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존엄에 대한 요구와 분노의 정치에 대하여

by 투싼박

책소개

한국에서는 MBTI 성격검사가 굉장히 유행이었던 때가 있다. 한참 많은 인기가 있었을 때보다는 조금 누그러든 것 같지만 여전히 MBTI는 인기가 있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꺼내기 쉬운 주제가 상대방의 MBTI 유형을 물어보는 것이며 자기 자신도 하나의 MBTI를 밝히며 대화를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MBTI 성격검사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 중에는 아마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서 자신을 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 즉 자아(自我)로 현대 사회에서 본인만의 자아를 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책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자아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 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정치 발전과 함께 현재 겪는 많은 정치 문제들을 자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9788947545815.jpg 프랜시스 후쿠야마 저자(글) • 이수경 번역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4월 20일



정체성의 생성

책 속에서 설명하는 자아의 형성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영혼을 구성하는 요소로 세 가지를 꼽는다. 욕구와 이성 그리고 thymos (투모스)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으로 '격정(기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다. 우리가 어떤 금지된 행동을 하거나 스스로의 내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 안에서 투모스가 일어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이와 비슷한 단어를 가져오자면 '명예'라고 할 수 있겠다. 욕구를 우선으로 하는 상인이나 이성을 우선으로 하는 정치인들과는 달리 명예를 지키기 것에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군인과 연관이 깊다. 군인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욕구와 이성라기보다 분노와 자부심이 더 연관 깊을 것이다. 현대의 정체성의 개념은 이 투모스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투모스를 발생시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게는 해당 개인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내려진다. 만일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분노나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정체성을 타고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먼 옛날, 사람들은 한 곳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일을 물려받고, 자기 자신은 본인들의 아이를 낳아 물려받았던 일과 재산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이미 자신이 살아가며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었고 한정된 수의 친구나 이웃과 어울리며 평생 살아갔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원성이나 다양성, 선택권도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별다른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고뇌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근대화되기 시작하며 새로운 직업들이 많이 생겨났고 다양한 사회 계층이 출현했다. 여러 개혁에 의해 선택권에 자유가 생기며 자신이 원하면 종교도 살 곳도 정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점점 유의미해졌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너의 정체성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정체성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는 무엇을 잘하는지 찾기에 집중한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공통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정보를 간편히 공유할 수 있게 되며 동질감을 빠르고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하나의 그룹 정체성으로 발전되기가 더욱 쉬워졌다. 하지만 문제는 강해진 정체성만큼 이나 자신의 정체성을 헤치는 무엇인가 나타날 때 쉽게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분노하고 혐오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경제 성장으로 인한 꾸준한 인구수 상승과 함께 생산성 증가를 경험했다. 이 덕에 우리는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행운의 시기를 살아왔다. 쉽게 말해 먹고사는 문제는 이미 예전 문제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기후변화와 저성장 시대로 진입을 앞두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며 그 속에서 함께 서로의 자아를 비대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작아져 가는 틀 속에 각자의 자아를 욱여넣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원래 사람은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겼을 때의 박탈감에 더 민감하다. 이미 커져 버린 자아를 스스로 줄여야 하는 과정에서 박탈감을 느끼고 이것이 곧 분노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벌들이 집을 지을 때 원래의 모양은 둥근 원형이다. 그 후에 벌들이 벌집 위에서 일을 하며 발생한 열에 의해 벌집들은 팽창하게 되며 벌집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며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그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육각형이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는 각자의 자아가 팽창하며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려다 보니 서로에게 각을 세우게 되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하나의 벌집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결론

혐오라는 감정은 우리가 옳은 결정을 내리는 데 기준이 될 수 없다. 많은 민족주의가 상대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여 무자비한 살육의 결과를 도출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간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번영할 수 있던 던 것은 우리가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인간다움'이 무엇일까? 협력과 타협을 통해 이성적이고 포괄적인 도덕적인 선택을 결정하고 시행했던 것이다. 힘의 논리고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고 서로의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누가 맞는지 제로섬을 싸움을 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것만을 지키기 위해 분노하며 상대를 혐오하는 것을 경계하고 '인간다움'에 더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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