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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Mar 20. 2024

급성 후천성 망막변성증(SARDs)

우리 토리

요즘은 애완견을 키우는 가정이 많아졌다.  산책하러 나가면 다들 강아지와 함께다. 무슨 유행인듯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있다. 고양이는 밖에 나오지 않지만 강아지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강아지는 말티즈인 토리다. 많은 애견인 가정처럼 동물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게 되어 함께 살다 보니 가족이 되었다. 우리 토리야 말로 어느 날 저녁에 불쑥 우리 집에 왔다.  그 아이는 아빠가 다리를 다쳐 집에 꼼짝없이 있었는데  딸아이가 친구랑 같이 가서 아빠랑 친구 하라고  선물로 사 왔다고 데리고 왔다. 노란 플라스틱 밥그릇과 물그릇이 함께 왔다. 그리고 약간의 간식도 따라왔다. 철없는 딸아이가 충무로 애견샵에서 구입해서 들고 왔다. 구매계약서에 보니 2015년 10월생으로 2개월 반이 됐는데 예방주사를 한차례 맞았다고 되어있고, 몸무게 600g,  *개월이내에 폐사하면 교환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 오게 된 아이가 토리이다. 엄마젖도 제대로 못 먹고 케이지 안에 있다 우리 집에 오게 됐다. 그때만 해서 강아지를 어떻게 분양하는지, 유기견이란 존재 자체도 잘 모르고 있던 때였으니 그게 얼마나 잘못됐는지 조차 인식을 못했다. 절대 삽에서 사면 안된다는 사실을 며칠 후 알게 됐었다.


아무도 강아지를 키운다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던 때였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하얀 솜뭉치 같던 아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날 저녁 온 식구가 잠도 안 자고 아이 움직임을 쫓아다녔다.  간식하나를 먹으면 손뼉 치고 좋아라 했는데 깔아 둔 신문지에 가서 '쉬아'를 하는 신통함을 보이기도 했다. 온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이름을 '토리'라고 지었다. 그렇게 토리란 이름을 들은 적도 없이 창작으로 지었는데 강아지의 대명사처럼 토리라는 이름이 흔하게 되어버렸다.  토리나 우리 집 아이들 이름이나 다들 이름의 대명사들이니 그냥 부모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비난을 가끔은 듣는다.  우리나라 권력의 중심지에도 항상 토리라는 개들이 살고 있었다.


온 식구의 사랑을 받으며 3일쯤 지났는데 아이가 축 쳐지기 시작하더니 누워버린다. 놀래서 아이를 수건으로 싸서 동물병원을  데리고 갔다 오면 하루정도 일어나 있다 또다시 쳐지기 시작했다. 파보바이러스 장염이라고 했다. 샵에서 있던 아이들은 전염성이 강한 이 병에 걸리는데 잠복기에 있을 때 주사를 맞고 판매되기 때문에 집에 오면 아플 확률이 많다는 것을 그 뒤에 알았다. 판매했던 곳에 전화해 보니 데리고 오라고 했다. 데려다주고 3일쯤 지났는데 다 나았다고 데려가라고 했다.  신통하게 정말 나은 듯하여 감사해하며 집으로 데려왔는데  다시 아파 또 샵에 갔는데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됐다. 한쪽 구석진 바구니에 쓰러져 있는 강아지들이 여러 마리 담겨 있었다. 그리고 토리도 그냥 반납하고 다른 아이로 데려가라고 했다. 놀래서 그냥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원하면 치료는 해본다고 했지만 주사를 맞고 오면 2,3일 정도 집에서 잘 지내다가 다시 아프길 반복했는데 인제 거의 가망이 없게 보였다. 주먹만 한 아이가 대소변을 보려면 갖은 힘을 다 써서 일어나 신문지 위로 가서 볼일을 보곤  했다. 그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 가족은 정이 들 데로 들어 눈물이 정말 앞을 가렸다. 그리고 5% 희망을 가지고 병원 원장님이 치료해 보겠다고 하셨다. 애가 살려고 하는 의지가 강하니 믿어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병원 인큐베터에 입원하며 한 달가량 집중 치료받았는데 거의 나았다는 게 기적이었다.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당부 말씀과 함께 엄청난 병원비도 조금만 받으시고 치료해 주신 원장님은 정말 강아지를 사랑으로 돌보시는 분이셨다. 토리의 강인한 의지와 원장님 덕분에 토리는 다시 태어나서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렇게 해서 2016년 봄부터 토리는 다시 우리와 가족이 되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을 실감시키듯 얼마나 뛰어다니며 식구들을 따랐는지 모른다. 퇴원하고 우리 가족이 된 후 두 달 후에 지방에 내려간 아들네 집에 데리고 갔는데 길에 서 있던 아들을 알아봐 얼마나 좋아라 했는지 아들은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말하곤 한다.  가족이 다 들어오지 않으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늦게 들어오면 왜 늦게 왔냐는 듯 따라다니며 짖곤 했다. 토리 덕분에 집에 빨리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손주가 태어나서 우리 집에 와 있었는데 아이 침대맡에 앉아 아이가 우는지 지키고 있다 아이가 깨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짖는다. 아이가 오면 아이를 지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랐다. 갑자기 토리 혀가 파랗게 변해가며 구석으로 들어가 놀래서 밤중에 24시 병원에 갔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냐고 물으셨다. 신생아가 와 있다고 했더니 힘들어서 그런다고 아이와 분리시키는 게 좋겠다고 해서 아이가 급하게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가족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하며 우리 가족과 한가족으로 성실히 잘 살아왔다.


인제 9살이 넘었다. 노견이라고 하긴 아직 이른 나이다. 항상 병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며 예방접종등을 꼭 맞춰주고 최선을 다해 케어했다. 토리 덕분에 다른 동물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식물과 동물을 더 애틋하게 대했는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더 잘 알게 해 줬던 것 같다. 난 숲해설가이지만 토리 덕분에 더욱 다른 생명들에게도 관심의 폭이 넓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기쁨이고 행복이었던 토리에게 한 달 전부터 이상한 행동이 보였다. 간식을 찾아 먹지 못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눈앞의 간식도 찾지 못하고 방향을 잊어버린 것이 반복되어 동네 병원을 세 군데 찾아다녔지만 뚜렷한 병명을 못 찾고 있었다. 인제 9살인데 벌써 노견이 되어가나 싶어 온갖 시름을 하다가 청담동에 있는 안과 전문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검사를 받았다. 강아지의 안과 전문의는 우리나라에 두 분이 있다고 한다. 사실 확인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한다. 온갖 검사를 다 해도 뚜렷한 병명이 없다고 하더니 다른 정밀검사를 진행했는데 병명이 '급성 후천성 망막변성증'이라고 한다. 사람들 안과 검사하듯이 강아지들도 똑같은 검사를 했다.  급성으로 오는데 현재는 원인과 치료방법이 없다고 한다. 원인을 모르니 치료방법이 없는 건 당연할 거고 약 한 봉지도 못 가지고 그냥 집에 왔다. 진료비가 엄청 나갔지만 그래도 병명을 알고 대처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수주일 내로 완전 실명할 거라고 한다. 지금은 가까운 곳은 못 보는데 먼 곳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토리를 보니

당연히 방향감각이 상실되고

활동이 감소되고

후각, 청각 기능이 함께 저하 됐다

특히 동공이 확장되어 한 곳을 주시하고 있다. 멍하니 서서 멈춰있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병원에서는

기억으로 생활해야 하니 가구를 옮기지 말고

산책 시 줄을 짧게 잡고 다닐 것 등 조언을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넘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아직 어째해야 할지를 모르겠지만 아직은 화장실을 헷갈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찾아다니는데 언제까지 일지~~



온 가족의 근심이 토리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정작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누구는 사람도 아닌데 강아지 아픈 것에 너무 신경 쓴다고 책망도 한다.  어쩌든 맘이 너무 아파 온종일 일손이 안 잡힌다. 무지개 다리 건널때까지 아프지 말고 가는게 소원이었는데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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