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최강 빌런 Mr. A (2)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역대기상 18장 13절)
"C사장님, 오늘 Mr.A가 시운전 때문에 우리 공장에 오는데 일 끝나고 저녁에 제가 독대할까 합니다."
C사장은 처음 저의 말을 듣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처음부터 이 사태가 P상무를 비롯한 한국사람들이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이 사태를 수습하는 책임자로 P상무를 지정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리스트의 주범인 생산팀장과 품질팀장은 교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유사시엔 이 둘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워 자신은 이 사태에서 빠져나가겠다는 뜻을 은연중에 비추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실제적으로 핸들링해야 하는 품질팀장은 억울하다고 면피하려고 하는데, 뒤로 물러나서 상황을 보며 눈치나 봐야 할 이 생산팀장은 되려 주제넘게 나서니 말입니다.
얼마 전 저는 권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상황을 대략 설명드리고는 아무래도 고객과 일대일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권사님은 잠시 뜸을 들여 기도하시더니 하나님이 이것을 말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OO아빠의 동기가 순수하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부득불 그 사람과 독대하여 술을 마시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도 주저된다라고 말씀드리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매사에 하나남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을 해야겠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는 것은 오랫동안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긴급하거나, 중요한 사안은 권사님께 질문을 하여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듣고자 했습니다.)
"A대리님, 오늘은 내가 모시고 갈게요"
시운전이 끝나고 Mr.A는 공장 현관에 배웅 나온 우리 회사 직원들과 작별 인사한 후 여느 때처럼 자신을 늘 데려다줬던 영업팀장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내가 나서자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무슨 상관이 있겠냐 라는 표정을 짓고 이내 저의 차에 탑승했습니다.
"A대리님, 여기 근처에 유명한 한우집이 있는데 저랑 식사나 하시죠?"
경기도에 있던 공장을 떠나 서울 입구에 들어서자 제가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러자 A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선선히 동의하였습니다.
"R, 나는 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Mr. A가 왜 너와 독대하겠니?"
C사장은 저의 제안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C사장님, Mr.A가 왜 사태를 이지경으로까지 몰고 가는지 아시잖아요?"
"그래, 나를 타깃으로 하는 거겠지. 한국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 나를 몰아내고 P를 지사장으로 세우려고..."
C사장의 말에는 너 역시 한패가 아니냐 라는 의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나는 그들 편이 아니다고 변명을 늘어놔봐야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태을 바라보는 관점을 intend(의도)가 아닌 실행가능한 가(practical) 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물론, 당연하지."
C사장은 어림없다는 듯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 건 너희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 거야. P에 관해서는 이미 아시아 본사에 보고되었고, John이 결정한 사안이야.
그런데 John이 그걸 번복해? 자신이 잘못 결정했다고? 웃기는 소리마! (Fuxx up!) 오히려 영국 본사에 품질전문가인 B를 요청한 거 봐라."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A도 한 때 감정적으로 도발을 했지만, 지금쯤 자신의 의도대로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본사에서 B까지 파견하였으니 이것을 사태( factor)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요"
C사장은 잠자코 저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 지금 이 문제는 A를 포함하여 Local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커버하기에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G사 본사에서는 이 사건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리 없으니, 결국 글로벌적으로는 A가 관할하는 업체에서 대형사고를 친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요. 그 말은 이 사건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면, 결국 A의 책임문제가 대두됩니다. A는 결국 업체관리를 못한 무능력자(low performer)가 되는 거고요."
"그래. 이번에 미국의 G사 구매이사가 나를 미국으로 호출하여 결국 미국으로 날아가야 했잖아? 거기서 보니 미국에 있는 우리 미국 자회사의 G사 담당 영업 이사까지 호출했었더라고. 둘이서 그 사람 앞에서 한두 시간 꾸중을 들었는데, 그 미팅이 끝난 후 그 영업이사가 역정을 내더라. 왜 한국공장 때문에 나까지 욕먹어야 하느냐라고..."
저는 저런! 하는 표정을 지으며 C사장의 심정에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 예, G사 본사도 이렇게 뒤집어졌으니, 지금쯤 A는 마음이 급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A는 이 문제를 하루빨리 잠재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쪽에서 호응을 해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카운터 파트너(counter partner)로 세운 P가 이 사태가 해결되는 것을 진정으로 바랄까요?"
C사장이 코웃음 쳤습니다.
"그럴리는 없지!"
"예, 그러니 Mr. A는 결국 사장님의 사람이 counter partner로 나와서 함께 문제를 풀어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들 저는 사장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제가 한번 나서 보려고요."
C사장은 잠자코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가서 일단 이 문제를 빨리 수습하는 것에 힘을 모아보자... 서로의 회사를 위해서... 그게 A대리를 위해서도 낫지 않겠냐 뭐 그런 논리로 설득해 보려고요"
막상 식당에 마주 앉았지만, 서로가 평소에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서로 농담도 잘하지 않는 매사에 진지한 사람들이라, 우리는 시작부터 속절없이 술을 비워내었고, 그러다 보니 소주 두 병이 금세 비워졌습니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아서야, 우리는 비로소 속에 있던 말들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먼저 직설적으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A대리님, 저는 A대리님이 지적하신 사항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관리가 미흡한 것 백번 인정합니다. 반드시 다 개선하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좀 주십시오."
"지금까지 기다린 것 아시지 않습니까? 경쟁사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관리하고 있고요."
"예 압니다. 하지만 경쟁사는 20여 년간 품질시스템을 가다듬어 지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2년밖에 안 됐고요. 그리고 A대리님이 저희들 경험이 짧아 그동안 많이 봐주신 것 압니다. 그것에 대하여 늘 고맙게 생각하고요."
Mr. A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빨리 개선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 사태에 정치적인 것은 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식당을 나오고 대리 운전을 불러 일단 Mr. A의 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Mr.A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차의 트렁크를 열어 식당에서 따로 주문하였던 한우 세트를 꺼내었습니다.
"저의 사장님께서 드리는 조그만 성의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드십시오."
며칠 후 대회의실에는 본사에서 온 B와 아시아 본사에서 파견한 G사 담당 영업인 S, 그리고 C사장, P상무, 품질팀장, 영업팀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Mr. A는 우리 회사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100여 개가 넘는 리스트들을 일일이 지적해 가며 왜 이것들이 문제인지 설명하였습니다.
당연히 도중에 스스로 감정이 북받쳐 흥분하였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옆에 있는 C사장에게 영어로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C사장님, 제가 한국말로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C사장은 '기꺼이' 손짓까지 동원하여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A대리님, 한국사람들 체면 좀 세워주세요. 외국사람 앞에서 '아! 한국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하더라'라는 인상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Mr. A는 이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톤을 낮추어 되도록 논리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외국인들 앞에서 한국말을 하는 것은 큰 결례 중 하나입니다.
C사장은 언제나 어려움을 같이 극복했던 저를 믿고 그것을 허락한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자리에는 첫 만남부터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던 사람이 있었네요!
나중에 C사장의 후임으로 한국의 지사장으로 부임하는 그 S입니다.
어쩌면 제 생애 최악의 악연 중의 한 사람에게 이 날 경우가 없는 놈으로 첫인상이 박혀버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야 어쨌든 이 미팅 이후로 우리는 사람이 아닌 사실에만 집중하였고 결국 6개의 Red flag는 물론 100여 개가 넘는 부적합 리스트는 그에 못지않는 action list를 만들고 모두 실행함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물론 그 대책은 회사를 떠난 품질팀장도 공식 책임자인 P상무도 아닌 온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 사태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Mr. A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R팀장님, 다음 주에 저희 아시아 본사의 SQE 한 사람이 공장을 방문하게 됩니다. 시간 괜찮으시죠?"
"예? 아니 G사 본사에서 왜요? 그 사람도 자동차 촉매 관련 담당자인가요?"
"아닙니다. 그는 다른 쪽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R팀장님 공장에 QSB cross audit(교차 감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QSB는 Quality System Basic의 약자로 G사에서 자동차품질관리시스템의 엑기스만 간추려서 정립한 품질시스템입니다.
말 그대로 품질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추린 것으로 action(실행) 중심의 시스템인데, G사의 SQE들은 부품업체들의 QSB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감사하고 점수를 매깁니다.
그리고 이 점수가 70점이 넘어야 G사에 부품 견적을 넣는 업체의 자격이 됩니다.
그래서 이 커트라인을 넘기기 위하여 부품업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공장도 한 달 전쯤 G사로부터 QSB에 대한 실사를 받았는데, Mr. A의 말로는 우리가 너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이슈였습니다.
" R팀장님 공장의 QSB점수가 96점을 받아 best practice 가 되었잖아요? 난 공정하게 점수를 줬는데, 아시아 본사에서는 도대체 이런 점수가 나올 수가 없다. 너희 한국인끼리 작당을 한 것이 아니냐? 그래서 아시아 본사에서 직접 SQE를 보내어 cross check 해야겠다는 겁니다."
" 예 알겠습니다. 잘 준비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2년 전에는 전대미문의 품질 관련 부적합 list로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공장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만에 G사로부터 'best supplier award (최고부품업체상)'을 받았고, 최고의 품질시스템을 갖춘 공장으로 견학 대상이 되었으니 상전벽해도 이것만 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아시아 본사에서 나온 SQE는 우리 공장을 샅샅이 감사하고 갔습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94점'을 받았습니다.
"R팀장님, 그런데 그 루세늄(Ru) over spec. 사건 있잖아요? 도대체 그 원인이 뭡니까? 내게만 살짝 말해 주실 수 없어요?"
"아 예 글쎼요. 저도 사실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렇게 100여 개가 넘었던 부적합리스트는 모두 정리되었고, 상당 부분 개선하여 문제를 clear(해소)했습니다만,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가 하나 남았습니다.
바로 이 귀금속 스펙 오버 사건이었습니다.
품질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문제를 list up 하고 나면, 그 원인을 찾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품질 list는 하나씩 clear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원인을 모르니 대책을 세울 수 없어 clear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다른 모든 문제는 내부 시스템의 문제라 G사에 끼친 실제적인 영향은 없었지만, 그 제품은 이미 고객에게 납품하여 자동차에 장착된 제품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버부릴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그렇다고 앞서 여러분들이 아시는 그 원인에 대하여 오픈을 하면 우리 회사의 신뢰도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일이라 오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값비싼 귀금속을 더 투입하여 스펙보다 더 상위제품을 공급하였으니, G사의 손실이 아니고 제품은 불량품이 아니다고 계속 버티었습니다.
Mr.A도 달리 뾰쪽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고 closing 하였지만, 워낙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저에게 은근히 저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그토록 궁금했던 사안을 이제야 공개하게 되었네요...)
이것이 제가 세 번째 공장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입니다.
품질관리의 업무에서 가장 큰 실패를 딛고 일어선 결과라 면접 때마다 단골로 우려먹던 스토리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역사상 가장 큰 부자는 솔로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물은 아마 다윗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영화는 아버지인 다윗이 이룬 성공의 기반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다윗은 천한 목동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국으로 만든 왕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그(다윗)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역대상 29장 28절)
그 부와 존귀를 늙을 때까지 누렸습니다.
그러니 다윗은 역사상 가장 복 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공을 꿈꾸는 사람에게 다윗은 가장 큰 로망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