공원에서도 흔하게 마주하면 좋겠다. 대왕참나무가 보이는 한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시험 보던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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