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동토(凍土)가 무대인 나무, 시베리아 나무라는 자작나무다. 나는 추운 것은 싫지만 이 나무는 좋아한다. ‘닥터지바고’라는 영화를 한 번 더 본 이유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자작나무숲 때문이다. 시베리아에 직접 가지 못했지만 멋진 풍경은 화면으로 수없이 봤다. 그곳의 하얀 겨울을 상상하고, 산골 집의 자작나무를 생각한다. 백석 시인은 ‘白樺’라는 시에서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라고 했다. 북한에서는 자생하지만 남한의 자작나무 숲은 대다수가 인공 조림이다.
어느 여름, 친구 3명과 함께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갔다. 요즘에는 여기저기 자작나무숲이 조성되고 있지만 원대리 자작나무숲이 가장 유명하다. 자작나무 없는 원대리는 없다고 할 정도로. 1990년대 초반부터 70여만 그루가 조림된 인공숲으로 사유지다. 자일리톨 껌을 생산하기 위해 조림되었다.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로오스를 화학적으로 가공하여 자일리톨을 만든다. 그곳 숲길에서 요즘 보기 어려운 토종 다람쥐를 만날 수 있었다. 청설모만 보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그만큼 자연 훼손이 안 되었다는 말이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 따라 걸을 수 있다. 희고 정갈한 자작나무 모습은 어느 때 찾아가도 멋지다. 눈이 많이 올 때 찾아가면 더 멋있겠지만 입산이 통제되고 미끄러워 안에 들어가기 힘드니 어쩔 수 없다.
하얀 기둥 곳곳에 까만 눈썹을 그리며 하늘까지 뻗은 자작나무. 겨울에만 예쁜 것이 아니다. 흰 숲 속에 연초록 잎사귀들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살랑거리는 봄. 노란 잎으로 수놓은 단풍 든 가을도 매력적이다. 산책로 따라 걷다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나뭇가지가 불에 타는 듯 ‘자작자작’ 소리가 들린다. 춤추는 정령들을 위한 노랫가락인가. 잠시 사방을 둘러본다.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이 영혼을 데리고 떠나가는 것 같다. 자작나무껍질에 큐틴인 방부제 성분이 들어있어, 땅속에 시신을 싸서 묻으면 썩지 않고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다. 그러면 줄기를 발판 삼아 영혼이 육신을 떠나 하늘로 올라간단다.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가 지금까지 남을 수 있는 것도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포개 그렸기 때문이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자작나무와 닮았다. 굽힐 줄 모르고 뻗은 가지는 그들의 정열적이고 처연한 모습이 죽음과 닿아있어서일까. 유럽을 여행하면 사이프러스 나무를 많이 만난다. 길 따라 하늘 높이 뻗은 그 나무는 빈센트 반 고흐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고흐는 이 그림으로 자신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무덤가에 사이프러스를 많이 심는 건 죽은 자를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나무를 자르면 다시는 뿌리가 나지 않아 죽음을 상징한다. 끝없이 자라는 줄기는 하늘로 올라가 신을 만나고, 뿌리는 땅을 뚫고 깊이 내려가 서로를 연결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겨울에 검은색 옷을 주로 입고 속옷을 껴입는데, 자작나무는 왜 추운 겨울에 하얀색 껍질을 하고 있을까. 기름 성분이 많은 얇은 껍질을 여러 겹으로 두르고 있다. 얇은 막을 살살 벗겨 이곳에 연서를 쓰고 시신도 감쌌다. 흰 수피로 빛을 반사시켜 기온 차이를 줄이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보다 늘 현명한 선택을 한다. 요즘 공원의 나무에 하얀 페인트 칠한 것은 자연을 보고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파란 하늘에 눈이 쌓여있는 날이면 태백산의 자작나무가 생각난다. 태백은 겨울철이면 다른 지역보다 눈이 많이 내려 눈축제를 하는 곳이다.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 무릎까지 올라온 눈 속을 뚫고 오르던 태백산 등산길. 그날의 기억은 눈 올 때마다 나를 긴장시킨다. 배낭에 행동식량을 조금 넣은 채 떠난 눈 덮인 위대한 태백산, 쭉쭉 뻗어 오른 하얀 나무들. 천상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자작나무는 사촌들이 많다. 올라가는 중간에는 거제수나무와 박달나무가 있고, 해발 1000m 넘어가면 사스레나무가 펼쳐진다. 같은 자작나무과인데 잎이 약간 다르고 껍질 속의 색상이 조금 다를 뿐이다. 눈 덮인 태백산은 온통 설국이다.
민가 근처에 있는 자작나무의 찌든 모습을 보다 산속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놀란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기둥은 흰빛이 강해진다. 윙윙대는 겨울바람 소리가 그들 사이를 연결시켜 주며 휘젓고 다닌다. 그래서일까 덜 외로워 보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햇살은 꼭 닮은 듯 서 있는 회백색의 사스레나무에 앉는다. 풀포기 하나 없이 덮어버린 하얀 세상에는 천상으로 올라가려는 작은 가지만이 흔들릴 뿐이다. 가난한 겨울 숲이지만 나무 사이의 공간들은 나에게 넉넉한 품이 되어 준다. 함께 간 친구들이 눈부신 햇살과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하얀 눈 위에 누워 원을 그린다. 그리고 숲이 주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면 나는 점점 작아진다. 그렇게 잠시나마 천상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삶의 무게를 많이 내려놓아서 그럴까. 내려오는 발길은 한결 가볍다.
겨울을 사랑한 자작나무, 풀과 새와 곤충도 없는 겨울 숲. 찾아온 바람만이 친구가 되어 준 외로운 그곳이 터전이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나눠주지도 않고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며 직진하는 자작나무는 혼자만의 삶을 사랑하는 듯하다. 천상의 세계에 닿는 날만을 기다릴까. 키가 크지만 가지를 짧게 뻗어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그림자가 옆의 나무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그 키만큼의 간격으로 심는다. 자작나무의 단순하고 정적인 삶, 아니 정갈한 삶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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