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23)

도움을 잘 받는 것이 능력이다.

by 리본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7장 17절~19절)


"C사장님, 제가 좀 걱정거리(Concern)가 하나 있는데요?"

제가 회사에 입사하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공장이 지어지기 전이라 수원시내에 임시 사무실을 임대하여 C사장과 여비서, 재무팀장과 저, 이렇게 네 명이서 단란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P상무는 영업 직원 서너 명과 이미 서울의 한 사무소를 임대하여 G사를 상대하고 있었습니다.)

C사장은 저처럼 멕시코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합류하여 미국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를 도와 멕시코에 공장을 지었고, 이후 인도공장의 지사장을 지내었기 때문에 공장일에 대하여는 도가 트인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 파견되자마자 언어적인 장벽 때문에 비서를 채용한 후, Kotra를 통하여 건축사무소를 소개받아 이미 공장건축을 위한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설계가 진행되어 공장의 기본도면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당장 실무를 하기에는 이 분야의 기술도 모르는 터라 , 경험 많은 C사장이 잘 지시했겠지 하면서 공장을 배울 겸 건축업체가 보낸 도면을 가볍게 훑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문제를 하나 제기하였으니 C사장은 의아함과 호기심으로 '그게 뭔데' 하며 물어보았습니다.

"이 건축도면 중 소방설계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설계가 되었나요?"

"그야 건축업체에서 알아서 한국 소방법에 맞게 설계하였겠지? 국내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

"물론 한국법상 문제가 없게 설계를 하였겠지만, 제가 전 직장에서 건축할 때 소방법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거든요"


제가 두 번째 직장에서 한참 공장을 짓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보험회사 직원이라고 하면서 시골 공장에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미국회사였기에, 비록 공장은 한국에 있었지만, 모든 자산의 보험을 미국 본사의 보험회사에 들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험회사에서 보험료를 산정할 때는 회사의 위험 수준을 파악하여 보험료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건물 보험의 중요한 위험은 화재이고, 화재로 인한 손해의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이 한국의 보험회사와 달랐습니다.

그 보험직원은 특히 소방도면을 살펴보더니, 이 소방에 관련된 펌프나 스프링클러 설비들이 한국산인데, 이것은 국제기준에 맞지 않으니 국제기준에 맞는 더 엄격한 기준의 것들(수입산)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보험료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신축공장은 이미 건물외관 공사는 끝나고 한참 소방설비를 포함한 내부 유틸리티(설비)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이미 설치되고 있던 소방 관련 설비들을 다 걷어내고, 국제기준에 맞는 설비들을 다시 구매하여 설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건축업체와 추가 공사 비용 등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여 법정에까지 출두한 경험이 있었기에, 저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혹시 우리도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하였습니다.


C사장은 그렇다면 본사에 보험담당자가 있으니 그 사람에게 문의해 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건축업체의 소방도면을 보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우리의 소방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큰일이다 싶어 C사장에게 부리나케 달려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C사장이 한마디 하였습니다.

"뭘 그렇게 호들갑 떠느냐?

'야 나도 그런 문제가 있을 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보내어 검토받는 것 아니냐? 그러니 네가 전문가이니, 국제 스펙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 다오'

이런 식으로 메일을 써라."


C사장은 지금껏 제가 보스로 모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배울 것이 많은 리더였습니다.

C사장의 가장 탁월한 리더십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벌리는(도움을 구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앞서 담체의 재고가 없어 생산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일본 공장의 지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해결했고, 이번 품질 문제가 생겼을 때도 말레이시아, 인도 공장의 지사장에게 사람을 파견해 도와달라고 요청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의 조직에 문제가 있으면 자신의 무능력으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비판을 받을 까봐 혹은 너는 그것도 모르냐라고 비난을 받을 까봐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전전긍긍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하여 문제를 더 키웁니다.

하지만 C사장은 그럴 때마다 다른 동류의 지사장에게 도움을 자연스럽게 요청하곤 했습니다.

적절한 전문가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는데, '네가 전문가다. 그러니 나를 좀 도와다오.'라고 상대방의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재주가 있었고, 그런 요청을 받은 사람들은 직접 오거나, 메일을 보내거나, 미팅을 하거나 그렇게 도움을 제공한 후 그 내용을 꼬박 보고서로 정리하여 위 상사에게 보고하며, 내가 이런 식으로 회사에 중요한 존재이며 이렇게 공헌하고 있다고 자신을 어필하는 문화가 이 글로벌회사에는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능력이 있었기에 한국에 공장을 짓은 책임자로 홀로 파견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공장을 짓는 단계에 따라 각지로부터 적절한 전문가들을 한국에 데려와 시기에 맞게 코칭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공장을 완성시켜 갔습니다.


그렇게 공장의 기본적인 도면이 완성되어 갈 때, 이 도면을 최종 검수할 공정 설비 전문가로서 한국에 온 사람이 인도 공장장 'I'였습니다.

I는 설비보전팀장 출신이었으니 설비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우리 건축도면의 유틸리티 설비의 스펙, 파이프 라인들의 스펙을 모두 결정하여 주었고,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다시 한국에 와서 이젠 공장에 들어설 생산설비 스펙을 만들어 업체에게 뿌려 주고 업체의 도면들을 검토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인도공장은 비교적 옛날 버전의 설비들이 있어서, 그것을 운영하면서 느낀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최근 설치된 일본의 최신 라인에 대한 정보도 여기에 녹여내면서, 모든 좋은 것을 종합하여 가장 이상적인 라인을 구상하고 이에 맞게 설비의 구체적인 스펙을 만들어서 저에게 보내주었습니다.

C사장이 지정한 사람이기도 하고, 만나서 여러 번 대화를 나눠보니, 상당히 스마트한 사람이었기에 저는 그의 스펙을 믿고 그대로 업체에 전달하였습니다.


우리 생산라인은 저의 두 번째 회사와 원재료, 제품만 달랐지, 공정은 매우 유사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두 번째 회사에서 배운 프로젝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공정은 크게 귀금속 촉매가 들어간 와시코트(코팅액)를 담체에 코팅하고, 건조하는 것이어서 원단에 접착제를 코팅하고 건조기를 통과시키는 두 번째 회사의 공정과 거의 같은 공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담체를 원형테이블처럼 생긴 COATER의 loading 부에 올려놓으면 원형테이블이 회전하여 원형테이블 2층에 설치된 주사기형태의 DOSER 밑으로 담체를 옮기고, DOSER에서 와시코트를 짜내어 담체 위에 와시코트를 케이크 위에 크림을 올려놓듯 올려놓으면 밑에서 진공펌프로 흡입하여 담체의 반을 코팅합니다.

그리고 반이 코팅된 담체는 사람(로봇)이 건조로로 옮겨 건조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건조로 안의 컨베이어를 타고 담체가 나오면 사람(로봇)이 이를 집어서, 뒤집어 두 번째 COATER에 놓고, 담체의 나머지 반을 코팅한 후 다시 대형 건조로(건조하고 가마처럼 고온에서 굽는)로 옮기게 됩니다.

따라서 제조 라인은 COATER → 건조기 → COATER →건조(소성)기로 배치됩니다.

I는 이 모든 설비의 구체적인 스펙을 지정하여 주었고, COATER는 영국 본사가 거래하는 영국업체에서 만들고, 건조기는 워낙 일반화된 기계이기에 한국 업체에 발주하여 I가 준 스펙대로 디자인되어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야. 이번에 일본공장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J가 한국에 온다."

"그래요? 일본 공장이 최신에 지어졌고, 가장 현대화된 라인이 설치되었다고 그러셨는데... 그런데 사장님과 I가 공장 전문가이고 I의 설계대로 공장이 잘 지어지고 있는데, J가 왜 와요?"

저는 뜬금없이 J가 온다는 소식에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John이 가 봐라고 했나 봐."

John이라고 말할 때, C사장의 얼굴에 약간 언짢은 표정이 지나갔습니다.

" 난 사실 이전 아시아 보스였던 John이 더 나하고 맞아. 그 John이 오리지널 엔지니어 출신이고..."

우리에게는 두 사람의 John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미국인이고, 다른 사람은 호주인이었습니다. C사장이 한국에 올 때만 해도 미국인 John은 아시아 사장(director)을 하여, C사장의 보스였습니다.

그러다 이 미국인 John은 승진하여 영국 본사의 사장(president)으로 갔고, 후임으로 말레이시아 지사장이었던 호주인 John이 아시아 사장을 맡아 현재의 C사장의 보스가 되었습니다.

(이 두 John에 대한 얽히고설킨 스토리 또한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라 나중에 따로 이야기 칸을 마련하였습니다. )


"감시하러 보내는 거지 뭐. 잘하고 있나 그게 John의 스타일이야. 이 호주 John은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거든, 그는 우리 같은 한 우물을 판 기술자들을 못 미더워해. J는 그의 꼬붕이고..."

'오히려 비전문가를 중용하고, 기술자들을 감시한다?'

예 그렇습니다.

일본 프로젝트 매니저 J는 말레이시아 지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은 미국인이었는데, 영어를 쓰는 원음인을 편애하는 호주 John이 일본에 대형 공장 증설 프로젝트가 발생하자 일본인 기술자를 중용하기보다는 이 친구를 프로젝트 매니저로 파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J가 엔지니어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아서 아주 새로운 개념의 공장을 일본에 도입했다고 소문이 났기에, 엔지니어 출신인 C사장은 이 또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J는 기술을 잘 몰라 너무 개념적으로 라인을 디자인했고, 결국 일본공장에 너무 많은 돈을 쳐 발랐어.

거기다 걔는 말이 너무 많아.(He is too talkative!)"

그런 사정이고 보니 당연히 J의 응대는 같은 매니저 레벨이면서 여기에는 초짜인 저에게 맡긴 것입니다.


"C사장님, J가 창원에 가자는 데요?"

" 아니 그렇게 먼 데 왜?"

"건조로 제작하고 있는 현황을 보고 싶답니다."

"그래? 하기야 지금 공장은 건물만 있고, 텅 비어 있으니, 와서 봐도 별 볼 게 없고... 그래서 나중에 오라고 했는데 한사코 오겠다고..."


J는 창원으로 가는 여행 동안 차에서, 비행기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습니다.

제가 영어에 아주 능숙하지 않았는 데도 불구하고 그 서너 시간의 동행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동의하다는 추임새만 보여주면 될 정도로 그는 자기 말만 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 많던 J도 창원공장 업체에서 한참 골격을 갖추고 있는 건조로의 웅장한 자태 앞에서 갑자기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예상보다 너무나 멋지게 제작되고 있어서 감동받았냐고요?

프로젝트 동안 C사장은 틈틈이 저를 외국의 공장으로 보내어 생산라인을 견학하고, 생산에 관련된 노하우들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기에 저도 이제는 어느 정도 라인에 대하여 개념이 잡혀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저도 건조로를 보자 말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조로를 바라보는 동안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뿔싸!. 이거 큰일 났구나.'

이후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J는 저의 심각한 표정을 힐끗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 먹자는 말을 할 경황도 없어 공항에서 서로 건성으로 인사하고 바로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J는 그 길로 일본으로 귀국하였습니다.


"C사장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김해공항 대합실에서야 저는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이 되어, C사장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어 뭔데?"

"건조로가 너무 큽니다. 사장님께서 아시다시피 우리는 연속적인 컨베이어 타입이 아니라 정사각형의 트레이를 레일에 따라 한 단계씩 이동시키는 Index 타입이잖아요? 그렇게 트레이를 건조로로 통과시키고 나면, 다시 건조로 아래의 레일을 통하여 앞단으로 다시 리턴 시키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트레이를 건조로 끝단에서 하강시키는 리프트구동부가 있어야 하고..., 그런데 문제가 이 리프트 구동부 사이즈가 너무 커요.

빈 트레이를 리프트에서 하강시키기 위해서는 이전 단에서 담체를 모두 비워야 하는데, 로봇이 여기까지 팔이 닫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2차 coater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 건조로 앞에도 return 된 트레이를 올리는 lift 상승부가 있고, 그다음 단에 담체를 놓아야 하는데, 역시 로봇이 팔이 짧아 coater에서 lift 상승부를 가로질러 loading 트레이에 담체를 올려놓지 못합니다."

C사장은 이쪽 분야에서 워낙 오랫동안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특히 공장 내의 일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는 법이 없었고 어떤 문제에도 태연하였습니다.

"그래 그럼 중간에 조그만 컨베이어를 놓으면?"

이번에도 C사장은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컨베이어 사이에 두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애당초 사람을 대신해서 로봇을 설치하고자 한 의미가 사라져 버립니다. 인건비 줄이려고 로봇을 설치하는 것인데...'

차마 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C사장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이 공장은 로봇과 사림이 엉겨 붙어 있는 정말 볼썽 싸나운 꼴불견 공장이 됩니다.

엔지니어로서 평생 살아온 C사장과 I는 웃음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실을 아마추어라고 무시하는 J가 목격했으니...


애당초 한국 공장의 라인은 I의 머리에서 구상된 것이었습니다.

I는 인도의 기존 single coater는 구시대의 산물이 되었고 일본에 설치된 coater는 두 개의 담체를 코팅하는 TWIN방식의 COATER였습니다. 생산 capa.를 두배로 들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코팅 후 건조로의 Capa. 역시 두 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뒷단의 두 번째 건조로는 500℃까지 올려야 하는 소성로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담체를 그물처럼 생긴 메쉬형태의 컨베이어에 올리연 바람이 그물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 열효율이 낮 아져 특히 두 배의 열을 담체로 보내기엔 버거웠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 J는 어디서 얻어 들었는지, 사각의 플레이트(커버)를 만들어, 원형 담체 사이즈에 맞는 홀을 뚫어 열풍이 담체와 담체의 틈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최소화하는 트레이 타입의 라인을 설계하였습니다.

따라서 건조로는 전통적인 연속식 컨베이어 타입이 아니라, 담체를 실은 트레이가 레일을 따라 한 단계씩 이동하는 Index타입으로 건조로를 통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I는 이것들을 모두 머릿속에서 종합하여 이미지화한 결과 한국의 건조로는 1.3m*1.3m 크기의 트레이에 6횡*6열의 담체를 모두 loading(채워)하여, 이 트레이를 index타입으로 이동시키는 라인을 구상하였고, 이러한 건조로 2개를 한국업체에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아보니 일본에 설치된 100℃까지 올리는 첫 건조로는 여전히 컨베이어 타입이었고, 500℃까지 올리는 두 번째 건조로만 열효율을 위해 index타입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건조로의 트레이 사이즈는 0.6m*0.6m로, 2행*2열 4개의 담체를 올려놓는 작은 사이즈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 역시 로봇의 팔이 미치지 않아 그렇게 작게 설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에서 2배의 capa.의 건조량을 달성하기 위하여 건조칸이 뱀처럼 아주 길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칸만큼 버너와 팬이 많이 들어가 제작비도 아주 비싸졌고요.)


그래서 저와 J가 마산에서 발견한 건조로는 말 그대로 가로세로 너비가 큰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건조로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첫 번째 건조로 끝단의 하강용 리프트와 두 번째 건조로 앞단에 있는 상승용 리프트 프레임이 큰 공간을 차지해 버려 로봇의 팔이 리프트 프레임을 지나 담체를 놓는 트레이칸에는 닿지 않게 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항상 프로젝트 진행단계마다 머리로 상상하고,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서 실체를 파악해 가야 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일본의 TWIN COATER와 ROBOT 운영의 경험이 없는 인도인 I는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디자인되었고, 실제 프로젝트 매니저인 저의 경우는 이 생산라인에 대하여 경험과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가서 이러한 사단이 났습니다.


사실 여기서 이것은 오로지 I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기에, 내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하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들은 언제나 발생했고, 그때마다 어떻게든 해결책들이 나왔기 때문에, 일단 이 문제도 그대로 직시하여 부딪쳐 보기로 생각하였습니다.

제작업체의 공장을 나오며, 김해공항으로 가면서 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풀 수 없을까?' 옆에 J가 있는 것도 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C사장님, 제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고 정리해서 내일 토요일 I에게 보내어 confirm 받아볼게요."

김해 공항에서 전화를 끊으며 일단 걱정하고 있는 C사장을 안심시켰습니다.

사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은 그 아이디어가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하여 이 건조로들을 어떻게 작동시킬지 구동 프로그램 로직을 짜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건조로에서 나오는 플레이트를 아래로 내려 return 하지 말고, 그대로 2nd 건조로로 보내면 어떨까? 그렇게 보내고 1st 로봇이 트레이 위에 있는 담체를 순차적으로 꺼내어 뒤집어 2nd COATER로 보내고 코팅이 끝나면 2nd 로봇이 담체를 이미 이동한 그 트레이 위에 다시 놓는 거야.

그래서 트레이를 연속식으로 연결해 버리면, 1st 건조로 뒤에 있는 하강용 리프트와 2nd 건조로 앞단에 상승용 lift 자체가 필요 없게 되니 로봇의 arm의 reach(접근) 범위 안에 들어올 거야.'

저는 I공장장에게 저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주말 내내 만든 이에 따른 트레이의 이동 로직과 로봇의 신호통신 logic을 그린 도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마도 I는 바로 그날 C사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던 모양인지, 이미 한국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토요일 저녁 메일로 저의 아이디어를 담은 도면을 보내고 통화하는 자리에서 기계 전문가인 I는 reasonable 하다며, 건조로 제작업체에서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우리 회사에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던 1st 건조로와 2nd 건조로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콘셉트를 벗어나 동일한 트레이가 1st 건조로에서 2nd 건조로로 index type으로 착착 움직이는 자동화관점에서 더욱 근사해 보이는 일체형 건조로가 세계 최초로 세워졌습니다.


"Hey, It's your baby! (친구야. 이것은 너의 작품이야)"

공장의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고 I가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공장을 둘러보며 I의 구상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내가 인도에 있을 때,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한국은 이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되었어."

I는 감개무량한 듯 최신식 설비들이 갖추어져 있는 우리 회사 최신의 공장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R, 나는 한국공장이 이렇게 근사하게 지어질 줄은 몰랐다. 내가 보기엔 한국공장 특히 트레이 라인이 가장 모던하게 보인다."

창원의 사건 1년 후 영국본사의 CEO, 아시아 본부의 임원들, 그리고 대외 VIP을 모시고 한국공장 완공식이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때 참석하였던 아시아 영업 director인 영국인이 저에게 다가와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I am lucky.(내가 운이 좋았다.) 다행히 전 직장에서 경험한 프로젝트가 여기와 유사(simliar)해서 쉽게 파악할(catch) 수 있었다."

"No. not you, we are lucky. (네가 아니라 우리 회사가 운이 좋았던 거네.)"


준공식을 성대히 마치고, 며칠 후 C사장은 부부 만찬에 저와 저의 아내를 (그리고 아직 어려서 홀로 둘 수 없어 데리고 간 아들까지) 초청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기간 동안 가장 아찔하였던 창원에서의 그 사건에 대하여 언급하며 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아마도 C사장이 부부동반으로 한국의 직원과 식사를 한 것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직장생활이 언제든 마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일상이 된 요즘 돌아보니, 대부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던 젊은 시절, 이때가 성과를 내기 쉬웠고, 승진도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준 사람들은 저의 친구가 되었고, 저의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지위가 올라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지게 되면, 그때가 직장생활의 위기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저를 시기하여 뒤에서 저를 폄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자신을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 우리는 도움을 주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요, 도움을 구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일단 우리의 대부분의 인생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으니, 우리는 도움을 받을 때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을 잘 받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도움을 잘 받는 자는 열에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 사람은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두 앞에서 쿨하게 인정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절대자이신 그분 조차 "구원하였다"라고 하시지 않고 "(의 믿음이)가 구원하였다"라고 하시며 그를 모든 사람 앞에서 높여 주십니다.

창조자가 그러하신데 하물며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직장인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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