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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Mar 29. 2023

우아한 요정처럼

백목련(1)

누구든 봄날 메마른 가지에서 하얀 꽃송이가 나오기 시작하면 ‘드디어 봄이 되려나 보다’라고 말한다. 햇살이 서서히 작은 바닥의 꽃을 깨우고, 잠자던 겨울눈들을 살살 흔들어댄다.  인제 초록옷을 입히려고 햇살과 바람이 부지런을 떤다.     


 목련 (木蓮)이란 '연꽃처럼 생긴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는 뜻이다. 흔한 목련과(科)에는 목련, 백목련, 자주목련, 자목련, 일본목련, 산목련, 별목련등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목련은 중국산인 백목련이다.  

   

봄이 되면 박목월시인의 <4월의 노래> 가곡을 누구나 한 번쯤은 흥얼거려 볼 거다. 활짝 핀 목련꽃그늘 아래서 정말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무 빠른 속도로 꽃이 떨어지다 보니 정말 노래처럼 목련꽃을 즐길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보면 벌써 활짝 뒤로 젖혀있고, 숨넘어가듯 색상까지 누렇게 떠 있다.      

화려한 1주일을 짧고 굵게 산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조금 더 아름답게  오래 머물다 가도록 배려해 주시지. 쳐다보고 인사 나눌 경황도 없이 아쉽게 떠나다니. 우리는 일장춘몽을 꾼 듯 화려한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가지만 천사 날개 같은 꽃잎은 가장 지저분한 뒷 끝을 남긴다.  동백꽃이 통꽃으로 떨어져서 좋아하지만 이 목련은 꽃잎 하나씩 너풀거린다. 9장의 꽃잎이 안에 수술과 암술을 감싸고 있다가 벌어지면 이미 누렇게 마르기 시작한다. 꽃잎이 다 떨어지면 수술과 암술만 남는다. 꽃잎이 떨어지고 나면 길쭉한 붉은 수술대는 가운데 연둣빛 암꽃 기둥을 감싸고 있다. 목련은 양성화인 것이다.  


        

겨울이 끝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쬐이기 시작하면 산수유가 노랗게 봄을 시작하고, 밍크 털에 쌓여있던 목련의 겨울눈은 몸을 더욱 부풀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밍크 털을 감싸고 있던 껍질이 벗겨지면서 목련꽃이 나오기 시작한다. 다른 나무에 비해 속성수인 목련의 매끈한 줄기 끝에 하얀 꽃망울이 눈송이처럼 탐스럽게 머물다 터지면 봄이 온 듯 환호가 터지기 시작한다.    

 이런 봄소식을 가져오기 전부터 목련은 겨울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온통 나목들의 나뭇가지가 찬바람에 쓸쓸히 흔들거리며 추위에 움츠려 들 때 가장 우아하게 겨울옷을 입고 도도하게 서 있는 목련을 볼 수 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워야 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에 비해 더 두툼한 털옷을 입고 겨울을 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붓대는 족제비 털로 붓털을 만들어야 힘이 있다고 하는데, 목련은 붓대와 같이 쭉 뻗은 가지 끝에 보송보송한 밍크 털로 된 붓털을 달고 있다. 뾰족한 붓대 같은 모양의 겨울눈 덕분에 겨울나무의 여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겨울눈의 큰 붓털 부분은 ‘꽃눈’이 될 부분이다. 그 안에는 꽃부리와 암술, 수술 부분이 촘촘히 모여 웅크리고 있고, 꽃눈 아래 작은 부분은 ‘잎눈’으로 가지에 여러 개가 붙어있다. 꽃눈이 나오고 나면 뒤따라 잎눈이 터져서 가름한 잎이 나온다.     


 정결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탐스럽게 피어오는 하얀 목련의 모습은 겨우내 움츠리고 서 있는 주변의 나무에게 봄맞이를 서두르게 한다. 한 송이, 한 송이씩 활짝 피어오르면 주변은 정말 모든 이에게 기쁨을 주고 말라 있던 가슴에 숨을 불어넣어 준다. 그런데 가지 끝에 한 개씩 커다란 꽃을 피우고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고고하게 서 있는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    

속살이 나오기도 전 사람들은 꽃봉오리를 하나씩 따기 시작한다. 향기가 은은하고 향긋한 목련차를 만들기 위해서다. 난 꽃차를 먹지 않는다. 겨우내 고생고생하며 겨우 얼굴을 내미는 꽃 차례를 꺾어버리는 잔인한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난 식물 학대 같은 생각이 든다.

     

꽃 봉오리가 맺혀 일주일쯤이면 활짝 피게 되는데 고고한 자태가 그리 오래가지 못하니 아쉬운 꽃이다. 만개 후 꽃잎이 한 장씩 바닥에 떨어져 지나가던 사람이 밟아 미끄러지기도 하고, 누렇게 떠버린 꽃잎은 자기의 영화를 잊은 듯 초라한 모습으로 사라지게 된다. 대개가 화려한 꽃일수록 마지막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벚꽃과 마찬가지로 너무 한꺼번에 정열을 쏟다 보니 뿌리의 심근성이 약해 넘어지기 쉽고, 수명도 길지 못해 아쉬운 꽃이다. 봄꽃들은 수명이 다 짧다. 벚꽃도 그렇고 목련도 그렇다. 백 년이 넘는 나무는 아직 안 보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꽃을 피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풍이나 폭우에 가장 취약한 나무이기도 하다. 또 생장이 빠른 나무는 이식이 잘 되지 않고 전지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래서 태풍이 불면 근심거리 나무 중 하나가 목련이다. 사방으로 지주목을 해주어야 안심되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목련이 가을이 되자 이상하게 생긴 빨간 열매를 매달아 더욱 놀란다. 지금도 목련의 우둘투둘 길쭉하게 생긴 빨간 열매는 목련꽃과 너무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붉은 열매가 벌레처럼 달리면 사람들은 안 믿으려 한다. 화려하게 시작했다 마지막 수확 모습을 초라하게 보낸 목련의 한 살이가 어쩐지 쓸쓸한 것은 인간의 관점이길 바란다.   



 

 목련 2에서 다시

목련이야기를 이어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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