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와 잘 살기...
제17편 나는 김밥을 좋아한다.
오늘은 아내의 언니와 동생 즉 처형내와 처제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김대건 신부님의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아침 6시 30분기상... 아침 먹을 것과 산행 음식용 김밥을 싸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떤다.
총원 5명...아침 식사용 2줄씩.. 점심도 2줄씩.. 총합 20줄 김밥 말기..
아내와 처형은 김밥은 맛은 있는데 너무 번거롭지 않은가?..하며 나의 노동에 대하여 안쓰러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나는 김밥싸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한다.
재료 준비 과정도 즐겁고.. 김밥에 사용될 밥을 막 지어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을 풀 때 풍겨오는 밥내.. 정말 향긋한 밥내를 맞는 것이 정말 좋다.
내가 만드는 김밥의 재료는 김밥 속재료의 지존인 노란무, 그리고 식감과 짭조름한 맛이 좋아 나의 최애 식재료 중 하나인 우엉, 물에 데쳐서 고소한 참기름으로 살짝 간을 본 시금치, 펜에 기름을 두르고 순을 죽인 당근채, 두툼한 계란 지단, 살짝 볶은 오이와 게맛살, 그리고 햄 요렇게 8가지가 들어간다.
나는 밥은 밥맛을 있는 그대로 나게 해야 김밥의 맛이 더욱 좋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밥에는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기 종류도 김밥이 식으면 고기 잡내가 나서 N0... 특히 깻잎은 절대로 사양한다. 깻잎은 자기 혼자 너무 도두라지게 향을 낸다..그래서 완전 No..
재료 만들기 시작.
첫 번째 두툼한 계란 지단만들기.. 보통 김밥 10줄에 계란 7개를 풀어 만든다. 계란 지단은 불조절이 관건이다. 너무 급하게 익히면 겉이 타므로 노릇노릇 익도록 약한불에 오랜시간 동안 익혀준다.
계란물을 펜에 부어 올려 놓고 지단이 완성될 때까지 당근 채를 썰고, 오이를 길이 방향으로 노란무보다 조금 두껍게 잘라주는 등 재료 준비를 해 놓는다.
계란 지단이 다 만들어졌으면 오이..당근채..게맛살..햄 순으로 기름 또는 물을 살짝 부어 볶거나 익혀주고 노란무와 우엉은 너무 짜지 않도록 흐르는 물에 씻고 물기를 제거하면 모든 재료 준비는 끝...
음악가들이 몇 개의 음계를 요리조리 짝을 맞추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듯이... 미술가들이 몇 가지 색을 이용하여 멋들어진 그림을 그려 내듯이... 각기 다른 색상과 맛을 가진 음식들을 이용하여 김밥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가히 어느 예술가와 다를 바 없이 멋지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행위라는 생각이다. 특히 김밥을 먹기 위해 한입 크기로 잘랐을 때 보이는 김밥의 단면 형상.... 외부는 검은색의 김이 쌓여져 있고 바로 안쪽으로 흰밥과 붉은 당근이 둥글게 감싸고 있으며 내부는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어울려진 재료들의 조화로운 멋스러움이 있는 김밥을 만들고 형상을 보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게 만든다.
이제 자리에 앉아서 김밥을 싸 볼까...이때가 엄청 흥분된다.
일회용 장갑을 양손에 끼고 우선 참기름이 묻어있는 시금치를 주물럭 주물럭 거리며 일회용 장갑에 참기름을 묻혀준다. 그래야 김밥을 말 때 밥알 등이 잘 달라붙지를 않기 때문이다.
김밥은 말았을 때 직경이 4센티미터 정도가 가장 알맞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고슬고슬한 밥은 너무 많지 않게 반주먹 가량 집어서 김에 턱하고 붙여서 김밥말이에 올린다.
그리곤 밥을 조금 눌러서 쫙-펴주고... 그 위에 순이 죽을 정도로 볶아준 당근채를 밥위에 골고루 깔아준다. 그 다음에는 속 재료들을 적절하게 배열하는데 나는 김을 말기 시작하는 앞부분에 노란무를 배치하고 제일 바깥쪽에는 오이를 놓는다. 이렇게 하면 김밥을 말 때 잘 말려지는 것 같고 김밥을 씹을 때 느끼는 식감도 좋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재료들은 순서에 상관없이 올려 놓고 마직막으로 시금치를 큰 것은 한 개 작은 것은 두 개를 가지런히 깔려 있는 재료들 위에 올려 놓으면 재료 배치는 끝..
이제는 김말이를 이용한 김밥말기.. 되도록 손에 힘을 꾹꾹 주면서 말기를 한다. 그래야 김밥을 잘라서 먹을 때 속재료가 빠지지가 않는다.
만약 김밥을 먹기위해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는데 노란무가 아니면 계란 지단이 쏙- 빠져버린다면...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다.
김밥을 도르르 말아서 피라밋 형태로 쌓아놓고 보면 이것 또한 참이쁘다는 생각이다.
피라미드 형태로 탑처럼 쌓여있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김밥...양옆으로 노란무와 시금치...오이와 계란 지단이 삐죽삐죽 튀어 나온 김밥의 모습...
드디어 20줄 김밥말이 끝..
이제는 김밥을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썰기.. 우선 칼을 숫돌에 날이 바짝 서도록 슥-슥 갈아주고.. 칼날 양옆은 기름을 약간 먹인 키친타월로 슥- 닦아준다.
도마위에 제일 먼저 싼 김밥을 올려놓고 정확히 1.5센티미터 크기로 잘라 준다. 김밥은 너무 얇게 먹어도 또는 너무 두껍게 먹어도 김밥의 제맛을 느낄 수 없다. 김밥은 1.5센티미터 크기였을 때 김과 밥맛 그리고 속재료들의 각기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의 어울림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날이 제대로 선 칼을 잡고 김밥을 썰때의 손맛은 그림속 용에 마지막 눈알을 그려 놓음으로써 완성된다는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과 같이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슥-삭하며 칼이 지나가면 군더더기 없이 김밥이 잘리어 깔끔한 독립적 개체가 되게 하는 느낌이 좋다. 혹여나 김밥을 먹기 위해 한 개를 들었는데 김밥의 김이 완벽하게 잘리지 않아서 두 개가 딸려져 올라 온다면....그래서 말아놓은 김밥이 풀어진다면.. 정말 싫은 상황이다.
김밥을 자르기 시작하면 내 주위로 네명의 눈동자 8개가 집중된다.
맨 먼저 김밥 꽁지를 먹기 위함이다.
반듯하게 썰어 놓은 한입 크기의 이쁜 김밥 보다는 김밥 내부 속재료가 둘쑥날쑥 제멋대로인 꽁지를 먹기 위해 쟁탈전을 벌인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어딜감히... 김밥 꽁지는 김밥을 만든 세프의 몫이 아닌가...
우리는 큰 접시에 산처럼 쌓여 있는 김밥을 개눈 감추듯이 먹고는 김대건 신부님의 순례길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