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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불빛

천천히 사라지는 것들

by 빨강


엄마의 생일이었다. 낙엽이 갓길에 떨어져 구르고 있는 도로를 달려 케이크를 사러 갔다. 제과점 앞은 낙엽이 깨끗하게 쓸려 있었다. 구름을 닮은 작은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차에 실었다.


며칠 전 저녁 약속으로 골뱅이탕 집에 갔다. 골뱅이탕 안에 흰 껍질이 양푼 가득 담겨 있었다. 껍질 속에 말려 들어가 있는 살들을 이쑤시개로 뽑으며, 돌돌 말려 껍데기 속에 감춰져 있는 게 삶 같다고 생각했다. 쫄깃한 살점을 씹으며. 살기 위해선 무엇이든 생을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 게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엄마는 자신의 생일보다 내가 오랜만에 집에 온 게 더 반가운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간에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말에 동생 내외가 다녀간 이야기. 조카와 제부가 생일 전에 찾아와 생일상을 차려 준 이야기. 어제 아빠가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왔다는 하소연까지. 주로 가족과 관련 있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한 명 한 명을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밥이 오길 기다리면서 거실 바닥에 엄마가 꺼내온 이불을 나란히 덮고 따끈따끈한 서로의 걱정과 염려가 드리운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서로가 걱정이었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엄마의 갈색 눈은 외할머니를 꼭 닮았다. 엄마는 생일 축하금 봉투에 몇 자 적은 글도 읽지 못했다.

엄마는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조도를 낮췄다. 내 눈엔 사위가 어둑어둑한데 엄마에게 불빛은 견디기 힘든 일 중 하나였다.


가을의 하늘은 청명하고 빛이 더 눈부시게 다가온다. 누구나 청명한 하늘빛을 감탄하지만 엄마에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칼이었다.

우리는 배달 음식을 어두운 전등 아래서 먹었다. 그러면서 깔깔거렸다. 소화가 안 돼서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는 엄마. 엄마에겐 불빛도 먹는 것도 이제 어려워만 지고 있다.


가을에 들어선 아니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엄마.

엄마의 생일이 가을도 겨울도 아닌 지금. 엄마라는 불빛이 서서히 작아지는 불씨라면. 작아지는 불빛에 한 움큼의 낙엽을 던져 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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