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알았던 한 인간의 고백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책은 한 사람의 진실된 고백으로 시작한다. 어떤 인생을 지나왔길래 첫마디부터 자신의 생이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자신의 과오를 직시함은 물론, 그 잘못에 대해 스스로 엄격하게 반성할 때만 나올 수 있는 고백이다. 대개 우리는 자각하는 이상으로 자신을 사랑하기에, 실수를 쉽게 합리화하거나 변명을 찾아 책임을 면하려 한다. 그러나 주인공 요조는 처음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온전히 짊어진다. 그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은 인간 사회의 위선과 부적응을 겪으며 파멸해 가는 한 남자의 내면을 처절하게 묘사한 일본 근대 문학의 고전이다. 주인공 오버 요조는 타인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감추기 위해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평생을 살아가지만, 거듭되는 좌절과 타락 속에서 결국 스스로를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존재'로 규정하게 된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깊게 투영된 이 작품은 개인의 소외와 실존적 고독을 냉철한 문체로 담아내어, 오늘날까지도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인간 세계에 편입하기 위한 처절한 위장 : 익살
요조는 어릴 때부터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 속이고,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예의를 차리는 '사회적 위선'에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그는 남들이 다르다는 이질감을 깨닫고, 본연 모습으로는 인간 사회에 섞일 수 없음을 직감한다.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조가 선택한 것이 바로 '익살'이다. 스스로 '웃기는 놈'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본심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고 그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요조의 전략은 맞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재밌는 아이로 인식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위장인 '익살'이 동급생 친구 다케이치에 의해 들통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꿰뚫는 누군가가 주변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다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인간은 감정을 공유하기를 원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본래 웃음은 행복과 기쁨을 표현하는 에너지이며 주변을 밝게 만든다. 하지만 요조의 익살은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회피형 웃음'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순간에도 가벼운 장난으로 상황을 넘겨버리는 이 선택은 결국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를 앗아간다.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태도가 고착될 때, 인간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게 된다.
진정한 어른의 역할
요조의 아버지는 정기적으로 도쿄에 일을 보러 다녔고, 갈 때마다 선물 목록을 적곤 했다. 아버지가 제안한 '사자춤 가면'은 요조가 전혀 원치 않는 것이었지만, 요조는 아버지의 불쾌한 내색을 맞닥뜨리고 대신 밤에 몰래 수첩을 수정해 아버지를 기쁘게 한다. 이 지점에서 요조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관철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이와 대조적인 어른, 박동훈이 등장한다. 박동훈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멀어지려는 이지안을 향해 오히려 따끔하게 꾸짖는다. 그는 인생의 선배로서 지안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요조의 아버지 역시 자식이 자신의 기대를 맞추는 것에 만족하기보다, 요조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따끔한 충고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마치며
소설을 읽으며 느낀 감정은 연민과 동질감이었다. 요조의 불행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 역시 불편한 자리일수록 더 많이 웃고, 돌아오는 길에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수록 관계에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소설의 끝에서 마담은 요조를 이렇게 기억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조는 아주 솔직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안 마시면... 아니, 마셔도... 하나님처럼 착한 아이였어요."
이는 요조가 스스로 내린 '인간 실격'이라는 판결에 대한 세상의 따뜻한 반론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자존감을 잃었을지라도, 누군가에게 당신은 여전히 선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