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큰아들의 직장 후반전(1)

그날 복집 회동

by 리본안
R 본부장님, 오늘 점심때 점심식사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2년이 막 지나가던 새해 초에 회계를 맡고 있던 U이사에게서 뜬금없이 메시지가 왔습니다.

가끔 회사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사내 식당이 아니라 외부에 나가 점심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U이사와는 아직 그런 사이가 아니었기에 웬일인가 했습니다.

오후에 일이 있어 반차를 내었는데, 다음에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약속을 미루려고 했습니다.

오후 반차라도 점심은 드실 거 아니에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고 보니 입사한 후 U이사가 사적으로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회사 이목이 있으니 회사 주위는 어렵고 OO횟집이라는 곳에서 12시 20분경 뵈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U이사는 습관적으로 회사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휴식시간 때 잠시 산책 나온 나에게 회사를 막 인수한 경영진들의 무리한 요구와 이해할 수 없는 행태로 인하여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더구나 회사의 자금줄을 쥐고 관리하고 있는 재무/회계의 유일한 임원이라 신임 경영진들의 자금과 관련된 결정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부당한 지시라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따로 만나야 한다고 하니 약속한 식당을 가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회사를 출발하기 전 마지막 메시지로 받은 내용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를 만나는 것은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길치라 언제나처럼 식당을 단번에 찾지 못하고 조금 헤매었기에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였는데, 식당 앞에서는 U이사와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C팀장이 담배를 태우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C팀장까지 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R본부장님, 여기 처음이시죠?"

"그러네요. 그런데 점심을 먹기에는 좀 과해 보이는데?"

평소에 마당발처럼 말이 많고 늘 웃으며 매사에 나서기 좋아하던 C팀장이 오늘도 역시 우리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C팀장은 미리 예약한 조용한 골방으로 우리를 끌고 가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워낙 오늘 사안이 중요해서요."

C팀장의 권유대로 주문을 시키자마자 C팀장은 음식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기 어렵다는 듯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본부장님, 오늘 오후 우리 회사에서 중대한 공시가 몇 개 나갈 겁니다."

공시?

저는 제조 관련, 기술업무만 해왔기에 회사의 외부적인 경영활동에 대한 용어들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아 글쎄 이놈의 X끼들이, 결국 회사돈을 건드렸어요. 그것도 수백억이나...

그래서 감사인 B를 설득해서 현재 대표이사인 O를 포함한 일당들을 횡령 배임혐의로 고발하기로 했고요."

"B감사가? B감사도 O대표랑 한통속 아닌가요?"

저는 당장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기에 하나씩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옆에서 잠자코 있던 U이사가 그동안의 내용을 차분히 정리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경영진의 횡령 혐의를 내부에서 알아차려도 종업원들은 고발할 권리가 없습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들이 자사 주식을 팔았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도 내부인인 제가 고발할 수는 없어요.

내부인이면서 고발을 할 수 있는 권한은 감사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B감사를 만나서 따졌더니, B감사는 나랑 무슨 상관이냐 하잖아요?"

그때 C팀장도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열불이 났는지 씩씩거리며 거들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O대표이사가 데려온 사외이사인 B이사가 B감사의 아들이잖아요?

횡령 혐의로 경영진들을 고발하면 자신의 아들도 고발해야 하는데... 한사코 자신은 못하겠다고 내빼는데..."


그제야 저도 당시 우리 회사를 인수한 경영진들의 배경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현재 회사 대표인 O는 우리가 다녔던 회사를 6개월 전에 회사를 창업한 오너였던 회장님으로부터 M&A 인수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사외이사로 자신의 고향친구였던 B이사를 데려왔고, B이사는 회계사 출신인 자신의 아버지 B를 감사로 추천하여, B는 이 회사의 감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B감사는 말 그대로 꼭두각시 감사로 O대표를 비롯한 경영진들의 비리행위에 대하여 적절한 감사는 물론 비리에 대한 고발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떡합니까? 이번에 고소된 횡령 배임 혐의에 B이사는 리스트에서 빠지는 조건으로 고발하기로 B감사와 합의했죠. "

가뜩이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안으로 삭히는 경향이 있던 U이사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도 많이 상해있었습니다.

"물론, B감사가 안 하면 내 목을 걸어서라도 이 모든 걸 까발리겠다, 그땐 당신도 감사로서 이것을 막지 못하고 묵인했으니 무사하지 못할 거다.

당신의 아들도 등기가 된 이사니 빠져나가지 못할 거고 협박도 했지요."

이 말을 하는 C팀장은 역시 언제나 강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두 사람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중요한 일에는 늘 함께 붙어 다녔습니다.

"예 그렇긴 한데... 그게 저에겐 무슨 이유로?"

그동안 자뭇 전쟁을 치른 것처럼 비장한 감회에 젖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본론으로 직진하는 저의 말투로 깨어버리자 평소 같으면 언짢을 표정을 지을 법도 했지만, 두 사람은 바로 오늘 현시점으로 재빨리 돌아왔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사정이 절박했습니다.


"예 사실 R본부장님을 뵙자고 한 것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드디어 U이사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저에게 약속해 주십시오. 거절하지 않겠다고..."

제가 웬만해서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그때는 회사의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친하지는 않았으나 서로 통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부탁을 하길래 이렇게 다짐부터 받고자 하는 것일까?'

역시 참다못한 C팀장이 요구사항을 바로 오픈하였습니다.

"O일당들이 횡령 배임 혐의로 고발당해도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O대표이사의 권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현 경영진들을 업무정지가처분 소송을 바로 신청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경영진의 공백상태로 들어가게 되고요."

저는 상황이 긴박하다는 것까지는 알겠으나,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건지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들로 인하여 현 상황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부딪혀가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되겠지'

C팀장은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따라서 종업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해야 하는데, 새로운 오너가 올 때까지 회사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U이사님과 저는 이 비상대책위원회의 장으로서 R본부장님이 제격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R본부장님이 비상대책워원장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예?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기술만 아는 공돌이가 어떻게?"

저는 반사적으로 일단 거절부터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말고 다른 임원들 중에..."

그리고 보니, 기존의 그 많던 임원들이 이번 M&A를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회사를 나갔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O대표이사가 데려온 새로 온 임원들을 빼고는 기존멤버로는 연구소장인 L이사, 그리고 막 이사로 진급한 저와 U이사 셋 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U이사는 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 예 기존 임원들 셋이 남아있잖아요?

일단 저는 안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이 사람들 밑에서 재무를 계속 봐왔기 때문에 이 사람들과 얽히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저의 이해속도를 가늠하려는 듯, 잠시 뜸을 들인 다음을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L이사는 회사에 어느 정도 주식을 가지고 있고, 기존의 일부 대주주들과 안면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잇속을 챙기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어요.

내부, 외부의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결국 R본부장님 밖에 맡을 임원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도 저는 이런 쪽으로는 문외한입니다. 사실 두 분이 말씀하시는 용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생각해도 오죽 답답하였으면 고지식하기로 이름난 저에게 이러한 일을 맡기나 싶었지만 아닌 것 아닌 것입니다.

"R본부장님,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굽니까?

사실 제가 다녔던 전 직장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적대적 M&A세력들에게 회사가 넘어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든다,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때도 경영진들이 횡령, 배임을 하여, 회사가 상폐(상장폐지)되는 것들을 경험해 봐서 잘 알아요.

제가 성심껏 도와드릴 테니, 저를 믿고 제발 맡아 주십시오."

C팀장이 작정하였다는 듯이 이렇게 저를 몰아붙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뜸을 들인 다음 바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결정이 회사의 미래는 물론이고 저 개인의 신상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결정인가 하는 것을 저는 이때 짐작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비상대책위원장을 한다는 것이 결국 끝에는 회사의 주인이 누가 되든 그 누군가에게 있어서 제가 어떻게 행동하였든지 간에 저는 새로운 조직을 쇄신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나 희생양이 되어 제거되어야 하는 1순위의 대상이 되는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때는 짐작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못하고 맡겠다고 한 것은 이 새로운 경영진들이 들어올 때 하나님이 꿈을 통하여 저에게 보여주신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이 사람들이 무슨 말들을 하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상황이지만, 일단은 이 중책을 맡는 것이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미리 보여주신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상무님이 맡겠다고 하셨으니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U이사는 안도의 숨을 쉬며, 저에게 신신 당부하였습니다.

"R상무님 회사의 종업원들을 대표하여 비상대책위원장을 하실 때 한 가지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회사의 소유권을 차지하려고 많은 세력들이 접근할 것입니다.

그때 소유권에 관여하면 안 됩니다.

그 세력들에서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셔야 합니다."


저는 말 그대로 서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사생결단의 전쟁터 한복판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기 전 제가 이 네 번째 회사로 들어오게 된 계기와 그동안의 서너 가지 사건들을 가볍게 풀어보고 갈까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탕자의 귀환 그 이후, 나의 직장생활 28년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