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큰아들의 직장 후반전(3)

호우시절(1)

by 리본안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열매를 네가 먹였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세기 3장 11절~12절)


"R부장님은 일단 3층에 있는 기기조립 팀을 맡으세요"

저보다 서너 살 어리다고 들었던 L이사는 은근히 하대하는 말투로 말하곤 하였습니다.

제가 새로 취직한 회사는 기술적으로는 화학기술을 기본으로 하여 이를 전자신호로 바꾸는 제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전공이 화학인 저는 당연히 화학을 응용하는 2층 생산실에 관심이 갔는데, 3층 기기팀장을 맡으라는 L이사의 지시는 대놓고 저의 처지를 고약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이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순순히 L이사의 지시를 아무 반발감 없이 그대로 수용하였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 여기는 새로운 분야이니 그동안 2층의 기술과 공정을 틈틈이 배워둬야겠다'


"저 본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입사한 지 이삼 개월 지나자 L이사를 찾아갔습니다.

L이사는 제가 떠들썩했던 입사 소동과는 달리 군말 없이 조용히 지내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어느 정도 안심(방심?)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 저 제가 알고 있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걸 2층에서 한번 애들 데리고 해 볼까 해서요. 애들 교육 차원에서도 유익할 듯하고요."

"뭐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그게 뭔데요?"

"예 Fast Response라고. 일종의 현장개선 활동입니다."

"그래요? 뭐 그렇게 하세요."

L이사는 이 시스템이 뭔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예민한 부분, '이 사람이 기술적인 부분만은 관여하지 않으면 된다.'라는 인식 때문에 '현장개선활동쯤이야 뭐 굳이 막을 이유가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2개월 정도 파악한 바에 의하면 여기 회사는 주제품의 70~80%를 유럽 등에 수출하는 회사였습니다.

매출도 일정 규모로 올라와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문제는 2층의 화학 기술로 만드는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Lot 불량도 가끔 일어나고 성능이 불안정하여 소비자들의 불만도 지속적으로 일어나지만 이것의 원인에 대하여 불분명했고, 당연히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특정 제품은 성능을 믿지를 못해, 일단 제품을 라인에 한번 태워보고 첫 샘플을 만든 후, 라인을 중지한 채 처음 샘플을 품질팀에 보내 분석한 후 이 샘플이 합격이면 생산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석 시간이 약 한 시간 이상 걸려 그동안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품질이 합격사인을 보내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어떤 때는 초도 샘플 분석이 fail 나서, 샘플을 계속 만들어 보내 합격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고, 결국 그날은 합격을 얻지 못하여 생산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곤 다음 날 같은 공정조건으로 제품을 생산하는데 이번은 운 좋게 합격하여 생산을 시작했다가, 결국 제품을 다 생산한 후 제품 분석 단계에서 성능이 fail이 나서 전체 lot가 불량제품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내부 생산단계부터 품질이 불안정하니 어떻게 품질검사에 합격하여 제품을 고객에 보냈지만, 고객이 이 제품을 사용할 때, 성능에 완전히 만족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품을 일단은 싼 맛에 사용되고 있지만, 글로벌업체나 한국의 No.1 제품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져, 반품을 요구하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 매출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정체되어 버렸고, 내외적인 이런 품질비용으로 인하여 최근 몇 년간 흑자를 내기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이, D팀장은 공정에서 lot불량이 나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제조를 맡은 D팀장은 여태껏 자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상사나 임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제품의 성능에 관한 품질문제는 연구소 소관이고, 따라서 이러한 질문은 연구소에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릅니다만... 아마 연구소의 레시피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라인에서 동일한 조건을 걸어도 그때마다 코팅액이 달라서 공정조건이 안 먹혀요.

언제는 좀 끈적거리고.. 어느 때는 말갛고... 제품이 fail 나면 기술팀에서 달려와서 공정조건을 건드는 데 제가 옆에서 봐도 그게 대충 없어요"

저는 연구소의 핵심 개발 인력인 Y팀장을 찾아갔습니다.

" Y팀장, 어제 라인 보니까 초도(초기 샘플 분석)에서 fail 났던데? 원인이 뭐라고 생각해?"

"아 아마도 라인의 석션압이 불균일해서 그럴 겁니다."

"그래? 내가 어제 석션압의 게이지를 자세히 check 했는데, 생산기간 동안 변화가 없던데..."

"아 그래요? 그럼 아마도 인쇄하는 원단의 품질이 불균일해서 그럴 거예요. 구매팀에서 잘 관리하지 않거든요."

"그래? 그럼 연구소에서 가이드라인(규격, specification)을 내려주면 되는 것 아닌가?"

"저희들이 가이드라인을 내려주면 뭐 합니까? 업체에서는 스펙을 맞추기 어렵다고 하고... 구매팀은 그것 하나 관리 못해서 업체 편 들어주고..."

그래서 저는 팀장 중 그나마 나이가 가장 많아 저와 나이차가 적어 다른 팀장보다 친하게 지냈던 구매 G팀장을 찾아갔습니다.

"연구소 애들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업체에서 그럽니다. 그럼 당신들이 와서 직접 인쇄해 보라고. 그 스펙을 맞출 수 있는가?"

다시 볼은 연구소 팀장에게로 돌아왔습니다.

" 그게 제 책임은 아니잖아요? 제가 처음부터 개발한 것도 아니고... L이사가 연구소 시절에 개발한 것인데, 제가 입사했을 때, 참 엉망이어서 그나마 지금은 제가 많이 개선한 것입니다.

기존 제품은 이게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M소장님 모시고 신제품 개발을 하고 있는데, 기존 방법과는 전혀 다른 공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지금 현재 공정은 원자재인 원단의 품질영향을 많이 타거든요."

듣다 보니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래 네 탓이야!'

(인류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아담은 하나님이 아담을 위하여 지어 준 평생 배필인 하와를 탓합니다.)

저는 세 번째 직장에서 배운 QSB (quality system basic)이 핵심 활동인 Fast Response를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Fast Response 활동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모든 문제를 투명하게 오픈하고, 문제해결 과정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Visual(시각화)하는 것입니다."

저의 세 번째 직장에서 막역한 동료였던 T품질팀장(지금은 본부장)은 역시 품질에 관한 한 전문가였고, 그의 체득으로 말미암은 강의는 금세 우리 조직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럼 Fast Response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요?"

T는 강의 중간에 가끔 이런 질문을 유도하여 청중들의 집중도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예 시말서요."

평소에 발랄하며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던 대리가 말하자 좌중은 모두 웃으며 자즈러졌습니다.

시말서가 뭐냐고요?

예 일종의 반성문입니다.

매달 회장님 이하 임원들과 팀장등 상급관리들이 참여하는 품질경영회의에서는 지난달 있었던 고객불만 내용에 대하여 보고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 회사의 경우 자주 나오는 고객불만은 포장의 라벨이 잘못된 것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보고가 들어가면 보통 경영진들(특히 회장님)은 호통을 칩니다.

"야 누구 실수야? 이게 모두 책임의식이 없어서 그런 거야. 자기 집 일이면 그렇게 실수를 해?

어이 L본부장, 책임자 찾아서 시말서 써라고 해."

그런데 사실 인간은 실수를 하는 동물입니다.

(자기 집 일이라고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실수에 시말서를 쓰게 한다면 당연히 시말서를 쓴 사람(하와)이 아닌 시말서를 쓰게 한 사람(아담)이 쫓겨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안에서 꼼짝도 못 하는 주제에 밖에서는 큰소리를 칩니다.)


Fast Response는 이러한 일조차도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왜 막지 못했는지 분석해서 인간의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거나, 이후 꼭 cross check 하여 error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조직에 있는 모든 문제들은 보이도록 게시하고, 그 문제의 owner를 지정하는데, 이것은 실수를 한 책임자를 명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책임자를 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Fast Response의 또 하나의 특징인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visual 화하여 공장의 모든 문제를 한눈에 보이도록 게시하고, 그 해결상황을 보이도록 함으로써 책임자들이 이를 보면서 분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따라서 이 fast response의 제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직원들을 깨는 것으로 군기를 잡는 것이 경영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Fast response 활동을 게시한 게시판을 보면 '아니 공장에 이렇게 문제가 많아'라고 새삼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게시판에 적혀있는 책임자를 따로 불러 깨곤 하죠.

그런데 저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제안하였으니, 용감한 발상이었고, L이사가 승인한 이유도, 모든 직원들이 스스럼없이 따라와 준 것도, 처음엔 이 Fast Response에 대하여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자. 우리 모두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어제 lot불량이 났는데, 그 원인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고 모인 것입니다. 이 모임은 최대 20분을 넘기지 않는 standing meeting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매일 아침 9시 반에 현장사무실은 구매팀, 생산팀, 보전팀, 연구소 등에서 팀장이하 과장, 대리들이 모여 북적거렸습니다.

모두가 이런 상황에 대하여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여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우리가 focus 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문제 자체입니다.

따라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해 주시고... 특정 개인의 책임이다 문제다 이런 류의 인신공격적 발언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뒤에서 그렇게 잘 까던 사람들도 막상 멍석을 깔아주자 처음에는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처음에는 혼자 북 치고 스스로 장단을 맞춰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 지금 이 자리에서 이것이 문제다라고 단정 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거는 불가능하고요. 단지 여기서는 이것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문제 제기 만으로 충분합니다.

다들 한 마디씩은 하고 갈 거니까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세요."

그러자 역시 평소에 자신의 의견을 잘 내세우는 연구소 Y팀장이 나서기 시작하였습니다.


" 자 오늘은 이러한 원인들이 제기되었으니, 이제는 이 원인들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볼 것입니다. 품질팀은 매일 이루어지는 이 standing meeting과 별도로 일주일에 한 번씩 관련 데이터를 모아서 따로 보고해 주세요."

저는 fast response 미팅과는 별도로 연구소 팀장, 품질팀들과 함께 별도의 상세미팅을 일주일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그동안 모아 온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곤 했습니다.

"이번 주는 연구소에서 제기한 공정의 석션압의 불균일성과 lot 불량의 상관관계를 리뷰해 볼 겁니다.

이전 3개월 정도 공정의 석션압 factor와 품질팀의 제품 성능 분석 결과를 정리해서 이번 주 금요일 정기 미팅 때 가져와 주세요."


"R본부장님, 저는 본부장님이 하신 것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이 바로 Fast Response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입사한 지 2년이 지난 후 우리는 우리가 이룬 성과들을 자축하는 회식을 하였습니다.

제조팀, 구매팀, 품질팀 모두 대리급 이상은 모두 참석하였고, 미팅에 꾸준히 참석해 준 연구소의 핵심 팀장들도 참석하였습니다.

제조팀의 막내 대리는 시끌벅적한 회식자리에서 술도 마시지 않는 저 앞으로 와서 콜라를 따라주면서 한마디 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본부장님 앞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의견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본부장님은 저의 의견을 십분 들어주셨고, 또 이것을 제도화하여 실행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잖아요?"

예 Fast Response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회사의 성과를 위해서 현장 실무자들 엔지니어들의 살아있는 의견과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본부장님, 저는 지금처럼 직장생활이 즐거운 적이 없었습니다."

품질팀의 이 대리는 매주 품질미팅 자료를 준비하고 발표하기 위하여 최신 품질분석기법을 찾아서 배우기까지 했던 친구였습니다.

"저는 매주 품질미팅 시간이 가장 기다려집니다.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것을 찾아낼까? 내가 찾아낸 것을 빨리 동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이렇게 자기 딴에는 성심성의껏 준비해 오면, 저는 그 친구를 따로 불러 제가 알고 있는 품질분석기법을 응용해서 coaching 해 주어 보완하여 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이고,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support 해주었습니다.

따라서 동료들이 이 fast reponse활동을 통하여 그 친구의 실력이 눈부시게 성장하였다고 인정해 주니 그 과정이 즐거웠나 봅니다.


2년 동안의 Fast response활동은 이렇게 회사 분위기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 회사의 재정지표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습니다.

"R본부장님, 저는 R본부장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와는 사적인 대화를 거의 하지 않았던 재무팀의 U부장은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 구석자리로 가있던 저의 앞자리에 앉으며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술이 과했네. 안 하던 짓을...'

제가 어색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R본부장님이 제조본부를 맡고 나서 제조본부의 비용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어요."

U부장을 보필하며 실제로 숫자를 다루던 회계팀의 고참 과장 역시 U부장의 의견에 공감한다면서 어느새 U부장의 옆에 앉으며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Fast Response는 품질문제뿐만 아니라 비용(생산성) 문제를 한 번에 다룹니다.

2년의 노력 결과 불량률은 70~80%가량 줄어들었고, 기기조립 생산팀의 생산성은 40%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숫자를 다루고 있는 부서에서 그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인식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직장생활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시절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호우시절(好雨時節)

중국 한시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두보는 춘야희우(春夜喜雨 )라는 시에서 '봄에 때맞춰 내리는 비'를 호우시절이라고 하였고, 우리나라 로맨스 영화의 대가인 허진호감독은 정우성을 주인공으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때 맞게 내리는 비...

이 시는 두보가 안사의 난 이후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영화의 배경이 되는 칭뚜(쓰촨 성 성도, 저의 중국여행기 신입대리 중국을 누비다(6)에서 마라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였던 도시이고, 제갈량의 유명한 출사표가 있었던 도시입니다.)에서 모처럼 안식을 찾게 되는데, 때마침 내리는 봄비를 보며 감상에 젖어 지었던 시입니다.

파란만장했고 궁핍한 생활을 했던 두보의 인생의 말년에 때마침 내리는 비를 보며 이 시절의 새삼 고마움을 만끽하며, 또한 그의 짧음을 아쉬워했듯이, 우리에게 비는 언제나 너무 늦게 오거나 아니면 너무 일찍 쓸데없이 많이 와서 문제인 것으로 느껴집니다.

우리의 호우시절은 너무나 짧고, 더 큰 문제는 우리는 이 순간이 호우시절인 것을 그 당시에는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호우시절을 기억하고, 이후에 똑같은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이 Fast Response제도를 시행하고자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때는 잘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회장님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딴 데 신경을 쓰느라고 집안 살림을 제대로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회장님과 사장님께서는 회사를 매각할 생각을 가지시고 외부를 다니시느라 이것들이 현장에서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지 모르셨고 당연히 시말서를 쓰라고 꾸중을 내릴만한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타 부서 팀장들까지 불러 설치고 다니는 이 신임 본부장을 아니꼽게 볼 수 있는 본부장급 저의 동료 임원들은 회사의 매각 과정에서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잔소리할 사람이 없는 집안에서 오롯이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같은 아랫사람들에게는 호우시절(好雨時節)이었지만 회사 전체를 태풍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사건(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폭풍 전의 고요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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