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아픈 손가락이다.
엄마는 5남매 중 넷째이다.
위로 오빠와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동생이 있다.
할머니는 오빠들은 아들이라 이쁘고, 위 언니는 여자 첫째라 이쁘고, 막내는 막내라서 이쁘 댔다.
중간에 딱 낀 우리 엄마는 할머니의 사랑을 그다지 받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 엄마를 뺀 나머지 형제들은 다 돌림자인데, 유일하게 우리 엄마만 돌림이 아니다.
개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유일한 부모였던 할머니의 사랑을 무척이나 받고 싶어 했고, 외로워하셨다.
할아버지는 엄마 어릴 적 돌아가셨기에 거의 할머니 손에 5형제가 자란 셈이다.
할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5형제들을 모두 잘 키우셨다. 할머니의 고충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골고루 사랑을 좀 주지하는 아쉬움이 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정확히 나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다른 형제들처럼 소위 말하는 여우짓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의 엄마를 보면 대충 그때가 그려지는 것 같다.
엄마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을 헤아리는 것을 잘 못한다. 아니, 하더라도 표현을 잘 못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엄마를 오해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나 역시도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힘든 적이 매우 많았다.
'나'라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을 받지 못하고 엄마의 기준과 틀 안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부딪히는 일도 많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 하는 일도 많았다.
엄마는 엄마의 기준이 맞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고수했다.
조율의 과정은 서로의 의견을 듣고 이해하고 맞춰나가는 것인데 수용의 과정을 엄마는 어려워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서도 융화가 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 이유를 어린 시절 엄마가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어릴 때는 엄마랑 부딪히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반항 아닌 반항도 많이 했고, 엄마가 정말 미웠고, 지금도 가끔은 감정적으로 힘이 들 때가 있지만, 엄마라는 사람 자체를 이해하려고 한다.
엄마는 부모님의 사랑도 받지 못하며 자랐고, 남편과도 불화가 많아 외로웠고, 세상을 본인 혼자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자식이지만, 엄마의 엄마로 엄마를 대하며 품고 싶다.
나도 사람인지라 엄마의 행동과 생각이 힘들 때가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하며 상황과 사람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으니, 앞으로의 날들은 지난날보다는 더 행복하고 기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