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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Jan 24. 2023

봄 찾아 나서기

손목닥터 9988을 차고


손목닥터9988 차고 봄 찾아 나서보기로 한다.

송파둘레길을 돌며 다가올 봄을 미리 만킥해 본다.



언젠가 아들이 스마트워치 손목시계를 사 왔다.

분홍색 줄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양의 스마트한

시계를 받아두고 설명서를 읽고 기능을 익히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헬스케어, 메시지 확인 기능을 겨우 익히고 있는데

6살짜리 손녀가 왔다.


책상 위에 있는 신기한 시계를 이리저리 구경하더니

급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사 줬냐, 할머니가 지금 사용하느냐 등을

물어 삼촌이 사줬는데 아직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집에 갔다 얼마 후 또 왔다.

또 같은 질문을 한다.

그래서 또 같은 답을 했더니 ‘우리 엄마가

좋아하겠다’고 말한다.


얼마나 숭악스러운지.

그래서 그 비싸고 스마트한 시계는 딸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런데 다시 스마트 시계를 서울시에서 지급받았다.

늦게 신청하여 시계줄이 까만 것은 조금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지방자체시대의 서울에 사는 자긍심을 처음으로

느낀 스마트워치이다.


조그마한 나라에서 지방자치를 하는 게 난

반대였다. 그런데 이번 오세훈표 손목닥터

9988을 지급받고, 서울시민인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임을 증명한 것이다.


이름도 멋지다. 손목 닥터 9988.

99살까지 팔팔하게 살라는 뜻인 것 같다.


 헬스케어용으로는 손색이 없는 듯하다.

서울 시민들의 건강 생활 습관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스마트 워치와 전용 앱을 제공하고 건강 활동을

독려하는 비대면 건강관리 서비스이다.


손목 위에 시계에서 파란불이 계속 반짝거려

조금 꺼림칙하긴 하다.

기계가 내 몸속을 계속 흩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이 스마트 워치 기능을 확인해 볼 겸 오늘은

둘레길을 걸어본다.



동네에 있어 자주 가는 송파둘레길은 21킬로미터로

완성된 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잘 다듬어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난 장지천을 따라 탄천으로 들어가서 한강으로

들어가기 전에 빠져나왔다.


한강을 따라 걷다가 성내천으로 들어오면

올림픽공원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 길을 하루에 다 걷기는 무리이기 때문에 두세 번에 나눠

걷곤 한다.

산티아고 둘레길 갈 땐 거뜬하게 21km 정도는

걸었는데 지금은 무리임을 느낀다.


 봄을 맞이하기는 바람이 너무 차갑다.

그래도 이 둘레길에는 항상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좁은 길이 가득 메워진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운전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탄다.

씽씽 자전거 타며 달리는 기분은 꽤 좋을 것

같지만 난 두 발로 열심히 걸을 뿐이다.  


아직은 봄꽃들이 피지 않았지만 제일 먼저

찾아오는 큰 개불알풀은 작은 얼굴을 내밀고

세상구경을 시작하고 있다.

이름이 듣기 거북스럽다고 요즘은

큰 봄까치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월 초순만 되어도 냉이랑 봄맞이꽃은 필 것 같다.


그 곁에는 빨간 로제트 잎들도 서서히

색상을 담아가고 있다.

그렇게 또 세월은 흘러 봄은 찾아올 것이다.

            달맞이꽃과 큰금계국 로제트

(사진찍고 집에 와서 보면 헷갈릴때가 많아 그자리에서 이름을 적어둔곤한다)


가을을 수놓던 벌개미취와 미국쑥부쟁이

열매가 아직도 가을을 붙잡고 서있다.

멀리멀리 떠내 보낸 자신의 분신들을 못 잊고

빈둥지만 지키고 있다.

                                   미국쑥부쟁이와 벌개미취


이곳 탄천변은 생태보전지역으로 되어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있다

아주 맘에드는 공간이다

아직 겨울눈은 꼭 입을 다물고 있다.

가장 황량한 겨울하천이지만 물은 졸졸거리며

엄마 찾아 떠나간다.


흰 뺨청둥오리가 물속에서 한가하게 놀고 있다.

새의 발은 찬 물속에서 견디는 것을 보면 감각이

상당히 둔하지 않을까 한다.

(발바닥은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뜨거운 피가 아래로 내려가며 발을  따뜻하게 해줘 춥지않다고 한다)


가을의 흔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가죽나무는 커다란 엽흔을 자랑하고,

하얀 꽃이 핀 것처럼 수많은 열매를

아직도 달고 서있다.

그 곁에 가래나무도 한그루 보인다.

이 가래나무는 왜 엉뚱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 평생 외롭게 서있을 것 같아 안쓰럽게 보인다.


저만치 걸어가는 짝꿍은 뒤돌아보며 서 있다.

땅바닥 쳐다보며 뭔가 중얼거리고,

길가 나무들과 인사하고,

가지를 잡아당겨 겨울눈을 쳐다보며

갈길을 제대로 못 쫓아오는 내가 한심한 듯 쳐다본다.


우리나라 사방사업을 할 때 가장 많이 심겼던

아카시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봄날에 손 흔들며 향기를 발산할 때의 거리는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이다.

지금은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가시를 무섭게 달고

아직은 아쉬운 열매를 달고 겨울을 이기고 있다.

아카시 가시는 쌍으로 달리는데 약간 아래를 쳐다보며

있는게 특징이다.

잠실 쪽이라서 뽕나무가 많은 것은 당연한 듯

노란 줄기의 뽕나무들도 언덕을 책임지고 있다.


머잖아 봄바람에 땅속의 생명들과

겨울눈 안의 잎과 꽃들과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나도 봄단장 하고 예쁜 얼굴로 기다려야겠다.

그리고 친구 맺어 함께 일 년을 보내겠지.

                       2022년도 3월 용버들과 능수버들


내 손목 위의 까만 스마트워치에선

12000이라는 글씨가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2시간 30분여분 걸었더니 오히려

몸의 여독이 빠지는 느낌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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