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군대 생활이야기
제1편 라떼의 공병대는....
#1. 지뢰병에서 목공으로
저는 지뢰병과를 받고 포천 영중면의 삼팔휴게소 근처 공병대대로 전입을 명받았습니다.
자대배치 후 조립교 중대인 3중대로 배치되었고 배치 된 첫날 개인신상에 대해서 작성을 하였습니다.
부모형제, 출신학교, 자격증 등등등...
인사계님은 우리들의 개인신상서를 쭉 흩어보시더니 저를 부르시는 겁니다.
“이봐 왕이병.. 자네 톱질할 줄 아나”
저는 공업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으니 당연히 톱질을 할 줄 알아서
“예 톱질 할 수 있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좋아 그럼.. 이걸로 근무를 슬 때 발시럽지 않도록 발판을 만들어 봐라”
하며 약 1미터 정도의 퍼바이퍼(가로, 세로 10센티미터) 나무를 던져주셨습니다.
저는 하룻동안 녹슨 톱하나와 창고 옆에 뒹굴어 다니던 합판과 못을 주어서 발판을 만들어 인사계님에 보여주었고 인사계님은 제가 만든 작품이 흡족하였는지 “왕이병 오늘부터 목공이다”하셔서 그날부터 지뢰병에서 3중대 목공이 되어 제대할 때 까지 “왕목공”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목공은 모든일의 기본이다보니 할 일도 많았지만 덕분에 군생활 동안 보통 2번 많게는 3번의 유격훈련을 모두 면제받게 되었고 군생활중 딱 한번 있었던 백킬로 행군도 면하게 되었지요. 더구나 요새 전원주택으로 이사 와서는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저의 톱과 망치, 삽을 다루는 신들린 모습에 우리 와이프 눈에서 연신 하트 뿅뿅 발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2 공병대와 삽질
공병대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삽질입니다.
5톤 덤프트럭에 모래와 자갈을 실으러 강가에 가게 되면 4인 1조로 딱 1시간이면 한차를 가득 싣습니다.
이등병들은 모래를 삽으로 퍼서 던지면 모래가 중앙부위 조금 뭉친 것 외에는 나머지는 주위에 펴져서 날리는데 일병이상들은 참 신기하게도 삽 모양 그대로 덤프트럭 짐칸에 안착을 합니다.
이등병들은 한삽푸고 고개들고 모래가 잘 떨어졌나 보는데 일병이상은 첫삽이 날아간 위치를 한번 보고는 그 다음부터는 그 자세 그대로 딱 그만큼의 모습으로 삽질을 계속 합니다. 당연히 이등병이 한삽 뜰 때 일병이상은 다섯삽 이상을 뜹니다.
이때부터 이등병들은 수난을 겪습니다. 천삽뜨고 허리펴기, 자갈위에 머리대기와 두손모아 대기, 삽의 평평한 면으로 궁뎅이를 몇 번 마사지를 받게 되고 삽질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삽손잡이를 오른손으로 튕기는 기술을 연마하게 됩니다. 정확히 네달이나 달섯달이 지나면 삽질의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바닥 콘크리트 또는 슬라브 콘크리트를 치게 되면 작업이 마무리될 때 까지 밤을 세워서라도 끝내야 합니다.
콘크리트 치는 범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보통 11명이 조를 이루어 공사가 이루어짐니다.
최고막내 이등병 2명 모래질통, 다음 이등병 2명 자갈, 모래퍼주는 초임 일병 한명, 자갈퍼주는 무르익은 일병, 그리고 상병이상 병장 4-6명 콘크리트비비기, 완전말년 물당번
언뜻 질통 담당이 제일 힘들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제일 쉽고 그다음이 모래, 자갈 퍼주는 일병순이며, 콘크리트 비비는 상병이상이 제일 힘듬니다.
콘크리트 비비는 것을 힘으로 만 하면 허리가 나갑니다.
삽질의 최고의 경지인 허벅지 안쪽으로 삽질하기가 가능해야 콘크리트 비비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콘크리트 비비기는 시멘트, 모래, 자갈을 붓고 대충 섞은 다음에 가운데를 한라산의 백록담 마냥 물을 부을 수 있도록 움푹 들어간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럼 물당번인 최고 왕고참이 물통을 들고 적당량의 물을 부어주면 양 옆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빠른 속도로 비벼줘야 콘크리트 물이 세어나가지 않게 되어 질이 좋은 콘크르트가 비벼지게 됩니다. 이때 양옆에서 허벅지를 이용한 삽질하는 모습은 가히 유명한 무영수들의 춤사위를 보는 듯 하였습니다.
“라떼의 공병대”는 일의 분담에 있어 나름 힘듬에 의한 질서의 철학이 있었고 계급이 낮은 병사들이 바라보는 상병이나 병장들은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만능의 재주꾼들이었습니다.
#3 공병대 FTP 훈련
공병대의 FTP 훈련은 같은 군단의 공병대들이 자기 대대의 이름을 걸고 경연을 벌이는 훈련입니다.
각 공병부대들에게 일정한 공간이 배당되고 그 곳에는 취사장을 비롯하여 중대본부 그리고 2인 1조의 병사들이 A텐트를 칠 수 있는 4각으로 만들어진 콘크리트가 있으며 맨 앞에는 중대원들이 도열할 수 있는 약간의 연병장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 열과 오를 맞추어 A텐트를 치고 먹고 자며 약 한달간 훈련을 하며 평가를 받게 됩니다.
A텐트를 다 치고 나서 휘- 둘러보면 이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참 기가 막히게 아름답게 보입니다. 텐트를 치기 전 텐트의 천을 보면 육이오때 쓰던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낡고 볼 품이 없는데 빛바랜 군청색의 텐트 두장을 역어서 모양을 잡고 약 40여동을 앞, 뒤, 옆 그리고 대각선으로 각을 맞추어 치게 되면 완전 작품이 나옵니다. 어스름한 초저녁 해넘이를 등지고 쳐다보면 그때도 그랬었지만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해 보면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는 것 마냥 코 끝이 찡하는 감동의 감정을 느낍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군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경례를 악악되며 하게됩니다. 우리의 경례 구호는 “통일” 인데 마구 악을 써서 하게 되면 그냥 “통-엉...통--엉”소리만 납니다.
특히 옆의 백골 공병부대는 경례 구호가 “백골”인데 팔십여명의 젊은 혈기 팔십여명이 악을 쓰게 되면 마치 “개골개골” 하는 냥이 초여름의 논두렁에 있는 개구리 밭에 있는 듯 하여 웃지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FTP 훈련기간에는 중장비를 이용하는 훈련 자체도 육체를 힘들게 하고 긴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훈련이라 자칫 대형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관계로 군기가 엄청납니다.
공병들의 모든 훈련을 이때 검증을 받게 되는데 다리 폭파시 설치하는 조립교, 탱크를 물에서 옮기는 중문교, 작은 차를 옮기는 경문교, 사람이 이동하는 도보교, 목교 등의 도하수단을 설치하는 훈련과 폭파, 지뢰매설, 철조망 설치, 사격, 십킬로 완전군장 구보 등을 합니다.
우리 중대는 실제 다리위에서 조립교를 놓는 부대이니 다리위의 협소한 곳이 아닌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땅에서 구축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처럼 아주 쉽게 합니다.
하지만 중문교, 경문교, 도보교는 물에서 하는 훈련이라 3월의 쌀쌀한 날씨에는 아주 죽을 맛입니다.
처음에는 옷이 물에 젖을까봐 물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으면 바로 “뒤로 취침”의 구령이 떨어지고 약 30분간을 물속에서 뒹글고 나야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합니다.
도하훈련시에는 하루종일 물속에서 삽니다. 그래서 저녁 무렵이 되면 손이고 발이고 사오정의 피부 마냥 쭈글쭈글하게 변해 있고, 간혹 실린더를 끼고 빠지지 않도록 실린더 뒷부분에 핀을 끼우는데 그 핀을 분실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럴 경우 찾을때까지 물속에 손을 더듬으며 찾게 되고 이때 제 것을 찾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몇 년이고 물속에서 있었지는 붉게 물든 녹슨 핀이 건져지기도 하는데 어떻게든 개수만 맞으면 상황은 끝납니다.
FTP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저녁에 이루어집니다.
군기잡는다며 그렇지 않아도 적게 배식되는 잔반을 반으로 줄인 저녁을 먹고 정리정돈이 어느정도 되면 “세면집합”을 합니다. 처음에는 훈련이 힘들어서 단체로 목욕을 시켜주나 하며 졸졸 쫓아 갔더니 이등병 저쪽 끝에 집합 그리고 일병 이쪽 하며 일, 이병을 집합시키고는 나머지 상병과 병장 초봉들은 왕고참 들이 곡갱이 자루를 질질 끌면서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아주 한참 동안 묵직한 떡매치는 소리를 나게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 이병, 일병 들은 선착순으로 몸을 풀고 머리박기, 깍지끼고 엎드리기 등 갖은 신묘한 행동으로 고된 훈련에 필요한 “악” 키워줍니다.
#4 공병대 공사
저는 중대 목공인 관계로 군 생활의 반 이상을 개인적으로 또는 한 소대 단위로 파견 생활을 하였습니다.
갓 일병을 달았을 때 우리 중대는 전방 지역의 강가에 북으로부터 남침시 저지할 수 있도록 석축을 쌓는 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소대 11명과 장비를 운용하는 본부중대 4명이 돌을 채취하는 일을 맡게 되어 철원근방의 계곡으로 크레인, 포크레인, 트럭 2대와 함께 들어갔습니다.
때는 7월이라 계곡에 들어가니 완전 피서를 온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피서온 느낌도 잠시 고참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눈치를 챘는지 바로 집합을 시킵니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선착순과 갖은 기합들로 “여기는 피서지가 아닌 군대다” 라는 것이 머리와 가슴속에 각인되도록 뺑뺑이를 돌립니다.
이번 작업은 집채만한 돌을 와이어로 묶어서 크레인으로 들어 트럭 짐칸에 실어서 보내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돌을 찾고 쇠지렛대를 이용하여 와이어를 끼울 수 있는 틈을 만들고 그런 틈에 쇠 와이어를 감아서 크레인으로 들어 5톤 트럭 짐칸에 싣어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와이어가 바위에서 풀어져 바위가 떨어진다 던가 와이어가 쇠 종류이다 보니 크레인으로 와이어 줄을 들다가 손이 잘못끼이면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작업 중에는 무척 예민해지고 신경이 쓰이는 작업인 것입니다. 그러니 고참들은 항시 긴장을 느추지 않도록 군기를 잡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작업은 오전에 5톤 트럭에 탑재할 수 있는 집채만한 돌 2개와 오후 2개를 실어 보내면 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쇠지렛대 운용하는 방법과 와이어를 거는 방법을 잘 몰라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하루이틀이 지나면서 조금 익숙해지니 바로바로 일이 진행이 되어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80년대의 군대 거기다 포천 끝트머리에 있는 공병대에는 서울 병력보다는 시골 깡촌에서온 병력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온갖 약초나 식용버섯, 나물종류에 도통한 산속 생활에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넘쳤났습니다. 그중 두명을 착출하여 기상과 함께 산을 뒤지며 더덕, 도라지, 나물, 각종 버섯 등을 채취하게 하였고 덕분에 우리는 식사 시간마다 미식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더덕이나 도라지를 많이 채취하였을 때는 부식 수령하러가는 길에 근처의 양조장에 들러 더덕과 도라지를 막걸리와 물물교환을 하여 토요일 저녁에는 회식을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공병대는 공사나가서 비가 오면 쉬었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쉬었습니다. 고참들도 이때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버려 둡니다.
이때 편지도 쓰고, 텐트용 막사에 또는 나무에 돌위에 물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멍때리는 고즉넉함을 즐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비오는 날이면 취사할 때 사용하는 큰 솥뚜껑을 뒤집은 다음 갖은 나물과 버섯을 섞어서 한 대여섯은 한꺼번에 먹을 만큼 큰 부침개를 부침니다.
이때 부침개를 먹는 맛도 좋지만 쏴-하는 비내리는 소리와 여러 사물에 떨어져서 각기 다르게 내는 빗소리...그리고 부침개가 기름에 익어가는 지지직 소리.. 무엇하나 버릴 것이 없는 훌륭한 소리의 향연을 듣는 기쁨이 한 없이 좋아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오는 날이면 우리 텐트 막사가 자리한 곳의 맞은편 자그마한 동산에서 보병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간혹 보게됩니다.
소대장이 “돌격 앞으로” 라는 명령을 했는지 왼손으로는 총을 거머지고 오른손으로는 총열을 두드리며 입으로 “따따당 따따당” 하며 뛰어오르는 모습을 봅니다. 같은 군인의 입장에서 주륵주륵 내리는 빗속에서 뛰어 오르다가 넘어지고, 구르는 모습을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도 하지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입으로는 “따따당 따따당”하며 연방 총소리를 내며 뛰는 장면이 뭔가 코메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여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기억 한편에서 “쿡” 하게 고개 숙여 웃게 만듭니다.
“라떼의 공병대”에서의 생활은 누구나 겪는 군인으로써의 훈련에 대한 고생스러운 생활도 있었지만 그 시대의 공병대라면 당연히 했었던 도로나 축벽 공사, 위병소나 휴게소 공사 등을 하며 그 시대를 살아온 젊은 청춘의 군인만이 가질 수 있는 낭만도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