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귀환 그 이후, 큰아들의 직장 후반전(11)

파토를 내는 패를 쥔 사람들

by 리본안

"본부장님, 혹시 시간이 되시면 1층 접견실로 오실 수 없으실까요?"

S이사 밑에서 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던 I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예 왜요?"

"지금 주주들이 들이닥쳤는데, O대표이사는 부재중이고, 그렇게 달래서 보내려고 하는데 비상대책위원장이라도 만나고 가겠다고 해서..."

"아니 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알고요?"

"소액주주 토론방에 본부장님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고 떴나 봅니다. 와서 얼굴이라도 비추고 가셔야겠습니다."


얼마 전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며 때로는 직언도 서슴지 않았던 품질팀의 E과장이 저에게 달려왔습니다.

"본부장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셔서 어깨가 무거우시겠네요?"

"그래 나 같은 순진한 공돌이가 뭐 알아야 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본부장님, 본부장님이 비상대책워원장이 되시던 그날 저녁 그 소식이 소액주주방에 떴습니다.

그러자 R본부장이 누구냐? 믿을 만한 사람이냐? R본부장님에 대한 신상 털기가 시작되었어요."

"야 그건 네가 또 어떻게 아니?"

"사실 저도 그 멤버이니까요, 회사 직원 중에서도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이번 사건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본부장님, 외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시려면 주주 토론방에도 들어오시고 그러세요.

그리고 이제는 소액주주들이 회사의 실제적인 주인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도 신경 쓰셔야 하고요."

"그래? 그런데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데... 내 본연의 회사 업무도 봐야 하고.

대신 E과장이 나에게 유용한 정보가 있으면 계속 전달해 줄래?"


난데없는 소액주주들의 호출에 저는 늘 그렇듯이 지금은 업무로 인하여 바쁘니 좀 기다리시라고 하고 뜸을 들이며 생각할 시간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때 품질 E과장이 다시 저에게 왔습니다.

"본부장님, 소액 주주들이 들이닥쳤죠?"

"어 그래.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본부장님, 조심하세요. 오늘 온 사람들이 전체 주주들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니...

그리고 어제 이상한 ID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좀 수상해요. 내일 회사를 쳐들어가자느니 선동을 하더라고요."

"그래. 알았어. 가서 무슨 말하는지 그냥 듣고만 있을게. 별 할 얘기도 없고..."


그렇게 주주들의 모임에 불려 가 형식적인 인사를 하며 안면을 턴 후 E차장은 다시 쪼르르 달려와 수상한 ID를 쓰는 사람의 존재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H감사였습니다.

O대표이사가 잔금을 치렀다는 공시가 나간 이후 O대표이사는 법적으로 회사의 경영진이 되었고, 이후 임시주총을 열어서 H감사의 지위를 박탈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시를 통하여 O대표이사 일행이 주권이 없는 허수아비 오너라는 것을 알게 된 H감사는 이 임시주총이 이루어졌을 때 O대표이사는 실제 주식이 없는 상태였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H감사는 이 임시주총이 실효가 없다고 임시주총 무효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임시주총이 무효가 된다면, 이때 회사의 경영권은 누구에게로 가는 것일까요?

창업회장님은 지분을 이미 판 상태이고, 기존의 등기이사들은 다 해임되었고, 현재의 등기이사인 O대표이사등은 지분이 없는 상태이니, 이 회사의 대표는 공석인 상태가 됩니다.

결국 새로운 대표를 세우기 위하여 임시 주총을 소집해야 하는데 이것은 등기 이사나 감사가 가능하고, 따지고 보면 감사였던 자신이 이 임시주총을 무효화시키면 유일하게 남은 권한을 지닌 사람이라고, 이 비상사태에서 회사를 임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임시 주총을 소집하거나, 새로운 주인을 들여서 경영권을 새로 인계할 수 있는 법적인 대변인 자격이 있으니 이를 통하여 자신이 새로운 판을 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정보들을 소액주주방에 흘리고, 가뜩이나 불안한 소액주주들을 뒤에서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H감사의 주장이 그대로 관철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법정에서 수사와 재판을 통하여 밝혀지고 결정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결정되어 판결되기까지는 보통 1년 이상, 최장 2년도 더 걸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동안 회사는 법(절차)보다는 주먹(실제적인 권력)이 가까운 시절에 놓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소위 소액주주들이고, 이 개미들을 선동하여 어떻게 자기에게로 끌어들이는가 하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 R본부장님, 이거 주주명단입니다."

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된 날 U이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저에게 와서 주주명단이 담겨있는 CD를 건네주었습니다.

U이사는 작년 말 올해 3월에 있을 정기주주총회를 준비하여야 한다는 핑계를 대어 O대표이사를 협박 반 회유 반으로 압박하여 작년 12월 말 기준의 주주장부를 조회하여 그 명단을 확보하였습니다.

당연히 그 명부에는 O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 등기이사들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제가 가지고 있으면 O대표뿐만 아니라 다른 경영진들, 이사들, 소액주주들이 그 명단을 내놓으라고 온갖 회유와 협박을 할 것 같아 도저히 제가 가지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R본부장님이 계속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주주 명단만 있으면 누구든지 일정분의 지분을 모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저 또한 들었습니다.

"현재로서 우리 회사의 최대 주주는 Q 씨입니다. 지분이 약 3~4% 정도 되니, 대주주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때도 전혀 주주명단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저라고 회유에 넘어가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쓸 때 없는 호기심의 위험을 이미 금단의 열매를 먹은 하와를 통해 보여주셨기 때문에 아예 들여다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기로 마음을 단단히 잡아먹었습니다.


"아 이분이 바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R본부장입니다."

소액주주와의 만남 며칠총무팀으로부터 O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주주 몇 분 들과 함께 나를 찾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O대표이사와 O대표가 데려온 Y부사장, 그리고 낯선 외부 손님들이 좁은 회의실에 잔뜩 모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상황이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제가 회의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Y부사장이 다짜고짜 저를 소개하기에 고개를 까딱 움직여 일단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비상대책위원장 R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돌아가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대부분 소액주주 등 회사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중에는 낯익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현재 가장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Q였습니다.

"R본부장도 알다시피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계시는 주주 여러분들과 함께 장시간 토의한 결과 앞으로의 경영은 우리들과 대주주이신 Q 씨가 공동으로 합의해서 행사할 것입니다.

그러니 비상대책위원장은 그렇게 아시고 회사직원들을 잘 다독거려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의 인사가 끝나자 Y부사장은 저에게 통보하듯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는 비상대책위원장입니다. 그것은 제가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전해주는 역할입니다.

이 사안은 비상대책위원회에게 물어보고 답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상황에 대하여 정확한 파악이 되지 않고, 어떻게 답변할지 몰라 일단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사안을 보류하겠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아니 지금 결정하면 되지 왜 시간을 끄는 거요? 지금 비상상황이라는 것 몰라요?”

다혈질인 Y부사장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 비상상황을 자초한 것이 누군데 그렇게 큰소리를 치십니까?

비상대책위원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비상대책위원회가 합의하여 결정하는 것, 이것은 비상대책위원회의 원칙입니다.

지금껏 원칙을 무시하고 여러분들이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해서 이 사태가 일어난 것 아닙니까?

아니 하루가 지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원칙을 지키자는데, 하루도 못 기다려요?”

저는 지금껏 저의 감정 특히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경영진인 O대표이사나 누구에게도 그렇게 대처해 왔는데, 평소 적을 만들지 않는다 라는 신조가 있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들에게 별로 화가 나거나 적대적인 마음이 여태껏 들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전략적으로 매우 유용하였는데, 저의 이러한 태도들이 저를 만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을 놓게 하고, 자발적으로 저를 찾아와 자신의 처지나 생각들을 털어놓고 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나 봅니다.

(물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저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해 먹으려고 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저로서는 저의 이러한 성향이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먼저 접근하고, 자신의 정보를 일부 들려주어서 저 나름대로 주위의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소스가 되었습니다.

그런 제가 그것도 외부 손님 앞에서 평소답지 않게 언성을 높이자 회의실내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습니다.

"네,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우리는 비상대책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러자 Q 씨 옆에 붙어있던 사람이 Q 씨에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눈치 빠르게 이렇게 말하며 한발 뒤로 물러났습니다.

'저 사람은 또 누굴까'

저는 대뜸 상황을 받아들이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 Q 씨 옆의 그 사람은 그렇게 저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놓았습니다.


"본부장님, 잘하셨습니다. 현재로서는 Q 씨가 대주주이긴 하지만 지분이 크지 않아요. 나머지 95%의 주주들이 버젓이 있는데 경영권을 가질 순 없죠."

제가 그 회의실을 자리를 나오고 나서 바로 U이사와 C팀장에게 이것을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의하자 U이사가 말했습니다.


"R본부장님 Q 씨가 본부장님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Q 씨가 우리 회사의 대주주이니 본부장님도 Q 씨를 한번 만나보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U이사는 다음 날 Q 씨가 저를 한번 만나보고자 한다며 저에게 권면하였습니다.

Q 씨를 만난 곳은 고급 일식식당이었고 따로 방을 예약해놓고 있었습니다.

제가 종업원의 안내로 방에 들어가자 Q 씨는 회의실에서 본 그 사람과 같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R본부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아닙니다. 제가 이런 쪽은 잘 몰라서 많이 헤매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전에 회사에서 보니까 딱 부러지게 말씀하시던데요. 저는 R본부장님이면 믿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의 옆에 있었던 사람이 웃으며 말을 했습니다.

"아 이분은 큰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D사장님이십니다. 왜 아시죠. OO동에 있는 전통음식점?"

"아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있네요? 제 아들 돌잔치를 거기서 했는데?"

인연이라는 표현이 서로의 벽을 허물었는지 Q 역시 자신이 우리 회사에 투자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털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온 재산을 걸었는데 이런 사단이 났습니다."

이윽고 자신의 신세 한탄을 끝내고 D사장에 대하여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도 사업체를 운영한다지만 뭐 규모가 작아서 어디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니고... 반면 우리 D사장님은 체인점을 몇 개를 가지고 계시니 진짜 사업감각도 뛰어나시고...

우리도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고 내가 이 회사를 추천하여 D사장도 자본을 좀 넣었어요. D사장 우호지분까지 모으면 5%는 넘겨야 뭐라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나고 2차로 좋은 곳에 가자고 권유를 받았지만, 제가 술을 못하니 가봐야 서로 불편하실 듯하며 사양하고는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이때는 Q와 되도록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한 것은 비록 그가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우호지분을 포함하여 겨우 5% 정도를 가지고 있어서, 나머지 95%를 가진 소액주주들이 실제적인 회사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사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Q는 현재 적은 지분율과는 달리 실제적으로는 이번 사태의 key maker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태가 정글 같은 혼란 속으로 치달아 가는 동안 점차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면 Q를 동지로도 적으로도 두지 않았던 저의 중립적인 태도가 역설적이게도 나중에는 사태를 반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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