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4)
'엔지니어는 데이터로 말한다.'
직장생활 한 분야에서 10년 정도 특히 기술자로 근무를 하게 되면 소위 전문가(Master)가 됩니다.
더구나 팀장이 되어 목표를 세우고 한 팀을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되니 자연히 권위의식도 생겨서 자기의 주장이 뚜렷해지고 심지어 임원들의 말도 흘려듣죠.
(물론 직급이 깡패라 듣는 척은 하지만요.)
더구나 이 분야에는 경험도 없는 그것도 제조분야의 임원의 말을 Y팀장이 들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 번째 직장에서 써먹던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일본의 동북부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특히 그 일대 공업단지의 인프라가 대미지를 입어 그곳의 우리 회사 공장도 가동이 중지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일본 자동차산업도 납기를 준수하는 것이 생명이라 당장 납품을 해야 하는데, 역시 가장 가까운 한국이 일본과 유사한 최신식 라인을 갖추고 있어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 한국 라인을 테스트하기 위하여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시운전은 보기 좋게 실패하였습니다.
자동차 촉매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불량인 셀의 구멍이 막히는 cell block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일본 연구팀장은 셀이 막히는 이유가 코팅액(와시코트)이 너무 뻑뻑해서 그렇다고 생각했고 물을 좀 더 타서 와시코트를 좀 더 묽게 만들고자 했고 저는 와시코트를 좀 더 뻑뻑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 연구팀장은 아니 셀 이 막혔는데 와시코트를 더 뻑뻑하게 만든다니 상식적이지 않다고 하며 저의 제안을 무시하였고 그가 원하는 데로 와시코트를 좀 더 묽게 만들어 다시 코팅했는데 cell block현상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예 이번 시운전의 결과 한국 라인은 일본 제품을 생산하기에 부적합합니다"
순간 일본 본사의 연구소장과 영업담당자의 실망감이 화면을 통하여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그럼 대안은? 어디서 생산할 수 있지?"
"중국이 라인이 많고 다양하니 중국을 컨택해 보겠습니다."
연구소 팀장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데 저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어 Y과장, 샘플 나왔어? 그래 어때? cell block은?"
저는 구석으로 가서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 그래? 야 그럼 그 담체 가지고 회의실로 와라."
저는 영상 속의 일본 본사 사람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일본 연구팀장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W상, 사실 어제 시운전이 실패로 끝나자 우리 애들한테 따로 와시코트를 좀 더 뻑뻑하게 만들어 놓으라고 했어. 그리고 지금 미팅할 때 라인에서 코팅을 해봤는데 cell block이 없어졌데."
우리는 생산과장이 들고 온 샘플을 모두 일일이 확인하고는 양상 통화 건너편의 일본 본사에도 시운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럼 왜 우리는 동일한 현상에 대하여 정반대의 솔루션을 내놓았을까요?
그것은 그 일본인 친구는 cell block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자신이 지금껏 배운 지식대로 접근했고 저는 cell block이 일어나자 이 cell block이 통상적인 cell block인지 아니면 다른 특성이 있는지 상세하게 조사해 봤다는 차이에 있습니다.
일본인 친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cell block은 우리가 와시코트를 담체 위에 뿌리고 밑에서 진공을 걸어 빨아드리며 코팅할 때 와시코트가 뻑뻑해 제대로 빨아드리지 못할 때 생기며 통상적으로 담체의 홀의 윗부분에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 생산 라인은 설계 때부터 건조로의 사이즈가 크고 트레이에 담체를 6 ×6(36) 개를 담고 건조로에 들어가고, 일본의 경우는 2 ×2개를 담고 움직이기 때문에 일본에 비해서 우리 라인은 담체가 건조로에서 건조되기 전에 holding 하는(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에멀전의 와시코트가 홀 안에서 흘러내려 셀이 막힐 가능성이 높은 건조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조로 문제는 설계 때부터 골탕을 먹였던 부분이라 특히 우리 라인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조조건을 잡느라 고민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cell block이 발생한 순간, 담체를 윗부분부터 가로로 다섯 등분하여 셀이 막힌 부분을 검사해 보니 예상대로 상부가 아나라 중간지점에 셀이 막혀있었습니다.
"You win(네가 이겼다.)"
그 기술자는 그날 저녁 test 성공을 기념하는 회식에서 나에게 술을 건네며 한마디 하였습니다.
"Oh, no, we are win(어 아니야, 우리가 승리한 거지)"
저는 손사래를 치며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운전의 책임은 연구소에 있습니다.
그가 성공했고 그의 성과로 기록됩니다.
그 후 우리는 막역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일본공장에 제가 가게 될 때에는 그 친구가 항상 저를 보이콧해 주었고, 그 친구나 그 친구 휘하의 엔지니어들이 한국에 오면 언제나 제가 챙겨 주었습니다.
그 해 아시아 엔지니어링 미팅을 주선하던 그 기술자는 한국공장의 대표로 간 저를 각국의 엔지니어들에게 소개해 주면서 (사실 우리 한국공장은 조그마한 공장이라 별도로 공정 엔지니어를 뽑을 수가 없어 생산을 맡고 있는 제가 대타로 간 것입니다.) 실력과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저는 말로는 Y팀장을 비롯한 연구소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하나 제가 직접 일본 잉크를 가지고 신제품 샘플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비용면에서 보면 통상의 제조본부 폐기비용으로 저의 권한하에 아무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밑져야 본전입니다.
운이 좋게도 신제품을 만들 수 있는 모든 resource가 제조본부장인 저의 밑에 있었습니다.
G팀장은 당연히 일본산 잉크를 수배해 주었고, 인쇄 전문가는 그 잉크를 가지고 신제품에 사용되는 인쇄 원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제품에 적용되는 효소용액 레시피대로 제 밑의 생산기술팀에서 코팅용액을 만들어 주었고, 당연히 저의 생산라인 역시 저의 지시대로 가동되어 신제품의 샘플을 양산 scale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밑에 있는 생산기술팀은 공정과 제품 분석을 하여 저의 시도가 성공적이라는 것을 데이터로 보여주었습니다.
"야 R본부장, 수고했다 수고했어. R본부장이 솔루션을 찾았다며..."
사장님은 한걸음에 달려와 저에게 축하의 말을 던지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회사의 명운이 걸린 신제품 개발을 자신의 라인이라고 생각했던 M연구소장과 제가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화로 회사의 기술력의 추는 회장님의 창업멤버 라인에서 사장님의 신규멤버 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더구나 특히 회장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를 채용하고, 밀어주어 제조본부장으로까지 승급시켰는데, 자신이 경영진으로서 추진한 이 결정이 잘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사장님의 회사 내 입지가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 왜 Y팀장은 잉크의 종류가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기존제품의 공정에는 잉크를 인쇄한 후 효소용액의 효율적인 코팅을 위해서 미리 전처리 용액을 코팅하기 때문입니다.
예 앞서 언급한 점도가 변하고, 재기가 어렵다는 그 용액이 전처리용액입니다.
Y팀장이하 연구소들은 이 전처리용액의 변덕을 피하기 위해 전처리용액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효소용액을 원단에 코팅하는 공정을 시도하였습니다.
따라서 효소용액을 제대로 코팅하기 위해서는 잉크의 표면적인 물성이 아주 중요해졌는데, Y팀장은 과거의 경험에만 의존하여 잉크의 종류나 물성이 제품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미리 단정해 버렸습니다.
'무지보다 편견이 무섭다'라는 한 신학자의 교훈이 다시 생각나게 하는 예화입니다.)
"R본부장님, 연말 종무식 때 한 말씀 준비하고 오셔야겠습니다."
어느덧 제가 입사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인사팀장 C가 싱글거리며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응, 무슨 말을?"
뜬금없이 던진 C팀장의 말에 저는 또 무슨 일인가 하였습니다.
"예 본부장님이 올해 최우수사원으로 뽑히셨어요. 상금도 있으니 축하드립니다."
"뭐? 웬 최우수 사원? 본부장이?"
"예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본부장급은 최우수사원으로 추천 자격이 없고. 최우수 사원은 팀장 이하에만 해당된다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오랫동안 회장님을 모셔온 C팀장이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습니다.
"회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야 내가 회장인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R본부장을 최우수사원으로 뽑으라는데..
회장님이 오히려 역정을 내시더라고요..."
회사일의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의 인도하심대로 따라 사는 훈련의 받으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직장에서 하는 대부분의 선택과 결정들이 선(good)과 악(evil) 혹은 옳은( right ) 것과 틀린(wrong) 것을 구별하는 것이 아닌 어느 것이 나은 가 (the better)를 분별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들이 우리의 삶(성과와 성공)에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러니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은 단순한 일은 아닙니다.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기도할 때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고, 주로는 성경말씀으로, 때로는 환경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어떠한 생각이 들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나의 생각이나, 아님 때론 나쁜 영들의 작용인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혼동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확신하는 저만의 기준이 오랜 훈련의 기간을 통하여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은 물결의 흐름을 타는 것입니다.
지금 하시는 말씀이 지금껏 들어온 말씀과 흐름이 맞으면 일단 하나님 뜻으로 알고 순종합니다.
그러나 지금 하시는 말씀이 지금껏 들어온 말씀과 흐름(방향)이 다르면 일단 멈추고 왜 하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지 기도를 통하여 묵상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그분의 기쁘신 뜻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너도 이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듣는 훈련을 시작하였다니 내가 한마디 할게. 하나님의 음성은 귀신도 듣는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가는 것이야"
20년 만에 만났으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없이 바로 주제로 직진할 만큼 우리들이 함께 보낸 그 시절은 참 진지하였습니다.
그 선배는 대학시절부터 하나남의 음성을 듣는 은사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저와 2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저는 그로부터 20여 년 후에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였으니 20년이나 까마득한 후배의 이 여정의 시작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었습니다.
"OO야,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후부터 발견한 게 하나 있어.
하나님은 참 성실하시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히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다.
(Because of the Lord's great love we are not consumed, for this compaasion never fail.)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예레미야 애가 3장 22절~23절)
앞에서 저는 충성된 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비유를 예를 들었습니다.
여기에 '충성된'이라는 종의 성품을 'faithful'로서 표현하는데, 동일한 용어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에 사용합니다.
예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시고, 말씀으로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음성을 충실히 듣고자 하는 자에게 비교할 수 없는 성실하심으로 말씀하십니다.
(He is always speaking)
제가 일본산 잉크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선택하여 적용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이 길로 들어서게 하시는 흐름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자.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호우시절은 이렇게 지나가고 다음 해 신년벽두에 저희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회사를 매각하기로 했다고 회장님께서 폭탄선언을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