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장 앙리 파브르는 곤충학자라고 알려져 있다. 곤충기를 펴내기 전『파브르 식물기』를 출판한 생물학자이자 시인이며 교사였다. 식물에 대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즐겨 읽는 책인데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식물에 대한 경이로움과 신비를 우리 생활과 연계하여 설명해 준 책이다. 식물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케 한다. 세계에서 가장 굵은 나무는 시칠리아섬에 있는 밤나무라고 한다. 말 백 마리가 밤나무 가지 밑에 몸을 피할 수 있는 굵기다. 높이가 백 미터 넘는 세코이아라는 침엽수, 6천 살이라는 바오밥나무 등 몇 천 년 된 크고 오래된 나무가 많다. 우리나라에도 주목과 은행나무, 느티나무가 천년 넘어 자라고 있다.
모든 생명이 일천 년 이상을 산다면 어떨까. 조물주는 적절한 생명의 시간을 달리 주어 지구가 균형을 맞춰가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오래 사는 건 나무다. 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고 보호수가 되어 기나긴 이야기와 조상들의 숨결을 우리에게 전한다. 수명이 천년 넘는 수종으론 느티나무가 가장 많고 은행나무, 팽나무가 뒤를 잇는다. 기둥 중심부에 구멍이 뚫려도 새봄이 되면 텅 빈 가지 위에 새싹을 내며 세월을 더해간다. 비어 있는 곳에 퍼티를 바르고, 수백 년의 사연을 품은 채 우리 곁에 함께 한다.
요즘은 고향이란 단어가 낯설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리저리 이사 다니며 살아서일까. 도시라고 고향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친밀감이 적다. 어릴 적 놀던 언덕에 굽은 소나무가 많았다. 몇 십 년 지난 후 고향에 들렀는데 굽은 소나무가 그대로 있었다. 그사이 줄어든 듯 허리가 더 굽어 작아 보였다. 또 마을 가운데에 가지를 활짝 펼치고 햇살을 포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느티나무 정자목은, 세월을 그대로 껴안고 있었다. 아담한 정자에 어르신 몇 분이 얘기하고 계셨는데 낯설었다. 고향에 남겨진 건 변하지 않는 나무뿐이었다.
지금 사는 동네는 문정(文井)동이다. 인조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다가 이곳에서 물을 드시게 됐다. 물맛이 매우 좋자 文氏가 많이 살고 있는 동네여서 文井마을이라고 부르게 했다 한다. 임경업 장군의 생가였던 두데미가 공원으로 지정되어 우리 아파트와 연결되어 있다. 가장 자랑스러운 건, 문정동사무소 뒤편에 보호수로 지정된 6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두 그루다.
동네 한가운데에 살고있는 느티나무
할머니, 할아버지 나무라고 명명되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데, 이곳은 6·25 전쟁 중에도 평온한 곳이었다. 그 두 그루는 급변했던 역사 속에서도 꿋꿋하게 마을을 지켰다. 둘레가 5.3m, 높이가 15m인 두 나무는 적정한 간격을 유지했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걸까.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서로 손을 내밀어 안부를 확인하는 듯하다. 잔가지들을 흔들며 빈 공간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바람이 대신 고개를 끄덕여 준다. 도시계획을 하면서 느티나무가 겨우 살아갈 수 있는 공간만 두고, 주변이 상가와 주택으로 바뀌게 됐다. 이곳을 공원으로 지정했다면 좋았을걸. 늘 소란스럽고 가는 가지가 주변 건물 지붕에 걸려 생육에 지장이 있어 보이지만 좋은 방법이 없다.
할아버지나무
할머니나무
매년 정월 보름이면 ‘문정골 향토회’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주민들이 어울려 윷놀이하며 화합을 다진다. 60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별의별 일들을 다 겪었을 당산목이 마른 가지를 파란 정월 하늘로 뻗고 있다. 건물에 부딪치고 전봇대에 걸려 비좁지만 가장 높은 곳에 새들의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있다. 수많은 가지 중 하나의 새집만 허락한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삭정이 없는 단정한 수형이 600년을 버텨온 힘일 듯. 잎사귀도 다 내려놓고 지내는 겨울, 변덕스러운 정월 소소리 바람이 차갑게 불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 고유제를 지내는 문정골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도 참석하여 모두의 안녕을 빌었다.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가 길을 사이에 두고 있어 상이 따로 차려졌다. 5만원 지폐 가 코에 꽂힌 돼지머리, 과일, 떡시루가 상위에 놓였다. 제례복을 입은 동네 어르신들과 관리하는 문정1동장이 나와서 제사상에 막걸리를 따라 올리고 신을 부른 다음, 재배하고 축문을 읽는 순서로 진행됐다. 신령에게 고하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정성스럽게 고유제를 지냈다. 느티나무 당산목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고맙다는 인사 같았다.
이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어느 어르신 말씀을 들었다. 이곳은 넓은 공원이어서 할머니 나뭇가지에 그네를 매달고, 나무 위에 올라가 놀았다고 한다. 할아버지 나무는 원기둥이 높아 올라갈 수 없지만, 할머니 나무는 가지를 길게 옆으로 뻗어 가능했을 듯. 지금은 공간이 좁아 그네를 탈 수 없다. 주변 건물에 가려 햇살도 온전히 받을 수 없다. 이 당산목이 더 오래도록 살아갈 대책이 없을까. 밑동 쪽에도 햇볕이 들어와 따사롭게 감싸주면 좋을 텐데.
얽히고설킨 마른 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바람이 윙윙거리는 겨울의 끝이다. 부드러운 햇살이 내려와 메말랐던 우듬지 아래에서 속삭거린다. 서서히 부풀어 가는 겨울눈은 긴 겨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서로에게 큰소리로 안부를 전하고 어느 눈 오던 날의 아름답던 모습을 말한다. 그리고 올해도 튼튼하게 버텨주길 서로 격려한다.
봄이 되면 수많은 잎이 가지런히 달리고 작은 꽃이 핀다. 작은 꽃은 잎 속에 숨어 어느 날 바닥에 수북이 떨어진다. 가을이 되면 소란스럽게 뒹구는 다른 낙엽들을 따라가지 않고, 제 어미나무 아래서 조용히 겨울을 난다. 두 나무는 의연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우리 마을을 지킬 것이다. 마른 가지 위로 포근한 볕이 내리쬐는 우리 동네 보호수 느티나무, 오래오래 보존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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