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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May 02. 2023

오랜친구

지금처럼 살자

40년쯤 전이나 보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다.

16층 꼭대기 층이었다. 12호까지 있어 1호에 산 우리 아이들은 12호까지 달려 다닐 수 있었고, 롤로스케이트를 타고 질주할 수도 있었다. 다른 집 아이들도 그렇게 살았다. 그 시절에는 왜 층간 소음이라는 말은 없었나 보다. 지금도 그쪽을 지나가면 생각나지만 한번 떠나온 곳은 왜 그리 낯설어지는지. 아이들 어렸을 때 10년을 살았는데도 서먹하다. 근데 그때 만났던 친구들은 지금도 만난다. 성당을 같이 다니던 교우들도 지금은 그곳에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이 각자 흩어져 살지만 두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또 죽이 잘 맞는 친구들이 있었다. 남편들까지 같이 만나던 친구 3명이 있었다. 아이들이 비슷하고, 여자들과 남편들의 나이가 같아서 금세 친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남편들이 다들 시골 출신들이었다. 쉽게 말하면 촌놈들이었다. 나름 개천에서 용 났다고 시골에서는 소문이 났던 남자들이라 공통점이 참 많았다. 남편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말은 은퇴하고 시골에 가서 밭 일구고, 소 돼지 키우며 살겠다는 말이었다.      

여자들 대부분은 가장 싫어하는 소리이지 않을까 한다. 부부가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이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았다. 우리 남편은 그사이 바뀌어 시골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노동하는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화분에 물 한번 줘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도 자연주의자이지만 네온사인 반짝거리고, 문화생활 하기 좋은 도시에서 살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만나던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다 한 동네에 또 모여 산다. 나랑 한 친구는 바로 옆 동에 살게 되어 옛날로 다시 돌아가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내가 이사를 하고 싶어 하자 친구가 자기 사는 곳이 살기 좋다고 이사 오기를 권했다.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에 온 곳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다. 우리 둘이 어디 이사 가지 말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자고 약속하고 내가 이사를 온 곳이다. 대만족 하고 살고 있다. 아이들은 다 나가서 둘이 살고 있어 옆에 누가 살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든든하다고 둘이 서로 말한다. 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좋은 것임을 느낀다.     

  


오래전 친구네가 시아버지 상을 당했다. 시아버지 잘난 두 아들 덕에 손님이 엄청 많았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장례업체가 없어 식구들이 식사 대접을 해야 했을 때이다. 난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빨리 좀 와 달라고. 난 이유도 모르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이틀을 붙잡혀 손님상차림을 도와야 했다. 식당 서빙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지는 그때 알아 지금도 식당서빙하는 분들 보면 고생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뒤 친구 동서가 화장품을 선물했던 걸 기억한다. 내가 처음보는 고급스러운 화장품이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너무 아팠는데 말도 못 하고 이틀을 일했다. 지금도 친구는 그때 일을 말한다.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왜 너 생각이 났는지. 네가 오면 다 해결될 것 같아서 너를 불렀는데 정말 다 해결해주지 않았냐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기억해 주니 고마웠다.  


     


요즘은 남편들은 은퇴했는데 엉뚱한 내가 아직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한다. 약속을 해야 만날 수 있어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난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려고 한다. 주일에 가끔 만나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데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다. 난 친구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친구는 몸도 마르고 약해 약간 공주과이고, 난 무수리과인데도 궁합이 잘 맞는다. 그 친구는 인터넷 구매도 못할정도로  문명을 안따라간다. 난 또 유행을 쫒아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도 긴 세월 동안 아직 한 번도 서로 싫은 표정 지은 적이 없이 궁작이 잘 맞는다. 친구가 자기 아이들에게 내 전화번호 알려주며 자기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언니네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부탁해뒀다고 한다.    



오랜만의 3일 연휴라서 친구네와 점심 먹기로 했다. 우리집이 다음날 약속이 없다고 했더니 낼 자기네 놀이터에 놀러 가자고 한다. 천 평짜리 놀이터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이니 모처럼 함께 가기로 했다. 근사한 조립식집도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발했다. 시골에서는 일찍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맨날 젊었을 때의 꿈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소 돼지는 키우지 못하지만 자기 하고 싶은데로 살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거치고 보니 내가 방문한 것은 한 5년쯤이 넘었나 보다. 그 사이 키웠다고 이것저것 야채와 과일을 매번 가져다 줘서 먹기만 했다.  요즘은 회사에 매일 출근하지 않아서 시간이 되어 자주간다고 한다.




그 사이 너무 변하여 깜짝 놀랐다. 동네에 집들이 다 들어와 버린 것이다. 입구에 친구네 땅만이 놀이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건너편 멀리도 집들이 들어오려고 계단을 만들고 길도 다져져 있다. 사람들이 야생화를 왜 캐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고라니들이 맨날 들어와서 야채들을 키울 수가 없어 철조망을 높이 쳤더니 고라니한테 미안해 죽겠다고 한다. 뒤편이 산이라서 그곳에 고라니가 살고 있다. 그런 곳에 부동산업자들이 와서 맨날 팔지 않겠냐고 말한다고 한다. 너무 속상하다고 한다. 천 평의 땅에는 정말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이다. 무계획적이고, 자연 친환경적이다.  사과나무가 있고, 단풍나무가 있고 철쭉이 있고 아로니에 가 있고 주목이 있고 정말 가짓수가 셀 수 없는 종류들이 다 아무 곳에나 심겨 있다. 어림잡아도 50가지도 넘을 듯했다. 그것들이 정말 어수선하게 심어져 있는 것을 바라보며 스스로 행복해했다.        

     


친구가 하는 말 오는 사람마다 이런저런 말로 훈수를 두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 자기 맘 편하게 심고 가꾸고 그러다 보면 세월이 가겠지. 이곳을 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젊은것도 아닌데 구태여 구획 정하고 예쁘게 심은들 뭐 할 거야. 그냥 오늘 나무 하나 사 와서 빈 공간에 심고. 낼 한 나무 사 오면 저곳에 심고 그렇게 노는 거지 뭐 별거 있냐그런다. 바닥에 풀들도 지렁이와 함께 자라고 과일수들은 벌레들과 나눠먹어야 해서 먹을것도 없다. 제초기로 가끔 잡풀을 깍아내지만 풀들이 비웃듯이 또 그보다 더 자라있다.  친구 남편은 놀이터(항상 이렇게 부른다) 다닌다고 큰 차도 사고 운전도 배웠다고 한다.  맨날 부인이 안따라 가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다고 한다. 기사가 계속 있어 아직 면허도 못 딸 정도로 열심히 일 했으니 지금 그 한풀이를 이곳에 하고 있다고 한다.       


 

차이브,  나도점나물.  미나리아재비,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밭에서 일하던 기억으로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는다고. 아마도 엄마가 계속 그립나 보다 싶었다. 내 남편은 울타리 황매화 줄기를 가지런히 다듬고 난 집 주변에 심어진 야생화에 꽂혀 정신이 없다가 무성하게 자란 쑥만 몽땅 뜯었다. 친구는 마당의 잔디에 잡초를 뽑고 앉아 있다. 난 이 쑥 때문에 오늘 내내 일을 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쑥을 뜯은것은 처음이다. 가위로 윗순만 잘랐다. 쑥 장아찌도 담고 쑥을 삶아 냉장고에 넣어 뒀다.  삶아서 보니 3키로였다. 다음 쉬는 날 쑥떡을 해서 나눠 먹어야겠다. 아마도 사돈네 팔촌까지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조립식이지만 이것저것 쉴 수 있도록 해뒀는데 열쇠 둔 곳을 알려주며 아무 때나 지나갈 일이 있으면 왔다 가라고 한다.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나 보다. 다들 흰머리가 다 나 있고 얼굴도 쭈글거린다. 오래 앉아 있으면 무릎이 아파 일어났다가 앉는다. 아이들 다 분가해서 다 잘 살고 있고 아직 건강한 지금 뭘 더 바라겠는가? 지금 나이에 더 많은 물욕을 탐할 일도 없다. 내가 편한 대로, 편한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고 얘기하며 지내는 지금이 가장 편한 삶이 아닌가 싶다. 우리 욕심내지 말고 지금처럼 살자고 다짐하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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