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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Apr 27. 2023

도종환시인의 강의를 듣고

스콧 니어링의 좌우명

    

88년도에 그 영화가 나왔을 것 같다. 남편이 지방 발령받아 내가 전주에 살고 있었을 때니까.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이 나오고 영화가 나왔다. 아마도 접시꽃 당신이라는 말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을 정도로 썬세이션을 일으켰다. 현재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이라고 한다. 지금도 접시꽃이 피어 있으면 사람들은 ‘접시꽃이 피었네’라고 말하지 않고 ‘접시꽃 당신이 피었네’라고 말한다. 나도 그런다. 습관적으로 입에 붙어서 그러나 보다.

    


그즈음 몸이 많이 안 좋았을 때였지만 그 좋아하는 영화를 안 볼 수는 없었다. 최루성영화를 유독 좋아했던 것 같다. 좌석이 없어 거의 앞자리에 앉아서 볼 수밖에 없었다. 이덕화의 묵직한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지금은 안 좋아한다) 옥수수 잎자루 때리는 빗소리 속에 흘러나오던 낭송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영화 보는 내내 몸이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가는데 영화관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 가며 끝까지 버티며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더욱이 앞자리에서 봤으니 몸 상태가 더욱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남편은 자기도 도취되어 옆을 볼 겨를도 없었을 거다.  영화가 끝나고 겨우 일어나서 나오며 쓰러져 병원신세를 톡톡히 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도종환시인은 나에게 더욱 각인이 되어있다.    


  

도종환시인은 그 뒤로는 일상생활이 거의 중계되다시피 했다. 재혼했을 때 독자들이 분노했던 기억도 있다. 시집을 다 내다 버리고 불태우고 비난이 한참동안 되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전교조가 되더니 또 어느 날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된 자신은 시인으로서 사망했다고 말했던 것 같다. 사랑을 바탕으로 감성적인 시를 우리에게 주던 시인이었는데 아쉬움은 우리 몫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제저녁 한국숲해설가협회주관으로 도종환시인의 ‘숲과 인문학’이라는 강의가 있어  가슴 두근거리는 맘으로 참석했다. 꼭 실물을 뵙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너무 반가웠다. TV에서 자주 봐왔지만 1954년생이라는데 훨씬 젊고 멋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그런 감성적인 시를 쓸 수 있을까 했던 마음이 ‘그래 저러니까 그런 주옥같은 시가 나오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얘기는 일체 없이 자연에 대한 인문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었다. 숲해설가 1기생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협회에서 인문학 강의도 하셨던 경력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숲과 자연에 대한 조예가 엄청 깊으셨다.    

  

몇 가지 시를 지을 때 상황을 얘기하시는데 그렇게 시를 쓰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을 바라볼 때 갑자기 생각나는 한 두 줄을 메모했다가 시를 쓴다고 하셨다. 난 시를 못 쓰지만 담백한듯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을 좋아한다.    


 


어느 날 비가 보슬보슬 오는 날 주황색 코스모스 꽃이 보였다고 한다. 코스모스가 색깔이 이상하네 하며 다가갔다고. 그 당시는 이 꽃을 잘 몰랐지만 금계국이었다고 한다.

주황색 코스모스가 이상하여 옆으로 가서 쳐다보고 있는데 바람에 흔들거리며 꽃에는 비가 내려앉고 있었다고 한다. 이 비를 맞으며 젖고 있지만 이것이 다시 밑거름이 되어 다시 살아갈 힘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하는 구절을 메모했다가 시를 완성했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번져와 향기 따라가보니 라일락 한 그루가 서있었다고. 꽃의 언어는 빛깔과 향기인데 나에게 향기를 보내는 건 뭔가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하여 가까이 가서 서성이는데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말을 꽃이 하더라는 거였다. 내일도 모레도 비에 젖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잃지 않는 라일락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라일락꽃이란 시가 나오게 됐다고 하셨다.   

  



       


우리 조상들이 왜 매화를 좋아했겠는가?

매화나 살구꽃, 배꽃, 사과 꽃들은 다들 작고 보잘것없지만 은은한 깊은 맛이 있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아서 튼실한 과일을 맺을 수 있다. 단 10여 일을 피우고 나머지 기간에는 기다리며 참는 시간이라고 한다. 꽃이 피고 잎이 나오기 시작하면 다 같은 초록의 잎이 나오는데 이런 평범한 것들의 소중함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들이라고 한다고 하신다. 고된 일상이 깊고 아름다운 특별함으로 변하도록 하면 좋겠다. 일상을 분노하며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요즘 사람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너무 공감되었다.

힘들고 시련과 좌절이 됐을 때마다 꽃들이 다가와 거칠어지지 말라고 말해준다고 하신다. 그들은 나를 다독여 주며 손수건을 건네줄 때 그들에게 위안을 받는다고. 꽃의 향기가 묻어 있는 소박한 시가 좋다고 하셨다.   


        끝으로 스콧 니어링의 좌우명을 같이 가슴깊이 새기며 살자고 하셨다.     



2시간 동안 강의를 듣는 동안 저런 감성의 소유자가 거친 정치판에서 어떻게 견디어 내고 있는지 의아하기는 했다. 어쩌든 도종환 시인이 어느 곳에 있든지 언제나처럼 시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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