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여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사사기 7장 4절~7절)
"어이 R부장, 이제 자네가 제조본부장을 맡아야 한다고 회장님께 말씀드리고 L이사를 신사업 본부장으로 임명하자고 건의드렸더니 아직 R부장을 믿을 수 없으니 당분간 L이사가 제조본부장도 겸임하는 것으로 하자시는데?"
제가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나갈 무렵 사장님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회장님께 다시 한번 건의드렸지만 회장님께서 창업멤버인 L에 대하여 가지신 애정은 여전하였습니다.
"사장님 본부장이면 본부장이지 임시 본부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죽도 밥도 안됩니다.
이왕 시키실 거면 확실하게 밀어주십시오."
"어 그래 그렇지? R부장 자신 있지?"
사장님은 오히려 제가 강하게 나가자 더 힘을 얻으시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면접 때 약속했던 본부장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존 제품 개선은 R본부장님이 맡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잘됐습니다. 저도 남이 만든 건 손 대기 싫어요.
제가 경험한 것과도 본질적으로 다르고. 저는 새로운 개념의 신제품을 만들 겁니다."
제가 제조본부장이 된 것을 가장 많이 축하해 준 사람은 M소장님이었습니다.
업무 분장이 되어서이기도 했지만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자주 제조라인을 빌려 써야 하는 연구소 입장에서는 연구소 출신인 L이사는 내부 경쟁자이기 때문에 라인을 빌리는 데 늘 눈치를 보아야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뭐 예상됐던 일이에요. 나로서는 나쁠 것 없죠.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으니... 나도 이참에 똘똘한 아이템 하나 찾아서 독립해야죠"
L이사는 어떻게 보면 두 번이나 요직 (연구소장과 제조본부장)에서 밀려났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아주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은 그나마 N기술팀장을 제대로 가르쳐 놨으니 의지하고 맡기세요. 제법 똘똘한 친구니 잘할 겁니다."
연구소는 M소장 밑에서 타사에서 연구원이었던 외부에서 영입한 인원들이 핵심인력으로 꾸려져 회사의 사활을 걸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었고, 오랫동안 L이사를 모셨던 기존멤버인 N팀장 중심으로 생산기술팀이 꾸려져 기존 제품 개선 업무를 맡아 저를 보필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기획하신 이러한 조직체계에 곧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야, N팀장이 그만둔다고?"
"예, 그렇습니다."
"야 N팀장이 그만둔다면 생산기술팀은 어떻게 하려고?"
사장님은 이 조직개편 즉시 N팀장이 올린 사직서를 보고 한걸음에 저에게 달려오셨습니다.
"야 R본부장이 잡았어야지."
"예 잡았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는데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L이사 와도 충분히 얘기 나누었다고 하면서..."
"그럼 L이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네? 아니, 이 사람이! 엿 먹으라는 거야 뭐야"
사장님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셨습니다.
제 입사부터 고집을 부려 결국 자신의 원대로 되었는데 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R본부장 어떻게 할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M소장이 도와준다고 했고 M소장 밑에 Y팀장의 서포트를 받으면 됩니다."
"그래 잘할 수 있지? 난 R본부장만 믿어"
일단 사장님을 안심시키려 말을 이렇게 했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외국계회사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던 M소장은 자신의 손을 거치지 않은 기존 제품에 아예 관심은 기울이지 않았고 동종 아이템의 한국 선구자 업체에서 온 Y팀장은 당연히 기존 제품의 한계를 까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는 지극히 정상적인 직장인이었습니다.
반면 통상적인 한국회사 제조본부장들이 그렇듯이 품질의 불량은 연구소에서 처음부터 디자인을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변명하거나, 그것은 연구소의 역할이라고 떠 넘기는 분위기에서, 핵심기술자인 기술팀장도 퇴사한 마당에, 사장님은 정치적인(?) 욕심으로 기술적으로 초짜인 신임 제조본부장에게 제품개선의 중요한 역할을 떡 맡기신 것입니다.
더구나 제품을 개발한 당사자인 L이사조차도 품질본부에서 제품에 문제가 있으니 제품을 승인하여 출시하기 어렵다고 이슈를 제기하면 '그래서 어떡하라고 그러는 것이냐? 대안이 없는데... 고객이 싼 맛에 우리 제품을 사는 것이니 그 정도는 영업에서 감수하고 커버해야 하는 게 아니냐'라면서 오히려 역정을 내는 것이 현재 우리가 제품에 대하여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저는 이유야 어쨌든 제조본부장으로서 제가 만든 제품이 불량품이라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된 저로서는 이곳에 오게 하셨고, 이런 상황에까지 몰고 가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기드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가라고 하시는구나.'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Fast Response 활동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3개월이 지나서 이 문제에 대한 사태파악은 끝났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은 세상을 직접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 저는 그냥 매뉴얼대로 만듭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매 lot마다 물성이 다르다고 하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앞서 D생산팀장의 말을 듣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코팅액을 제조하는 작업자들에게 이 현상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상투적인 대답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혹시나 본부장님이 자신을 책망할까 변명하기에 바빴습니다.
저는 다시 연구소의 Y팀장을 찾았습니다.
"Y팀장, 현장에서는 코팅액이 어떨 때는 묽다고 하고, 어떤 때는 걸쭉하다 하는데, 그럼 용액의 끈적거림은 점도의 차이인데, 점도를 재 볼 생각은 안 해 봤어"
"당연히 해 봤죠. 실험실에 점도계 보셨잖아요."
"응 봤는데, 점도를 재진 않던데?"
"글쎄 용액이 점도를 잴 수가 있어야죠. 점도도 낮을 뿐만 아니라 점도가 자꾸 재는 동안 변하는걸요."
용액의 끈적거리는 정도를 재는 점도라고?
저의 글을 읽으신 분들 중 기억력이 좋으신 분들은 아마도 저의 첫 직장이 어딘지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물엿을 만드는 공장을 다녔습니다!
끈적거리는 물엿의 기본적인 물성인 점도를 측정하는 것에 관한 한 저는 연구소부터 업무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점도가 재는 중 변한다?'
이것은 이 코팅액이 물엿처럼 어디서 재든 균일한 상태가 아니라, 이 용액이 밀가루를 얇게 푼 것처럼 위치에 따라 점도가 균일하지 않는 에멀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분들이 또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세 번째 직장에서 언급한 귀금속 촉매 코팅액 washcoat 역시 에멀전 상태였습니다.
거기서도 코팅하는 물성으로 가장 중요한 factor는 점도였고, 점도를 측정하여 관리하였는데, 이 회사 코팅액처럼 점도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점도를 측정하는 방법 (교반기 날과 교반 시작 후 균일한 시간에서 측정하는 것)을 표준화하여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회사의 기술적인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을 저에게 미리 훈련시키시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저는 일단 점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표준화하여 수치화하였습니다.
그렇게 측정하는 방법이 생겼고, 이를 표준화해서 측정해 보니, 이 코팅액은 만들 때마다 수치가 다르게 측정되었고, 더욱 기막힌 것은 현장에서 코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치가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안 되는구나. 이 코팅액 자체가 불안정하게 디자인되었네.'
대부분은 여기서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정신입니다.
격물치지란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름'으로 유교 경전 '대학'의 '팔조목' 중 첫 번째 가르침입니다.
저는 중요한 문제를 직면할 때, 이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달라고 만물의 창조자이신 성령님께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앎에 이를 때까지 몰입합니다.
"자 그럼 코팅액 제조단계부터 배합 순서마다 시간별로 계속 점도를 측정해 보세요."
저에게는 시키는 일을 우직하게 행하는 부지런한 손발(대리급)들이 있었습니다.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언제 점도가 변하는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자 그런데 전 작업자는 pH를 조정하는데 짧은 시간에 해버리고, 어떤 작업자는 pH 조정하는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그것이 문제인가요? 어차피 pH를 맞추는 게 목적이잖아요? 전임자는 익숙해서 단번에 맞추고, 후임자는 서툴러서 천천히 맞추고."
"자 pH를 맞추면서 점도가 크게 변하는 것을 보세요. pH를 맞추는 것의 본질은 pH가 목적이 아니라 pH 조정을 통해서 입자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에요.
그리고 빠르게 pH가 맞춰지면 입자가 급속하게 커지고, 느리게 pH가 맞춰지면 입자는 성장이 늦어 입자가 작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pH에서도 입자의 크기가 달라, lot 마다 점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럼 현장에서 코팅할 때, 왜 점도가 계속 변화하는 것이죠."
"그것은 비정상적으로 커진 입자들이 계속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점도 용액을 교반하는 교반기 날들의 디자인이 적정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저의 세 번째 직장에서는 저점도 에멀전 용액과 고점도 에멀전 용액을 교반 하는 날(blade)의 type이 달랐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 경험을 토대로 현장의 교반기의 날들을 저점도 용으로 다 교체하였습니다.
현장에서는 더 이상 코팅액의 점도가 lot마다 시간마다 달라진다는 불만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동일한 석션압이 적용되면서 lot 불량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잡히지 않는 제품이 있었는데, 이 제품은 비교적 최신에 개발된 제품으로 연구소에서는 회장님께서 우리 기술 수준으로는 다소 무리하게 밀어붙여 개발하였다는 평가를 듣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불안정한 공정 조건 속에서 불량을 내는 빈도가 다른 제품보다 훨씬 높았고 어떤 때는 초도평가에서 fail로 판정받아 하루 종일 생산을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이것은 애초부터 우리에게 역부족인 제품이다' 하고 현장과 실무자들은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이것을 경영진(회장님)에게 이슈화할 수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복불복'의 제품으로 운이 좋아 초도에서 pass 하면 생산하고, fail 나면 짐을 싸고 그날 퇴근하고 '내일은 어떻게든 생산할 수 있기를' 빌며 퇴근하는 제품이었습니다.
이 제품도 점도를 균일화하자 매우 안정되었지만, 가끔 불량이 발생하여 안심할 수준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현장에 들어갈 때마다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들려주고자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현장의 어떠한 소리도 놓치지 않고 듣고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마음을 잡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마철인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현장에 앉아있는데, 현장의 담당 과장이 와서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본부장님 오늘 원단의 건조가 잘 되지 않아서 원단 표면에 약간 습기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뭐라고? 습기가 있다니?"
저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가져와 보라고 하며 이런 현상이 자주 있는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예 가끔 있는데 특히 장마철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현상은 그 까다로운 제품에만 유독 심하다고 하였습니다.
“야 그럼 이 제품의 건조온도가 몇 ℃냐?”
그러자 그 과장은 온도가 OO℃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 낮은 온도로 세팅되어 있지? 다른 제품은 10℃ 가 더 높잖아?"
"연구소에서 이 제품 양산할 때 그렇게 지정되어 내려왔습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효소가 열에 약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연구소에 있는 이 제품의 개발 이력과 양산이관과정들과 valiation report (검증과정보고서)를 보면서 건조의 조건을 세팅하면서 기술적으로 판단하는 적정 포인트를 잡는데,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또 여러분의 기억력을 테스트할까요?
이 회사의 코팅액의 핵심 원료는 효소(enzyme)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저의 첫 직장은 효소를 사용하는 회사였고, 저의 연구원으로서의 첫 연구과제 역시 효소였습니다!
그리고 건조로의 온도를 책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factor는 효소의 열화(denaturation)에 의한 활성저하를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세 번째 직장에서 건조로에 얽힌 경험담을 장황하게 설명해 드렸었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가장 잘 아는 공정(기계)은 저를 가장 골탕 먹였던 건조로의 capa. 문제로 저는 그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건조공정에 관한 전문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회사의 핵심공정의 문제는 제가 가장 이미 충분히 연구하고 경험하였던 물질과 공정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이 물질의 특성에 대한 지식으로 이 문제의 공정조건인 건조조건을 재세팅하여 적정 조건을 찾아내었고 이 제품은 눈에 뜨일 정도로 안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도검사에서 불량이 발생하는 경우가 사라졌고, 제품은 항상 안정적으로 생산되어 더 이상 공정을 멈추지 않고 무검사까지 가능해질 정도로 진전되었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요엘 2장 23절)
호우시절에 관한 비유는 성경에도 있습니다.
지혜와 능력의 근원 되시는 성령하나님은 보혜사 (우리를 옆에서 도우시는 분)로서 필요할 때 내리는 단비로서 비유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