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나는 스님 못해요. (10)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하지만, 정말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자꾸만 흐려질 때 나는 이 선물이 너무 미웠다.
잊고 싶은 기억이 사라져야지 긍정적인 기억이 사라지면 쓰나.
나는 붙잡고 싶은 기억이 많았다.
늘 또렷하게 떠올리지 못하는 무언가를 향해 아주 많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기억하고 싶은 화면,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 기억해야만 하는 무엇이 생길 때면 메모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강제로 공식 외우듯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애를 썼다.
내가 잊지는 않았는지 한 시간 뒤 검사해 보고, 다음 날 또 검사해 보고, 다 다음날 또 또 검사해 보고. 나는 그렇게 노력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검사하는 것도 잊었고, 무엇을 그렇게 기억하려 하고 있었는지도 잊으며 또다시 붙잡고 싶은 기억을 서서히 잊어갔다.
분명 뇌리에 강하게 남은 것 같았는데 말이다.
누군가는 망각이 필요하다 했다. 잊어야만 사는 데에 도움이 된다 했다. 그러면 내 슬픈 기억을 가지고 가야지 왜 자꾸 소소하게 행복했던, 분명 기분이 좋았던 것만 같은 그런 기억만 가져가냔 말이다.
얄궂은 망각은 내 기억을 빼앗고 감정만 남겼다. 정확하게 그 말이 기억나지는 않아도 그 사람을 떠올리면 ‘좋은 사람이야.’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감정, 정확하게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즐거웠지.’하고 웃음 지어지는 그런 감정.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은 감정만 남기고는 달아나버렸다. 세상에나.
슬픈 기억이 뇌에는 더 강한 충격을 준다고 했다. 당장 슬픈 것도 힘든데 살다가 문득 떠올려주기까지 하니 참으로 영향력이 대단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못 말리는 망각은 행복했던 기억만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니더라.
슬픈 기억은 느리지만, 야금야금 조금씩 미화시켜 가며 데리고 가는 것이다. 내가 사는 데에 도움이 되라고.
그러면 슬픈 기억과 감정은 100퍼센트 좋지 못한 것이고, 행복한 기억과 감정은 결점 없이 완벽한 것이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한때 내가 표현하는 글과 그림이 슬프게만 써지고, 그려져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표현하는 사람의 심리가 반영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당시 행복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표현할 때는 몰랐지, 내가 자꾸만 글과 그림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나에게 위로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중에야 알았다. 이런 위로가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행복한 기억과 슬픈 기억 중, 내게 살아갈 힘을 주는 쪽은 행복한 기억이다. 그리고 나를 성장시키는 힘은 슬픈 기억이다.
나는 기억에서 비롯된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끼며 웃으며 살아가고 울며 성장한다.
나는 내 좋지 못한 기억력과 함께 자연스레 살아보려 한다. 망각. 답답한 너를 받아들이겠어.
스님, 제 기억력으로 불교 경전을 다 공부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까먹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