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초향 Jul 30. 2023

하루 종일 놀기

'밀수'영화를 보고

매 주일마다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이번주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뭔가에 중독이 걸린 듯 뭔가 일이 없으니 불안해진 건지도 모른다. 4명이 있는 톡방에 ‘낼 놀자’하고 보냈다. 맨날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니 순식간에 다들 ‘좋아 좋아’ 한다. 다른 연락 할 때는 답도 느리게 달던데 놀자고 하니 신바람이 났나 보다. 내가 놀자고 말할 때는 극히 드물다. 별일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 보고 점심 먹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9시 20분에 종로에 있는 피카다리 1958에서 만나기로 했다. 종로는 그래도 여러 명이 모이기가 쉬운 곳이다. 지하에서 내리면 지하로 극장이 바로 연결되니 한여름 더위 피하기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장소가 된 건 무료급식소가 있고 탑골공원에 노인네들이 모여있어서 그럴 것이다. 류승완 감독을 대다수가 다들 좋아한다. 베테랑이랑 모가디스를 봐서 그냥 믿고 보는 감독이라고 하니 ‘밀수’를 보기로 했다.  


    

김혜수와 염정화, 조인성이 나온다. 1970년대 밀수품이 성황을 이루고 있던 때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만든 영화라고 한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오는 해녀들이 광채가 나는 고운 얼굴로 나와 약간은 이질감이 들었지만 금세 적응되어 빨려 들어갔다. 70년에 뽕짝이 극장 가득 울러 퍼지면서 신바람 나게 시작되었는데 돈을 벌기 위한 밀수에 빨려 들어가면서 격투장으로 바뀌어 갔다. 김혜수는 약간 튀는듯한 연기는 조금 거슬렸지만 어떻게 물속에 들어가서 완벽하게 작업을 해내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바닷속에서 저렇게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감탄했다. 너무 즐겁게 영화를 보고 나온 여운을 뜨거운 열기가 금방 녹여버렸다.


    

인사동으로 걸어가는데 스카우트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많았다. 인사동도 예전 같은 고전적인 모습은 거의 사라져 가고 인제는 평범한 골목길로 변모해 가는 것 같다. 적당한 가격의 상품들이 줄지어 서 있지만 인제 쇼핑하고픈 나이는 아니나 보다. 사고 싶은 것이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오래전부터 맛집으로 유명하던 ‘조금’으로 가서 솥밥을 먹었다. 언제 가도 항상 변함없는 맛인 것 같다. 가격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많이 올라 있었다.  

   

점심을 먹고 송현공원에 들여 보다가 너무 더우니 안으로 들어가자고 해서 민속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보자기 공예를 보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보자기 공예만 빼고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1층의 넓은 로비와 2, 3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관이었다. 대나무로 제작된 죽책 사이사이에 끼워두는 격유보부터 빗살무늬 토기까지 있었다. 넓은 공간에 마련된 박물관이 후대에는 송현공원과 함께 서울의 명물이 되면 했다.      


난 집으로 갔으면 했는데 모처럼 나왔는데 왜 빨리 들어가냐 아우성이어서 인사동으로 다시 들어와 팥빙수 집으로 들어갔다. 난 혼자서도 빙수 한 그릇을 다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그러니 또 혹해서 들어갔다.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수다 떨기 위한 모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생산적인 쓸데없는 말들만 하고 오면 머리만 아프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난 좋아하지 않는다. 아줌마들 카페에 앉아 수다 떨다 보면 나오는 대화가 다들 시시컬렁한 대화이다. 인제는 아줌마도 못되고 다들 할머니가 되었으니 맨날 어디 아픈 얘기나 손주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인제는 돈 번다는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도 없고, 어디 맛있는 곳이 있다더라는 얘기도 없다. 삶에 흥미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증거이다. 예전 사람들은 며느리 흉봤다고들 하지만 지금은 며느리 하고 가능하면 안 부딪치는 것이 상수라고 한다. 눈치 보며 산다는 얘기다.  잘못 말했다가는  인스타엔가 올릴까 조심스러워한다. 세상이 어떻게 가족도 못믿는 세상이 되어가는지. 딸이 옅에 살면 애기만 보라고 하고 아들은 옅에살면 며느리 눈치봐야하니 다들 뚝 떨쳐버려야한다는 얘기다. 돈만 있으면 뭐 하냐는 얘기다. 특별한 재미가 없다고들 한다. 나만 직장에 다니고 있고 다들 할 일이 없는 할머니들이 무슨 재미가 있으라 싶긴 하다. 얼마 전까지도 교사를 했던 두 명도 벌써 재미없다고 한다. 나는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많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다들 자식들 나가고 둘이서 살고 있다. 그러니 집에 가도 별 볼 일이 없고 하니 저녁까지 먹고 가자고 한다.      


혼자만 또 가겠다고 하기도 분위기 깰 것 같아 줄 서서 먹는 미슐랭인 만두집으로 갔다. 이곳까지 스카우트 외국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좋은 일이니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며 보니 사진 포스터가 크게 걸려있다. 안 닮은 것으로 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같았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까실한 여름 모시옷을 입고 있었다. 며느리는 겨울 공단 한복을 입고 옷고름도 틀리게 매어 있는 걸 쳐다보며 우리끼리 갑론을박했다. 포스터 사진 찍자고 하니 여름 한복이 없는 며느리가 아무 옷이나 입고 나와서 찍었나 보다 하며 ‘참 우리도 별 할 일 없으니 이런 것까지 눈에 띈다’고 웃었다.     


그 식당 앞인 경인 미술관에선 아직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고, 3명은 미술관에 들어가서 전시회를 둘러볼 수 있었다. 6개의 전시관과 찻집으로 구성되어 도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휴식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불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줄 서 있는 손님들 때문에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고 역시 맛있는 만둣국을 먹고 나왔다.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모자도 사고 액세서리도 하나씩 사 들고 나왔다. 딱히 맘에 들지 않다고 하면서도 하나씩 골랐다. 오늘 인사동에 나온 기념이라고 했다. 그다지 뜨겁지 않은 날 탓이었는지 종로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다 집에 오니 10시가 되었다. 남편은 ‘모처럼 아침부터 나가더니 저녁까지 놀다 왔네.’ 그런다. 멀리 여행가지 않고 시내에서 이렇게 오래 시간을 보내다 온 기억이 처음 같다.     


      

어린 시절 대문 밖에서 ‘애들아 놀자’하고 소리치면 나가서 땀 뻘뻘 흘리며 놀다 오곤 했는데 인제는 카톡으로 ‘놀자’하고 만났다 들어오니 머리가 지근거렸다. 이건 세월의 흐름 탓이다.  이렇게 찍으니 셀카도 쓸만하다.

작가의 이전글 참새 목욕하는 모습보고 더위를 잊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