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도착, 바로 드레스 샵으로 가서 딸이 신부화장을 하는 동안 사위와 함께 점심에 먹을 김밥을 사러 갔다.
사위는 듬직하고 잘 웃는 편이다. 처음에 만났을 땐 어색했지만 지금은 많이 친해졌다.
샵에 도착하니 화장을 끝낸 딸의 모습은 예쁘고 아름다웠다. 신랑 메이크업은 십분 만에 끝났고 딸은 여러 벌의 드레스를 입어보고 가장 예쁘고 잘 어울리는 흰색과 분홍색으로 입기로 했다.
첫 번째 장소로 커피도 마시고 수국을 볼 수 있는 카페로 갔다. 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사진작가를 기다렸다. 작가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고, 제주도에서 활동을 오래 하신 분이다. 신랑 신부에게 오늘의 일정과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김밥과 간식을 먹었다.
지금부터 신랑 신부는 주인공이 되어 작가의 말에 잘 따라야 한다.
“웃으시고 고개를 옆으로 자연스럽게 걸으세요 아주 좋아요. “
역시 작가는 프로다. 신랑 신부가 더운 날에도 잘 웃고 작가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칭찬한다. 이곳에서 촬영을 끝내고 다음 장소로 가는 길에 여기저기 웨딩 촬영하는 커플들이 많이 보인다.
두 번째 도착한 곳은 넓은 들판이다.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내릴 것만 같다. 신부가 화장을 고치고 드레스를 바꿔 입는 동안 사위가 풍선을 들고 있어 잠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위도 내게 풍선을 주고 동영상을 찍어주며 둘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던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해가 쨍쨍 나서 땀을 흘리며 촬영을 했는데 잠시 땀을 시켜주는 듯 지나가는 비인 거 같다. 비를 맞아도 지장이 없을 정도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잠시 변화하는 날씨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날씨처럼 해가 뜨는 날도 있지만 비 오고 흐린 날도 있다. 이런 삶의 굴곡 속에서 의연하게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차박사진
특히 차박 사진으로 트렁크 문에 걸터앉아 찍은 곳은 신부가 준비한 풍선, 비눗방울, 그 외 모든 소품들과 꽃장식으로 꾸몄다. 마치 영화촬영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라 나의 임무를 다하고자 동영상을 멋지게 찍었다. 오랜 시간 앉지도 못하고 서서 촬영하는 것이 지칠 만도 한데 신부는 피곤한 기색이 없어 보인다. 그저 환하게 웃는 신부는 오늘의 주인공 역할을 잘하고 있다.
딸은 나의 친구 같은 존재다. 어린 시절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위로의 말을 해 주던 속 깊은 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에게 더 많은 뒷바라지를 못 해 준 것이 미안한 마음이다. 피아노 전공을 하고 싶어 했지만 해 주지 못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었는데 전공을 살려주지 못했다.
딸이 중학교 때 나는 병원에 자주 입원했다. 그 시절 남편이 학교를 방문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고 하는데, 수업시간에 그림같이 앉아 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칭찬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해내는 딸이 대견했다.
어느새 어린 딸이 서른이 넘어 직장생활도 잘하고 짝을 만나 결혼을 한다.
내가 딸에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될 수 있기를 원하며 예쁜 가정을 이루길 기도한다. 또한 상대를 내 기준에 맞게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랑의 눈을 갖기 원한다.
촬영을 하다 보니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마지막 촬영지인 바닷가로 향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듯 사진은 흑백으로 붉은 노을은 운치가 있어 보인다.
여섯 시간이란 장시간의 촬영은 끝이 났다. 작가 두 분과 헬퍼,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흡족하다.
90년대의 결혼문화와 지금의 결혼문화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그때는 부모님이 결혼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사 주셨다. 이불 같은 것도 직접 농사지은 목화솜을 틀어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은 부모님 개입 없이 기성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어 둘이서 다 알아서 한다.
오늘에 나는 웨딩드레스 골라주는 일 외에 신경 쓸 일이 없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방에 돌아와 하루 일정을 돌아보니 낮에 촬영했던 딸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