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지기 전에 스스로 떠나는 걸까

대나무

by 배초향


잔설이 깔린 대숲. 바람에 흔들리며 솨솨 소리 내는 대나무. 댓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소리를 채집하는 유지태와 이영애가 만나며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가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 영화는 배우와 배경음악, 풍경 등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시냇물 소리, 장독대에 떨어지는 빗소리, 특히 댓잎 스치는 소리의 청량함과 서늘한 기운은 심장을 잠시 멎게 한다. 대나무 틈으로 들어오는 볕뉘는 따사로움을 입혀준다.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 속 대밭은 삼척의 신흥사에서 촬영했다고 하는데, 고창에도 멋진 대밭이 있다. ‘녹두꽃’의 촬영지로 동학혁명 동안 죽창을 만들던 곳이다. 정읍 전봉준 장군의 생가부터 돌아볼 기회가 있어서 대밭을 보았다. 대나무밭으로 유명한 담양의 죽녹원이 있는데 그곳 또한 인상적이었다. 텅 빈 대나무 공명은 외로운 울부짖는 소리 같고, 댓잎 스치는 소리는 세상 모든 소리를 잠재워 버리는 청량한 음색이다.

겨울이 되면 그 댓잎 떨리는 소리를 한 번쯤 듣고 싶다. 다행히 서울 이촌 한강공원에도 1km 정도 대숲길이 있다. 소나무만큼 피톤치드가 나온다는 대나무, 서울 한강변에 있는 이곳은 차량 소음에 묻혀 대숲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차음벽 정도에 그친다. 공해에 찌들어 겨우 현상 유지만 한다. 무릇 자생하지 않은 모든 생명은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숲 속 나무는 떨어진 낙엽이 썩어서 자양분이 되어 살아가지만 대밭은 떨어질 낙엽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 보였다.


어릴 때 살던 우리 집 앞마당 끝에 대밭이 있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봄비 내린 아침이면 아버지는 대밭에 들어가서 죽순이 나왔는지 살피셨다. 하루만 지나도 벌써 목질화되어 먹을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명절이 되면 대나무를 하나씩 베어 손질하셨다. 제사에 사용하는 생선 가운데에 꽂을 꼬지로 사용하려고 칼로 다듬으셨다. 마을에 대밭이 우리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동네사람들도 가져가셨다. 필요할 때 하나씩 베어 사용하고, 죽순은 따 먹으니 더 이상 번식은 불가능했는지 늘 그만큼만 있었다. 요즘 제사 때 생선을 찌면 대나무 손질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르고, 대쪽 갈라지던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대나무밭 옆에 대나무 평상이 있었다. 여름이면 어른들은 그곳에 앉아 놀며 낮잠을 잤다. 늘 바람이 불고 그늘진 곳이라 시원했다. 나는 그곳을 싫어했다. 대나무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무서웠다. 사각거리는 댓잎 소리는 귀신 소리처럼 차갑게 들렸다. 겨울 찬바람이 세차게 불면 대나무가 내는 날카로운 소리 때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때 듣던 댓잎 소리가 지금은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이 탓일까, 같은 소리도 세월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나 보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사람은 누구냐고 물으면 아줌마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군인이라고 대답한다. 당연히 웃기려고 하는 말일 거다.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식물은 어떤 것이냐고 하면 다들 대나무라고 한다. 물론 대나무는 풀이다. 사시사철 죽지 않고 남아 있으니 당연히 나무 같지만 형성층이 없기 때문에 풀로 분류된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120년 이상 사니 풀치고 키가 크고 오래 사는 편이다. 죽을 때가 되면 꽃이 핀다. 그리고 조용히 말라 사라져 버린다. 꽃이 피는 이유는 영양부족일 수 있고, 변고에 대한 대비일 수도 있고.


내가 사는 아파트의 한쪽 벽면에 대나무가 심겨 있다. 20여 년을 아파트와 함께 살아오고 있다. 오다가다 듣는 댓잎 소리는 좋지만, 번식하지 못하고 3m 정도 자란 상태에서 멈춰 있으니 환경이 나쁜가 보다. 뿌리 뻗을 곳은 콘크리트로 막힌 주차장이고, 공해에 찌들어 살아가야 하니 오죽 스트레스가 심할까. 가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전체 대나무가 꽃이 피어 죽어가고 있다. 일반적인 풀은 꽃이 피고 열매를 남기며 새 봄을 기약하지만 대나무는 꽃이 피어 열매로 번식하는 것이 쉽지 않다.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로 자기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꽃을 피운 것 같다. 땅속에 하나의 뿌리로 연결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인간이라면 한 동네가 몰살당하는 격이다.


옆 아파트에 오죽이 자라고 있다. 껍질이 까맣고 광택 나는 모습이 귀티 나서 자주 보러 다녔다. 키가 크지 않아 조경수로 많이 심는데 이곳 담벼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우아한 모습이 초라한 형색으로 변했다. 재건축으로 이주가 시작된 텅 빈 아파트가 되면서 그리 되었나 보다. 부서진 폐기물과 곳곳에 칼로 벤 흔적, 꽃이 피기 시작한 오죽의 모습이 폐허 직전 모습이었다. 큰 나무들도 옮겨 심는 비용이 많다 보니 대부분 땔감으로 쓰일 재건축 아파트 나무다. 이 사정을 아는지 오죽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작은 바람에도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으로 서로 엉켜 있었다. 베어지기 전에 스스로 떠나가는 듯하다. 식물도 환경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걸까.


일반 식물들은 손으로 작은 가지를 꺾을 수 있지만 대나무 마디에서 뻗어 자라는 줄기를 손으로 꺾기 힘들다. 아래로 쳐지지도 않는다. 아버지가 칼로 대나무를 손질할 때 마디에 칼을 대고 내리치면 밑동까지 반듯하게 짝 갈라졌다. 그 소리가 제법 단호한 호통 소리처럼 들렸다. 대쪽 같은 성품이란 이런 모습을 보고 말한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서는 외고집으로 살기 힘들겠지만 화려함보다 단아한 아름다움이 더 깊지 않을까. 모진 바람을 견디며 살아가는 대숲이지만 언제나 곧게 서 있다. 땅속에 뿌리내린 깊이만큼 위로도 튼튼하게 자랄 힘을 얻을 것이다. 대쪽 같은 심정이 옹고집으로 이어지지 않는 삶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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