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John 이야기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세기 1장 3절)
" 젠장, 공장 한번 크게 지었네? 한국시장이 크지 않는데 저렇게 크게 지었으니, 저 공장 다 돌리려면 H사에 엄청 로비를 해야겠는 걸?"
안산 산업공단의 야산 풀숲에서 190cm가 넘는 거구의 백인 둘이 숲에 몸을 감추고, 주위의 눈치를 보며 어렵게 산 망원경을 교대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John, 그러게 이 사람들은 H사가 엄청 커질 것으로 생각하나 봐. 그래서 저렇게 여유 부지도 크게 갖추고 있고..."
"한국사람들이 그렇지... 매사 낙관적이거든..."
"우리도 빨리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아니 저 규모를 보라고... 저쪽은 벌써 10년 전에 들어와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고.
그리고 너 알다시피 H사 사람들 만만치 않아... 쥐뿔도 없는 주제에 뭐 그리 요구 사항이 많아...
전에 우리 쪽 영업 사원들을 아예 작살을 내더라고... 지금은 저쪽과 H사가 이미 관계를 돈독히 해놔서 우리가 들어갈 틈이 없어...
한국은 관계를 우선시하는 나라야..."
우리 공장이 한국에 들어서기 10년 전 우리 회사의 아시아총괄사장이었던 호주인 John(AJ라 약칭합니다.)과 그 아래 말레이시아 지사장이었던 미국인 John(UJ라 약칭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둘을 구별하려는 뜻이지 특정 국민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둡니다.)이 본사로부터 한국에 공장을 짓는 것에 대하여 검토하라는 명령을 받고 시장 조사차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경쟁사 공장이 보이는 언덕에서 스파이처럼 숲에 몸을 숨긴 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 일본에 갔던 두 통신사처럼 둘의 의견은 달랐고 이때는 결국 보스였던 AJ의 의견이 받아들여 한국에 공장을 짓지 않기로 결정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G사의 P상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한국공장이 들어섰을 때는 상황이 역전되어 UJ가 아시아총괄사장으로 진급하였고, AJ는 말레이시아 지사장으로 주저앉았습니다.
아마도 UJ의 예측대로 H사는 글로벌 TOP5의 자동차회사로 성장하였고, 당연히 경쟁사는 매출이 크게 늘었는데 우리 회사는 손가락만 빨고 있게 된 것에 대하여 본사에서 그때 부정적인 의견을 내었던 AJ에게 견책성 인사를 단행하였는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마침내 UJ가 승인하여, UJ의 신임을 받았던 같은 엔지니어 출신 C사장이 한국에 파견되어 한국공장이 지어졌습니다.
같은 시기에 일본 공장도 대대적으로 증설을 하고 중국은 회사 수익의 반 정도를 책임질 정도로 매년 라인을 증설해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시아를 총괄 지휘하고 있던 UJ는 승승장구하더니 영국 본사의 부사장으로 진급하였고 결국 CEO로까지 승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면 상사였던 UJ의 우산이 없어진 한국공장 C사장의 입지는 반대로 좋지 않았는데 그것은 한국공장에 부정적이었던 AJ가 그 빈자리(아시아총괄사장)를 다시 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야 AJ로 봐서는 한국공장은 신발에 들어온 돌과 같은 거야.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니라고...
중국, 일본, 인도 등 모든 아시아 공장에서 돈을 벌고 있는데 한국만 적자잖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적자가 나는 공장이 자신의 밑에 있으니... 가뜩이나 AJ는 한국공장 짓는 것을 반대했거든..."
C사장의 저에게 글머리에 언급한 두 John의 스파이활동을 재미 삼아 들려주었고, 한국에서의 임기도 어느덧 지사장들의 통상적인 임기인 5년이 다돼가고 있었기에 요즘 들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한국공장은 한국공장에 부정적이었고 품질 출신인 AJ가 아시아총괄사장으로 있을 때, G사로부터 그 품질과 관련된 난리를 겪었기 때문에 C사장 임기말년 즈음에 회사 내부에는 여러 가지 유언비어들이 나돌았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야 R, 이제 나는 한국을 떠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내부 인원들을 정리해라 라는 특명을 받았다. John이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
C사장은 이미 결정이 내려 돌이킬 수 없는 내용들만 저에게 오픈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너에게 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보통 외국인들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특히 중요한 일들은 local사람(현지인)들에게는 confidential(비밀로)하게 처리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저는 순간적으로 긴장하였습니다.
"그것은 F와 관련된 일인데... 어떻게 이번에 F까지 쫓아내어야 할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구조조정의 명분이 한국공장이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P상무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 안에는 지금껏 H사로부터 수주를 따지 못한 F이사의 책임도 있기에 구조조정 명단에는 F도 당연히 고려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F는 자신 외에는 H사와 일절 컨택하지 못하도록 처신을 해왔기에 자신을 쫓아내면 결국 H사와의 비즈니스는 포기하는 것으로 비치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F를 잘라야 하나 고민하는 이제야 모두가 F가 쳐둔 덫에 걸려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동안 F가 취하여 온 생존비결이었습니다.
F이사는 자신이 상대하는 H사 연구소 사람들은 자신이 이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연구소를 방문하면 대리나 심지어 신입사원을 내보내 상대한다고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업체를 다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회식자리에 회사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업체 임원들을 부르는 데 자신도 밤에도 불려 나가 술값을 치르는 일이 빈번하다고 우리들에게 불평하고 다녔습니다.
자신의 신세가 가련하다고 동정표를 얻으려는 속셈도 있었고 자신이 H사 비즈니스를 따지 못한 것이 자신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H사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핑계를 대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글쎄 말이야... 내가 F를 불러 H사 연구소 임원급들을 만나게 다리를 놔 달라고 하면 F가 뭐라는 지 아니?
그렇게 윗사람을 만나면, 담당 대리나 과장들이 기분 나빠하고, 막상 우리 제품을 테스트하는 사람이 그 사람들인데, 보고서에 우리 제품 성능을 형편없는 것으로 보고한다고 하면서 기겁을 하며 말리는 거야...
그러면 비즈니스는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내가 어떻게 H사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니?
너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 비즈니스는 Decision maker (결정권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F가 아랫사람만 만나고 다닌 다면 C사장님이 윗사람을 만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위로도 두드리고 아래로도 두드려야죠."
"그래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것이 F이사의 방식이었습니다.
F이사는 H의 사람은 누구도 자신 외에는 만나지 않도록 수를 썼습니다.
결국 우리는 F이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F이사가 보는 관점대로 H사를 봐야 했습니다.
그러니 H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특히 임원급의 결정권자들은 어떠한 need(필요)를 갖고 있고, 어떤 잣대로 업체를 결정하는지 전혀 무지하였습니다.
F이사가 말하는 대로 우리의 외국인 보스들은 H사를 crazy 한 사람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도깨비 집단으로 인식하였습니다.
결국 C사장은 F를 쫓아내지 못하였고, P상무를 포함한 영업팀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칼날이 휘둘려졌습니다.
C사장도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지 못하고, 쓸쓸히 자신의 모국인 멕시코로 짐을 쌌습니다.
"R, 한국지사장 후임이 누가 될까?"
아시아 실적 보고를 위한 아시아 정기 임원 미팅을 위해 상해로 갔을 때, 저녁 만찬에서 일본의 연구소 이사가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일본도 UJ가 세운 일본인 지사장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어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을 중시하는 AJ가 과연 이 local인을 일본 내 자동차촉매 쪽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유임시킬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공장의 차기 지사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일본의 미래도 예측되는 거라 이렇게 저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글쎄, 낸들 알겠니?"
제가 양손을 들며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너는 어때? 전통적으로 지사장은 영업이나 공장 출신이 되는데 한국의 영업의 head는 사라졌고, 공장은 네가 head잖아?"
저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AJ가 한국의 지사장을 결코 한국에서 뽑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결국 S가 한국공장의 지사장으로 발령 났을 때, 반은 역시나 하였고 반은 의아해하였습니다.
그가 영어를 쓰고 있는 아일랜드 백인이었기에 역시나였고 공장이나 영업경력이 짧았고, 자동차 촉매 쪽 경험 또한 일천하였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인사였습니다.
저는 당시에는 S와 얽힌 기억이 딱히 없었기에 저 보다 4살 어린 S에게 환영 메일을 보내며 내 딴에는 수그리고 잘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한국 공장 내에서는 이쪽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지사장으로 보내는 것이 한국 공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던 AJ가 한국을 키우는 것을 단념하고 결국 한국공장을 정리하기 위해서 S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는 나를 공장을 정리하기 위해서 보낸 게 아닌가 의심하는 모양이던데, 그건 사실이 아니야. 내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내가 왜 하겠니?"
언젠가 S는 회식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해 결국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외국계회사는 설사 그것이 성장을 위해서가 아닌 축소나 정리를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맡은 바 직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에 따라 업적을 평가합니다.
부임한 지 3년 결국 자신의 손으로 한국공장을 정리했던 S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폴란드의 지사장으로 부임받아 떠납니다.
진급의 메인 코스가 아닌 주변에서 스텝으로 전전했던 그에게 한국의 지사장으로의 승격은 결국 그런 레벨로 신분이 상승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셈입니다.
S가 부임한 후 AJ가 한국공장을 방문한 첫 번째 보고자리에서 부서별로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업총괄을 맡은 F의 발표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역시 H사와의 비즈니스였습니다.
"그래? 역시 H사는 무리인가?"
AJ가 탄식하듯이 물었을 때, S의 얼굴도 긴장이 된 듯 굳어졌습니다.
"예 H사 그들의 스타일 아시지 않습니까? Crazy 한 거"
F이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지으며 어깨를 으쓱하였습니다.
"그러게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Crazy 하다고. 개들은 답이 없어"
AJ는 그것 봐라는 듯이 손을 가로저으며 크게 웃었습니다.
그제야 S의 얼굴도 풀리며 동조한다는 듯이 웃었고, 미래에 적자를 벗어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사업보고서에 보고하는 자나 보고 받는 사람이나 너나없이 낄낄거리며 미팅은 끝이 났습니다.
'이 회사는 미래가 없구나'
저는 이제는 여기를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J가 다시 아시아총괄사장으로 복귀하면서 UJ가 세웠던 각 나라의 지사장들도 바뀌어갔습니다.
말레이시아 공장은 재무출신의 인도인이 지사장이 되었고, 인도공장은 자동차 촉매의 지식이 없는 관리형의 사람이 지사장이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경우는 자동차 촉매 전문가였던 일본인 지사장은 물러났고, 그 자리에 역시 관리자 출신이었던 인도인이 발령받았습니다.
기술자를 중시했던 UJ가 세웠던 거의 모든 지사장들이 중국을 제외하곤 다 교체되었습니다.
"S는 참모로서는 훌륭한데 지사장감으로는 아니잖아요?"
결국 저와 함께 남아있던 마지막 한국공장 창립멤버 재무이사는 회사를 떠나면서 한마디 하였습니다.
이러한 AJ의 인사발령의 결과였는지 몰라도, 일본에서는 한국공장과 마찬가지로 일본 고객들의 유래없는 고객 불만이 발생하여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아마도 말도 통하지 않는 인도인 사장이 가뜩이나 보수적이었던 일본 자동차 업계 고객들의 눈밖에 났나 봅니다.
이 고객 불만은 한국공장의 경우와는 달리 진전이 잘 되지 않고 장기간 고착 상태에 빠졌고, 결국 AJ가 떠나고 다시 일본인이 지사장으로 세워져서야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S는 제가 세웠던 공장을 폐쇄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공장은 결국 경쟁사가 세운 진입 장벽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AJ의 주장이 옳았고 UJ는 틀렸습니다.
그러나 틀린 주장을 했던 UJ는 승승장구하여 본사의 CEO가 되었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마침내 몸으로 증명하였던 AJ는 얼마 후 공장도 없는 호주로 발령받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오랜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부정적이며 남을 비판하는 부류가 오히려 상사의 관심을 끌고 일찍 승진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반면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 역시 결국 승진을 하게 되더군요. 더디기는 하지만.
그 럼 긍정적인 것과 낙관적인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그 생각들이 현실(데이터)에서 나왔는 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에서 발전이 될 sign(징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낙관적인 사람은 현실(데이터)을 직시하지 않고 매사 잘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자 두 John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이제 다시 저의 이야기로 돌아와 저와 S와의 얽히고설킨 이야기, 그 결과 결국 회사를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에 대하여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자 그것이 바로 '빛'이 되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한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결국은 그 열매를 맺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현재에 있는 실체들을 파괴하여 갑니다.
누가 성공할까요?
둘 다 나름대로 성공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성공의 필연적인 잣대는 아닌 듯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상사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떡고물이 보다 많이 떨어집니다.
그러니 매사 긍정적인(낙관적인 것은 아니고) 상사에 줄을 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