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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Mar 27. 2024

 어느 사이 봄소식이 살랑거리며 찾아왔네요

봄 공원의 모습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정확한 것은 세월 같다. 어떠한 일이 있었던지, 어떠한 사정이 있었던지 쉬지 않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세월을 따라  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계의 초침은 멈출 수도 있지만 사람의 자람과 늙음은 세월과 함께 천천히 녹아져 보이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깊은 침묵 속에 잠겨있던  땅속의  외침을 들었는지  뿌리들의  물오름 소리가 들리더니 벌써 가지에 달렸던 겨울눈들이 실눈을 뜨고 있다.



계절을 잊어버린 적이 없는 자연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부드러운 햇살은  잠자는 이들을 깨우고  그 속삭임 중에 연두색 싹이 나고 있는 귀룡나무가 가장 바쁜듯하다. 벌써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친구들 잠 깨우느라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귀룡나무 자라는 소리에 숲 속의 봄은 시끌벅적하게 움직인다.  요즘은 어디서나 보일 정도로 흔한 나무가 되어 동네에서도 보이고, 숲 속 깊이 들어가도 보이는 나무이다. 가지가 아래로 쳐지며 자라기 때문에 눈에 빨리 띈다. 귀신머리 흐트러진 듯 이리저리  나풀거리는 가는 가지는 신바람이 난 듯 춤을 추고 있다.  벚나무잎처럼 꿀샘도 장착한다. 그리고 약간의 냄새까지 잎에 넣어 이른 봄 먹거리가 부족한 벌레들의 피해를 줄이는 똑똑한 나무이다. 치렁치렁 하얀 꽃들을 매달고 손짓할 날이 다가온다.


매일 공원을 산책하지만 죽은 듯 거무죽죽하던 숲 속이 제법 밝아졌다. 아마도 관목에서는 젤 먼저 조팝나무 새싹이 가장 먼저 보이지 않았을까. 빼꼼하니 고개를 빼던 모습이 엊그제였는데 인제 제법 울타리를 채색하기 시작하고 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봄을 맞고 있는 조팝나무는 먼저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어느 사이에 보면 꽃이 몽실몽실 피어있다. 잎이 나서 가는 줄기가 되어갈 즈음 가지에선 꽃눈이 터지게 된다. 솜뭉치가 송이송이 피기 시작하면 자라고 있던 잎 줄기들은 잠시 성장을 멈추고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도록 기다려 준다. 꽃 속에 숨어 잠시 기다릴 줄 아는 똑똑하고 배려심 깊은 관목이다.  꽃이 지고 난 후 가을까지 긴 줄기를 키우며 휘청거리는 부드러운 모습의 울타리를 만들고, 한쪽에서 하얀 꽃동산을 이루어 봄을 선물해 주는 기특한 나무이다.


개나리도 꽃몽우리를 아기 입만큼 벌리고 봄기운을 받아들이고 있다.  개나리에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꽃눈들이 많이 있지만 어쩌든 부지런하다. 통계자료를 정확하게 보지는 않았지만 봄이 되면 싸우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눈에 보이는 자연들이 이처럼 순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살랑거리고  속삭이며 우리들에게 다가오는데 어찌 가슴속의 화가 삭히지 않을까 싶다. 개나리처럼 입을 살짝 벌리며 개나리 울타리 따라 걸어본다. 노랑 병아리도 내 발밑을 종종종 따라오는 것 같다.


대다수의 공원들은 나무에 별도의 거름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소독약도 하지 않고 그냥 자연생태에 맡긴다. 그리고 봄이 되면 낙엽도 깔끔하게 긁어버리기 때문에 토양이 갈수록 산성화 되어가는 것 같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등 교목에 치여  소교목이나 관목들은 맥을 못 추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다니는 공원의 매화나무들은 너무 불쌍하다. 다들 삐쩍 마른 가지에 작은 꽃을 몇 송이 달고 서 있다. 큰 나무에 치여 햇살을 받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봄이 되면 이 매화나무들을 보는 것은 조금은 괴롭다. 도태되지 말고 꿋꿋하게 자라렴 하고 힘을 보태지만 역부족이나 보다. 다른 곳의 매화들은 벌써 축제장을 열고 있다는데 안타깝지만 좋은 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매화 너 탓이라고 하면 너무 억울해할까?


공원의 가장 좋은 자리에는 플라타너스가 차지하고 있다. 감히 그 근처에는 접근을 하지 못하고 커다란 키와 커다란 잎으로 압도하고 있다. 이른 봄이 되면 몽당으로 잘라버리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다음 해에는 또다시 싱싱한 모습을 자랑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전지 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특히 풀라타너스 가지를 짧게 자르면 항의성 전화가 빗발친다고 한다. 아파트에서도 강전정을 하고 나면 몇 사람은 꼭 전화를 한다. 사람이 머리를 잘라 깔끔하게 하듯이 나무도 전정을 해주며 키우면 나무도 실해지고 뿌리 뻗음도 좋아진다.  정원용으로 가꾸는 모든 나무를 꼭 구태여 자연상태로 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산속의 나무들은 자연 상태로 두지만 공원이나 정원에서는 장소와 나무에 따라서 적절한 전정을 필요하다고 본다.



 어찌나 봄이 빨리 지나가는지 3월 초에 서랍 속에 넣어둔 봄소식이 인제야 나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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