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바람이 불며 눈발이 날리며 제법 겨울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20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더니 골 바람인지 눈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늘로 올라가는 눈송이들은 제길을 찾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며 헤매고 있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 보니 내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었구나 싶었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사업하시는 분들이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사고 전환이라고 하는데 난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해도 밝아 왔으니 뭔가는 조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이 먹으면 현상유지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하니 난 달라지지 않고 작년처럼 살아보려 한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파란 물감을 온통 바른 듯하다.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서 거울을 봤더니 내가 꼭 인디언 추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머리한다고 머리를 길렀더니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잖아도 주름진 얼굴에 머리가 길다 보니 더 추레해진 듯해서 미용실로 향했다. 평상시처럼 짧게 커트를 쳤다. 그랬더니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아직 도롯가에는 하얀 잔설들이 남아있다. 햇살을 먼저 받은 교목 위에는 봄기운이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매일 들리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감주나무 열매와 일본 목련의 겨울눈이 소나무와 함께 어울려 있다
눈 덮인 조릿대
조형물 위에 작은 눈사람들이 추녀마루에 앉아있는 어쩌구니들처럼 줄지어 서있다. 누군가 이처럼 작은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 했을것이다. 나도 그 옆에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모자도 씌워주고 눈도 그려줬더니 씽긋 웃는 듯하다. 오랜만에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봤다. 처마 밑에는 낙숫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마도 산속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을 듯하다. 땅 속에 숨죽이고 있던 뿌리들도 살 맛이 났다. 작은 가지를 웅크리고 있던 나목들의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처럼 햇살이 나는 공원을 혼자서 거닐다 보니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산책하시는 분들이 많이도 나오셨다.
모처럼 눈사람을 만들었답니다
무궁화 손. 메타세콰이어 입,화살나무 촉의 눈. 서양등골나무잎 모자를 쓰고있습니다
부지런한 참새들의 요란한 노래를 들으면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뛴다. 바삐 움직이는 그들의 발 동작에 동화되다 보다 그런 것 같다. 참새도 있고 동고비도 간혹 보인다. 그래도 느린 비둘기와 멋진 까치들까지 모두가 먹이 찾기에 부산스럽다. 겨울은 사람만 힘든 것이 아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고양이의 삶은 더욱 팍팍할 것이다. 그중에 벌레들이 가장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땅속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천천히 나오는 그들의 한 살이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생존방법 일건대 현명하지 않는가?
이게 뭘까? 서로 상의하고 있나?
나무들도 그들의 방법으로 생존경쟁에 살아남는다. 겨울에는 내년 봄 새 생명을 움트기 위해 부단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추위에도 파란잎을 유지하고 있는 작은 풀들도 부스럭거린다. 진짜 봄이 왔나 싶은지 실눈을 가만히 떠보고 있다. 잠을 잔 듯 하지만 다들 숨 쉬며 성장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잠을 푹 자야 살아가듯이 말이다. 아이들은 자고 나면 커진다고 한다. 그만큼 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유전자대로, 그들의 어미를 닮은 겨울눈을 열심히 키우며 겨울을 지낸다. 잎눈도 만들도, 꽃눈도 만들며 부지런히 겨울을 난다.
내가 이 공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미국 산딸나무이다. 꽃이 어찌나 우아하게 피던지 이 꽃이 피는 5월이면 난 매일 문안인사를 드린다. 가장 흔한 꽃 중에 하나가 된 산딸나무와 닮은 듯 하지만 겨울에는 전혀 다른 나무로 보인다.
내 산책 코스안에 있어 매일 살펴보다보니 우리 토리 귀여운 것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산딸나무는 표피가 거칠고 하얀 총포가 4장으로 십자모양으로 달려 십자나무라고도 한다. 십자가를 만들던 나무라고도 한다. 가운데 작은 꽃이 피어 익으면 빨간 열매가 달려 딸기처럼 보인다. 새들이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가장 좋아하는 최애의 고마운 나무이기도 하다. 말랑말랑거리는 육즙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미국산딸기나무는산딸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수피가 매끈한 것이 지저분하지도 않다. 산딸나무에 비해 조금 늦은 날 총포가 나오게 되는데 연미색이 은은하고 우아한 꽃으로 만들어 준다. 가을이면 팥알 같은 빨간 열매를 맺어 여러모로 다르다. 특히 겨울철에는 전혀 다른 겨울눈으로 독특한 모양을 자랑한다. 산딸나무는 가지 끝이 V자형으로 갈아지며 그 가지 끝에 도톰한 꽃눈과 뾰쪽한 잎눈을 달고 있지만 미국산딸나무는 마늘 같은 모양의 두툼한 모양의 겨울눈을 달고 힘을 내고 있다.
겨울눈이 전혀 다르지만 그들은 층층나무과의 나무들이다. 이웃사촌이니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이란성 쌍둥이 같다고 해야하나? 올봄에 아름다운 꽃잎과 열매를 보여주려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돌아왔다.
산딸나무의 꽃눈과 잎눈
미국산딸나무의 마늘같은 겨울눈
겨울의 중간을 넘어가고 있지만 그리 춥지 않는 겨울이다. 더운 것은 참지만 추운 것은 참기 힘들다. 겨울이 봄을 빨리 데려오고 물러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