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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Aug 04. 2023

고양이가 무서워요

겁쟁이 토리


공원에도 길냥이들이 많이 있다. 사람들이 다니든지 말든지  가운데 늘어져서 자고 있다. 요즘 땡볕이라서 나무 밑에 있기 하지만 평상시에는 사람들이 비껴 다녀야 한다. 누군가가 말을 걸거나 위협을 해도 날카로운 눈을 뜨고 쳐다보며 ‘왜 그래?’ 하며 시큰둥하게 있다. 그런 길냥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천사들이 있으니까 그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통조림도 가져다주고 비 가릴 수 있도록 조치도 해준다.    

 


난 아직까지 한 번도 길냥이들에게 먹을 것을 줘 본 적이 다. 어느사람들은  캣맘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난 생명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난 한 번도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줘 본 적이 없다. 내가 인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렇다고 인심이 좋은 편도 아닌 것 같다. 난 아직까지도 고양이들의 눈이 무섭고, 생김새도 무섭다. 최소한 2m 근방까지 접근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그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산책하는 개들이 있으면 도망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터전은 갈수록 좁아지고는 있다. 저녁에 우리 집 강아지가 산책하다가 그들이 눈에 띄면 난리가 난다. 화양목 울타리도 뛰어넘고 뚫고 다니며 길냥이들을 몰아낸다. 눈이 확 돈다고 해야 하나 싶다. 끝까지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불사른다,     



우리 집 강아지는 토리다. 토리라는 녀석은 다들 높은 청와대에서 살고, 용산에서도 산다. 그런 토리와는 달리 우리 집 토리는 말티다. 현재 4,3킬로, 매끼마다 닭가슴살을 먹으며 다리 근육도 튼튼히 키워 제법 멋지다. 뒤태가 가장 멋지다. 어그적 거리지 않고 워킹하듯이 우아하게 걷는다. 7년 전 우리 집으로 어느 날 왔는데 지금껏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우리 집 대장으로 살고 있다. 온 식구들의 중심에 있다.    


 

그렇게 활발하게 뛰어다니며 온갖 간섭을 다하더니 요즘은 동작이 느려지고 둔해졌다. 더위 죽겠나 보다. 현관 타이루 바닥에 누워있기도 하고 화장실 바닥에 들어가 자기도 한다. 그래도 안에서 뭐하는지 궁금한지 머리만큼은 거실 쪽으로 내밀고 누워있다.      



개는 털빨이라고 하는데 어제는 완전 빡빡 밀어버렸다. 그랬더니 구석에 숨어 나오지도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나 익숙해지면 나올 것이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미용을 하고 나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자기를 거기에 데려가 괴롭혔다고 식구들에게  항의하는 것 같다. 집에서는 대장노릇을 하며 귓속 같은 곳도 쳐다보지 못하게 하는데 병원에 가면 몸을 온전히 맡기고 얌전히 대주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아마도 식구들은 우습게 보이지만 의사는 무섭나 보다.        

  


요즘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서 더운 날인데도 저녁에 거실 문을 열어 둘 수가 없다. 무서워서 밖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집은 1층이다. 앞집도 없는 1층이라서 전혀 불편하지 않고 너무 만족하며 살고 있다. 1층이지만 베란다에서 볼 때는 2.5층 정도여서 앞쪽에 사람통행도 없고 넓은 정원으로 이어져 있어  앉아서도 정원을 감상하며 살아간다. 1층 베란다 쪽 화단에는 다른 사람이 전혀 출입할 수 없는 구조이다. 우리 집 화분들이 자라고 있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다시 안으로 들어온다. 그 사이로  저녁이면 커다란 할로겐전구가 켜있다. 항상 저녁이면 켜져 있어 우리 거실과 방은 언제나 밝은 편이다. 그리고 화단에서 우리 집 베란다가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창문 위로 거실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필요하면 암막 커튼을 치고 지낸다.     



우리아파트에 올봄에 길냥이들의 새끼가 한꺼번에 4마리가 태어난 적이 있다. 동 베란다 밑에서 태어나서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오며 가며 본 적이 있다. 따뜻한 봄날이면 밖에 나와서 햇살에 앉아 있곤 했다. 난 고양이들에게 친절하게 하지 않아 날 따르지 않을뿐더라 우리 토리가 보기만 해도 쫓아다녀 우리 집과는 앙숙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우리 토리가 베란다 밖을 보고 짖어 가보니 고양이가 보였다. 토리가 짖고, 내가 보이자 쏟살 같이 도망가버리곤 했다. 이 애들이 왜 이곳으로 오는 거냐 하며 불평을 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오더니 숫자도 늘어간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가지 않고 토리는 지쳤는지 인제는 짖지도 않는다.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냥 와버린다. 고양이들이 거실을 바라보고 쳐다본다. 눈이 마주쳐도 꼼짝없이 쳐다보고, 가라고 소리쳐도 그대로 쳐다보는 걸 보면 무서워서 인제 베란다 밖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다. 낮이나 훤할때는 본적이 없는데 컴컴해지면 우리집 화단으로 와서 우리 거실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무서워하는 그 눈으로.


어제는  내가 너무 무서워하니  남편이  당구큐대를 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화단으로 간다. '내가 이것들을 그냥~'하고 나가니 도망가 버린다. 얼마있다 다시 또 온다.



왜 우리 거실을 보고 있을까요. 그렇게 난리 피우던 우리 토리는 왜 짖지도 않고 포기했을까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지요? 한 애만 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마리가 같이 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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