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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Sep 20. 2023

아이에게 거짓말시킨 할머니

홍정희 콘서트에 다녀와서

뭔가 머쓱할 때는 이런저런 핑계 삼아 일을 저지르곤 한다

가을이 왔으니까...

뭔가 음악회나 오페라나 한 번쯤 감상하러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가을이 멋지게 오는 듯하기 때문이다.


고민하고 있던 차에 딸네미가 콘서트 티켓을 4장 얻었다고 연락이 왔다.

돈도 안 주고 공짜로 얻었다고 하니 더욱 좋은 일 아닌가.

그래서 어제저녁 8시 잠실롯데 콘서트홀에서 하는 콘서트를 보기로 했다.

홍정희 오페라 -COREA ART SONG STORY



예능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대충 들어서 짐작만 한다

부모 등골 빼먹는 게 예능과목 전공자들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도 남편이 세종문화화관에서 하는 피아노 독주회를 보러 간다고 한다

웬 피아노독주회를 가냐고 물어보니까 친구 부탁이어서 어쩔 수 없이 간다고 한다.

40이 넘는 딸이 피아노 독주회를 하는데 부모가 돈을 다 부담해서 독주회를 열어주고, 티켓 판매까지 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진다고 한다. 물론 남편은 친구에게 초대권을 받아서 가고 고맙다는 인사까지 들었다고 한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부모의 등골을 빼서 예능적인 재주를 유지한다고 하니 무재주인 우리 아이들이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맨날 잠실롯데를 돌아다니는데 그곳에 그렇게 커다란 콘서트홀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음향이 아주 좋아 성악가들이 애호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2천 석이 넘는다고 한다.

롯데에서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8층 콘서트홀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 모여 있었다.

우린 VIP석인데 10만 원짜리 자리였다.


별생각 없이 손녀딸을 데려갔는데 가서 보니 미취학아동은 입장이 불가라고 한다

진퇴양난.  아이가 못 들어가면 엄마까지 못 들어가니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설득해 보려 했다.

붙잡고 '어쩔 수 없어 **이한테 얘기하니 잘 들어봐'라고 말했다.


"미취학아동, 즉 7세가 넘어야 이곳을 들어갈 수가 있는데 너는 6세라서 들어갈 수가 없어. 그래서

잠시 동안만 네가 7살이 되면 어떨까? 초등학교 1학년 7살.... 들어갈 때 입구에서 아저씨가 물어보면 7살이에요 하고 대답해 주면 어떨까?"라고 설득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를 한 모양이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박**입니다. 7살이고요'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지? 한다

아니 그냥 9살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런다.


거짓말을 조장하는 엄마와 할머니가 두군거리는 맘으로 거짓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는 한술 더 떠서

9살이라고 하겠다고 한다. 가슴이 덜컹거렸다.

이건 선의의 거짓말도 아닌데............

그렇게 입구에서 '7살 1학년이에요'를 야무지게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데려가도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은 얼마 전 아파트 마당에서 콘서트를 했는데 1시간 반동안 꼼짝 안 하고 앞줄에 앉아서 끝까지 손뼉 치고 봤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생각만큼 거대한 무대가 압도했다. 맨날 어린이 뮤지컬만 보러 다니던 손녀딸 눈에도 멋지게 보였나 보다. 앞사람 머리가 가린다고 의자에 방석도 깔고 앉아 보기 시작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뼉 치며 보기 시작했다.  성악을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도 없고 멋진 춤도 추지 않았지만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가 바뀌고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부르는 것에 잠시동안은 견딘 듯했다. 30분이 넘자 서서히 기대고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1부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거의 울쌍이 되어간다. 재미가 없냐고 물으니 대답을 안 한다.

뒤에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게 해서 귀가 아프다고 한다. 곡이 끝날 때마다 브라보, 앙코르를 외치곤 했던 뒷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아이가 유난히 소리에 예민하다. 다른 것은 굉장히 느긋한데 소리에 예민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럼 나가자고 했더니 그냥 있겠다고 버티더니 결국은 딸이 아이를 데리고 1부만 보고 나갔다. 먼저 가라고 했더니 안 가고 밖에서 1시간 반을 더 기다렸나 보다. 끝나고 나오니 입구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달려온다.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우리 집까지 데려다주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돌아갔다.



8명의 성악가들과 악기 연주자 작곡, 총감독 등 그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능력을 쏟아부어서 이 콘서트를 열었을지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공짜표로 봤는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주 감동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 더욱 미안했다.


승강기를 탔는데 몇 명의 어르신들이 함께 탔다. 이쪽 계통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 같았다.

마지막 출연자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데 어떤 분이 '오늘이 우리 남편'생일인데요. 우리 남편이 어디 와있을 겁니다. 우리 남편 생일 축하해 주세요' 하고 박수를 유도했었다.

그 얘기를 꺼내며

"  ***은 맨날 할 때마다 자기 남편 생일이래. 남편한테 돈 뜯어내려고 무지 노력해. 그 남편이 **잖아" 그런다.

부모든 남편이든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가야 하는 예술가들의 힘듦을 한번 더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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