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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Mar 25. 2023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진달래



지구 온난화가 실감 나는 요즘이다. 봄꽃 개화 시기가 10일은 빨라졌다고 한다.

3월인데 벌써 벚꽃도 피고 둘레길을 거쳐 산에 갔더니 진달래도 활짝 피었다. 그리고 생강나무꽃도 샛노란 꽃송이들이 가지마다 붙어있다. 사진 찍느냐 따라가질 못하고 있자 같이 갔던 남편은 화가 날 지경이 되나 보다. 나랑 같이 산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해찰이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인정한다. 이 꽃도 예쁘고, 저 꽃도 예뻐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오늘은 생강나무와 진달래가 산길이 줄지어 서 있다. 연한 분홍색의 진달래가 수줍은 듯 살랑거리며 잎도 없이 먼저 나와 있다. 개나리가 민가에서 봄을 알려주기 시작하면 산에서는 진달래가 봄이 왔음을 전해준다. 우리 국민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일찍부터 외우고 자라서 그런지 유난히 진달래를 좋아한다. 옆 나무에서는 파릇파릇 싹이 나기 시작하여 삼원색이 황홀 지경이 된다.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보다 진달래를 더 좋아해서 우리나라 꽃으로 바꾸자는 주장까지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우리나라 산은 토양이 산성화 되어 토질이 좋지 못했다. 질 좋은 흙은 알칼리성을 띄워야 하는데 토양이 산성화 되어 척박하다 보니 나무나 꽃들이 잘 자랄 수 없었다. 그런데 산성토양에서도 햇볕만 있으면 꿋꿋하게 잘 자라준 나무가 진달래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에는 다른 꽃에 비해 진달래가 많이 자라게 되었다.      



진달래를 그대로 느껴보기 위해 가지고 간 도시락통에 몇 송이를 따서 담았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이면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 먹었다고 한다. 중전마마까지 나서서 화전을 부쳤다고 하는데 나도 부쳐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가능하면 나도 진달래 피는 철에는 진달래로 화전과 화채를 만든다. 그냥 분위기를 잡아보는 것이다. 진달래는 수술이 8~10개, 암술이 한 개 들어있다. 통꽃으로 5갈래로 갈라져 있다.


수술과 암술을 빼내고 꽃잎만 남겨 잘 씻어 물기를 없앤다.  찹쌀가루를 익반죽 하여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익힌 후 꽃잎을 올린다. 쑥도 올려 푸른색도 내고 쑥향도 같이 맡으면 더욱 봄이 느껴진다. 거기에 오미자차나 매실차에 꽃잎을 올려 화채를 만든다. 꽃잎은 녹말가루를 발라 뜨거운 물에서 익혀 찬물에 넣으면 꽃 모양을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다.     


모처럼 화전과 화채를 먹으니 진달래의 애절한 사연이 들리는 듯하다.

 동지섣달 긴긴 세월 간절함과 애절함에 밤새 피 토하며 슬피 우짖던 두견새의 피가 땅에 떨어져 뿌리가 빨갛게 젖으면 피어난다던 진달래이다. 그래서 진달래를 ‘두견화’라고도 한다. 그리운 고향(촉나라)으로 돌아가고픈 맘에 ‘귀촉~ 귀촉~’하며 울던 두견새를 달래려는 듯 고운 눈빛으로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는 아직 쌩쌩 부는 찬바람에 가지를 휘청거리며 산속을 지키고 있다. 다른 친구들도 없는 척박한 산속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다 보니 두견새의 울음소리는 더욱 애잔하게 들렸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사연을 안고 있는 진달래꽃을 넣어 만든 두견주는 애주가들의 애환을 달래는 술친구가 되었다.  어쩌든 진달래는 우리 국민의 정서에 어울리는 한을 품고 자라고 있다.

     



보통 우리 화단에 자라고 있는 철쭉과는 비슷한 듯 하지만 다르다

진달래는 꽃이 피고 나서 잎이 나지만, 철쭉은 겨울에도 잎을 달고 있다.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고 하고, 철쭉은 개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달래의 꽃눈은 가지 끝에 여러 개가 달려 꽃이 여러 개가 같이 피고 꽃받침이 없다. 줄기가 구불구불하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화단이나 정원에서 보이는 육종 된 철쭉은 관상용으로 심어 가꾸는 산철쭉이다. 서로 교배하고 육종하여 수백 종이 넘는 원예품종이여서 다양한 모습과 색상으로 가장 흔하지만 또한 예쁜 모습으로 정원을 오랫동안 빛내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산철쭉은 초록색 잎을 겨울까지 달고 있는다. 봄 화단을 가장 오랫동안 장식하는 꽃은 붉은 꽃인 영산홍, 자색인 자산홍, 흰색인 백철쭉 등 산철쭉들의 종류가 다양하다. 일본은 육종 기술이 발달하여 많은 철쭉들이 개량되어 우리나라와 유럽 등지까지 널리 퍼져있다. 일본에서 조경용으로 개량된 영산홍은 철쭉과 비슷한데 기존의 잎이 떨어지지 않고 묵은 잎을 달고 수술이 5개인 꽃이 핀다. 철쭉은 새잎이 먼저 나오고 수술이 10개인 꽃이 피게 된다.     


           

진달래나 철쭉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철쭉 꽃송이 위쪽에 까만 점들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꽃잎 끝부분부터 암술이 있는 즉 꿀샘이 있는 쪽으로 이어진다. 꿀샘이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꿀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허니 가이드’이다. 수술머리의 꽃가루를 많이 묻혀 와서 암술머리에 쏙 들어가야 수정이 되기 때문에 꿀벌들이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풍매화가 아닌 충매화로 수정하는 이들이 묘안을 짜낸 것이다. 그런데 일반 철쭉과는 달리 흰 철쭉은 허니가이드가 잘 보이질 않는다. 하얀 꽃에 까만 점을 찍는 것보다 연한 연두색으로 살짝 점을 찍어뒀다. 하얀 꽃에 감히 까만 점을 찍어 오점을 남길 수 없었나 보다.     


 


산속에서는 요즘 진달래가 피고 있다. 정말 사뿐히 즈려 밟고 왔다. 이미지가 머리에 박혀서 인지 진달래 앞에서는 어쩐지 경건해지고 수줍은 색시같은 느낌이 든다.  산철쭉은 화단에서 꽃망울을 터질 듯 부풀리고 있다. 그리고 끈적한 액체를 발라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진달래가 사라진 산에 머잖아 철쭉이 또 산을 불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화단도 산철쭉으로 불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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