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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Jan 27. 2023

눈 오는 날의 소회

가엾은 가로수


오래전에 덕유산 눈꽃 산행했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하얀 눈 쌓인 덕유산 꼭대기에서도 푸르던 소나무들.

눈이 얼음 되어 하얀 옷을 입은 듯 한 몸이 되었어도

꿋꿋하던 푸른 기상은 한참을 지났어도 기억에 남겨졌다.     

그 옆의 가지엔 얼음 꽃을 달고,

세찬 바람에 더 멋진 상고대를

보여주던 그들의 인내력에  찬사를

하기에는 어쩐지 잔인해 보였다.   

  



근래 서울에선 그런 눈과 추위는 오지 않았던 것 같다.

추운 날씨가 이어지더니

모처럼 흰 눈이 펑펑 왔다.

세월은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가나 보다  

               거실에서 찍은 겨울


아침에 눈을 뜨니 거실 밖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이보다 더 예쁘게 그릴 사람 나와 봐~~~~’라고 소리쳐보고 싶다.

온 세상을 하얀 이불로 살짝 덮어주고 있을 때 온 도시는 잠에 깊이 빠져 들었나 보다.

어쩐지 엊저녁 깊은 잠을 잘 잤다 했더니 바로 함박눈 때문이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강아지 새끼 마냥 눈 왔다고 뛰어나가 놀 수는 없지만

그냥 함박눈처럼 함박웃음을 짓는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고 짜증 내는 사람은 없다   

  

종종거리며 나가는 출근길은 그리 미끄럽지 않았다.

인제 함박눈은 아니지만 작은 눈송이들이 내려 우산을 쓰고 간다.

눈을 맞고 걷고 싶지만 만용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머리가 젖으면 하루 종일 엉망이 되고,

감기 걸릴 수 있으니 자제한다.     

그리고 춥지도 않았다. 춥다고 옷을 얼마나 많이 껴입었던지

무슨 로봇 걸어가는 것 같다.

움직임이 둔해 괜히 많이 입었나 싶다.

벌써 아파트 안의 도로는 눈 대신 촉촉한 보도 블록과

간간이 보이는 염화칼슘 잔해들이 남겨져 있다.



 내리는 눈은 앉아보지도 못하고 염화칼슘에 초토화가 되어버린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인근에 있는 공원으로 향해본다.

그래도 눈이 왔으니 겨울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 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내리던 눈도 그쳤다

기온이 살짝 올라갔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새

녹아간다. 나무에 쌓였던 눈이 순식간에 없어져 간다.

시골에선 그 흔한 고드름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도로에는 염화칼슘이 무슨 쌀 쏟아 둔 듯 쌓여있다.

몹시 불편한 맘으로 걸어가는데 가로수로 서있는 이팝나무아래애는

고양이 밥을 주듯 염화칼슘으로 덮어져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맨손으로 이것을 다 쓸어 담을 수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구청 홈피에 들어가 봤더니 구청장 직통이라는 전화번호가 있다.

전화하기도 뭐 해 문자를 넣었다.

찍어온 사진과 함께.

보도블록에 쌓인 염화칼슘과 가로수 아래 쌓여있는 염화칼슘을 치워달라고 했다.     

한 시간쯤 지나 연락이 왔다,

눈이 와서 새벽부터 나와서 눈 치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느냐는 말로

시작된 공무원의 변명이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고생한 거는 말 안 하셔도 잘 알고 감사하게 생각하는데

이왕 일하는 것 염화칼슘을 알맞게 뿌려 달라고 민원 넣었다고 했다.

그리고 가로수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거기다가 그렇게 뿌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공원에 눈을 쓸고있던 차량_

너무 작아 많은 눈에는 역할이 적을듯해 보였다



죽으라고 했는지, 무지한 건지.

최소한 가로수에 있는 염화칼슘이라도 다 쓸어달라고 했다.     

가로수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수난은 참 여러 가지이다.

자기 가게 앞을 가린다고 뜨거운 물을 계속 부어 죽이기도 하고,

소금물을 계속 부어 고사되도록 하기도 한다.

가로수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육안으로 안 보인다고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청 청소과에서 제설작업을 했나 보다.

청소하는 분들이 새벽에 나와서 제설작업하라고

염화칼슘 포대를 나눠주니까 그냥 가져다가 부어버린 것 같다.

구청마다 제설 작업을 어디가 잘했는지 경쟁이 붙여져 있고,

눈이 쌓여 있으면 민원이 빗발친다고 한다.

공무원도 죽을 맛일 것 같다.    

 


염화칼슘이 얼마나 식물에, 토양에 안 좋은지는 말 안 해도

다들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다.

잘 녹아있는 도로는 차체를 부식시키는 주범이다.

도로가에 심어져 있는 작은 나무들은 일 년 동안 겨우 숨을 쉴 수 있도록 자라면,

겨울 염화칼슘으로 도로아비타불이 되어버린다.

전지를 안 해도 항상 그 크기만 유지된다.     

우리의 작은 불편을 인내하지 못하고 우리는 스스로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면 싶다.

잘치워진 도로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짖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를 위해.작은 하나라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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