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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Mar 27. 2023

알싸하고 향긋한 내음새

생강나무


나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조금 잠잠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 중학교에 들어가자 또 도지기 시작했다. 이 병원 저 병원 들락 거렸지만 편두통이라고 하기도 하고, 스트레스성이라고 했다.  난 예민하고 부지런했다. 그 부지런함으로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커가자 할 일이 없어지면서 무료함이 병이 됐을 것이다. 경단녀가 되고 아이들도 손을 떠나버린 허전함이 두통으로 옮겨간 듯했다.


그래서 병원 순례와 함께 앞산, 뒷산을 순례했다. 그러면서 꽃도 쳐다보며 자연을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산이나 들을 찾아 전국을 닥치는 대로 다녔다. 어느 산에 가든 가장 먼저 정상에 도착한 사람은 우리 부부였다. 그 후 두통도 사라지고 경단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루 20km씩 산티아고 길을 16일 걸어도 거뜬했지만 지금은 전처럼 정상에 올라가는 산행은 못하고 둘레길 걷는 걸 좋아한다.    


 

차츰 두통에서 회복되어 가던 어느 봄날 남한산성에 올라갔다. 자주 보면 누구든 이름도 불러주고 싶고, 만져보고도 싶어 진다. 노란 꽃망울이 작은 나무에 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려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뭔가 설명을 듣고 있었다. 호기심이 언제나 많은 난 그곳에 가서 귀를 쫑긋 했다. 생강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수업 중이라고 가라고 했다. 2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이다. 그때는 그리 인터넷도 발달하지 못해 이것을 찾아볼 생각도 못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생강 냄새나는 나무에 대한 기억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숲해설가에 대한 정보를 접한 게 한참 후였다. 2007년 숲해설가 교육을 받았다. 제일 먼저 생강나무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가 되었다. 요즘 산에 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게 생강나무이다. 공원에도 있지만 이곳은 대다수 이식됐을 것이다. 생강나무와 비슷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산수유는 민가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생강나무는 약간 떨어진 얕은 산에 자생된다.


     

산수유- 꽃대에 달리고 수술이 밖으로 나와 있다
생강나무 -꽃안에 수술이 들어가 있다. 샛노랗고 더 풍성하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봄에 피는 노란 꽃차례가 비슷하여 혼동하지만 잎과 열매 등 나머지는 정말 다르다.

일반 아파트나 공원에서 이른 봄 가장 먼저 접하는 꽃이 산수유이다. 꽃자루가 달려 나무에서 떨어져 달린다. 꽃자루가 뭉쳐 달려 그 끝에 꽃이 핀다. 예쁜 꽃과 달리 수피가 거칠다. 그리고 잎이 나고, 가을이 되면 팥알 같은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겨울을 난다. 맛이 없어 새들의 먹이로 대접을 못 받지만 말려서 사람들이 먹는다. 약으로도 쓰고 차로 끓여 먹기도 한다. 새들은 과즙이 넉넉하고 달콤해야 먹는다. 새들에게 양보받는 양식도 있다.   

   

  가을이 되면 잎이 또 한 번 주변 이들에게 으스대며 황금빛으로 물들 것이다. 원형으로 나기도 하고. 윗부분은 세 갈래로 갈라진 독특한 형태의 잎이 지루하게 서있는 주변 나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꽃이 진 뒤에 나오는 어린잎을 따서 말렸다가 차로 만들어 먹는데 작설차(雀舌茶)라고 한다. '참새 혓바닥 같다'고하여 이름 지어졌다.     


잎은 가늘과 꽃눈은 둥글다
잎의 모양이 달리난다.


이번 일요일 우면산으로 올라갔다. 길 양쪽에서 수줍은 새색시 같은 진달래가 도열되어 있었고 안쪽으로는 가지에 황금 꽃송이들이 달라붙은 생강나무가 이어져 있었다. 가장 많은 생강나무를 본 듯하다. 아직 잎이 없는 나뭇가지를 살살 긁어서 맡아보니 정말 알싸한 생강 냄새가 진하게 맡아진다. 꽃을 코로 가져가 맡아보니 약하게 맡아진다. 개나리, 진달래등 봄꽃들은 향기가 거의 없지만 생강나무는 이름처럼 향기를 풍겨 달콤한 연애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기도 하나보다. 같다.    

  

산수유
생강나무

  


 가을엔 생강나무에 동그랗고 작은 열매가 달리는데 세 번 색깔이 변화된다. 열매는 초록빛이었다가 붉은 색상을 거쳐 검게 익는다. 이 검은색 열매는 기름을 짜서 귀부인들의 머리단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원도에선 생강나무 기름을 '동백기름'이라고 하며 머릿기름으로 쓰였다.    


 


 김유정의 ‘동백꽃’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김유정은 힘들게 병과 빈곤 속에서 싸우다 2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우리나라 대표적인 작가이다. 생강나무하면 이 ‘동백꽃’이라는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소작인의 아들인 ‘나’와 마름의 딸인 점순이의 풋사랑이 수탁과 함께 귀엽게 그려진다. 주인공과 점순이의 싸움이 정점에 다다르려고 할 때 서로 동백꽃에 파묻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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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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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나오는 ‘노란 동백꽃’은 생강나무라고 한다. 김유정 작가가 생강나무 잎과 줄기에서 나는 생강냄새를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라고 표현해 주어 지금도 생강나무에서는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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