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와 잘 살기...

제40편 추석명절을 화목하게 보내기

by 이and왕

며칠 있으면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추석이다.

이런 명절이 오면 아직 까지는 형제자매 또는 친인척들이 모이게 된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자매 또는 부모님을 만나게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자리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일부는 한바탕 고성이 오가고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하는 다짐을 할 정도로 난리가 나는 가족 모임도 있다.

이런 난리가 나는 상황에 대해서 지인들로부터 듣게 되면 대부분이 “지난 과거”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 된다는 경우를 많이 듣게 된다.


우리는 하루를 살던 백 년을 살던 지난 과거를 지니고 있다.

지난 과거는 당연하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과거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보면 대부분은 자신 위주로 아주 편협되게 기억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형제자매들이 모여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현재의 불만스러운 자신의 모습은 과거 부모로부터의 훈육에 대한 문제로 야기되었다거나 또는 특정 형제나 자매가 자신에게 가한 행위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신은 실패자가 되었다고 하소연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의 다툼은 자신이 부모나 형제를 위해 행한 사항에 대해 기억을 하고 이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형태인데 자신이 가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왜 이러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가? 하며 따져서 묻게 되며 “너만 그랬냐 나도 그랬다”의 형태로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 화목해야 될 자리가 난장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모의 훈육은 어떠한 형태든 대부분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이루어진다.”하고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건 당연한 것 아냐” 하며 “나도 그런 건 당연하게 알지” 한다.

그럼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데 까지만 생각을 하면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텐데....


부모의 훈육을 크게 넓게 보면 부모의 입장에 대해서 이해가 당연히 되는데 이걸 자신의 위치에서 부분적으로 쪼개어 재해석하여 기억 속에다 집어넣게 되면 대부분은 “원망”과 “탄식”의 밑받침이 되어 독이 잔뜩 섞여서 “지랄”을 떨게 된다.

“지랄”을 떨 때 생각해 보자.

우리들이 우리 들네들의 부모들처럼 자식들을 위해 헌신을 한 것만큼 우리가 부모님에게 헌신을 한 적이 있는가를...

“지랄”을 떨 만큼 내가 열심히 살았는가를...

그리고 “지랄”를 떨기 전에 혹시 자신의 주위에 앉아 있는 가족이 자신처럼 “지랄”을 떨게 되면 이를 보고 자신은 어떤 생각을 할까.. 를 하지만 명절만 되면 습관적으로 “지랄”을 떠는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 조차를 하지 못한다.

만약 다른 가족이 자신과 같은 이유로 “지랄”을 떨면 제일 먼저 화를 내는 당사자가 매번 지랄을 떠는 “지랄자”다.

그래서 “지랄”을 떠는 사람은 항상 “지랄”만 떤다.

부모나 형제자매로부터 무언가를 받게 되면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부모니까.. 또는 형제자매니까.

그런데 이 사항에 대해서도 “지랄”을 떠는 사람들은 참 우스꽝스럽게도 자신들이 행한 것에 대해서만 기억을 한다.

가족으로서 한 울타리 안에 살게 되면 너무나 당연하게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부모에 의존하여 먹고 자며 입는 것을 받는다.

대체적으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위해 몸을 바쳐 헌신을 한다.

부모들은 자신이 굻은 한이 있어도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자신도 먹어야 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먹는 것을 포기한다.

부모들은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서는 한푼이 아까워 아끼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는 가격에 상관없이 아끼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나도 지금은 부모가 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때 먹을 것이 정말 부족했을 때 부모들도 사람인지라 배가 몹시 곱팠을 것이고 먹을 것이 눈앞에 있지만 자식들을 위해 꾹 참아야 할 때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부모들도 시장도 가고 결혼식장도 다니고 친구들도 만났을 텐데 자신의 해진 옷을 보며 얼마나 창피했을 것이며 또한 이쁜 새 옷을 얼마나 입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형제자매에 있어서도 세상에 먼저 태어나는 맏이는 가장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떠한 형태로든 가족을 위한 헌신을 한다. 예를 들면 동생들 옷 챙겨주기, 밥 해주기, 빨래 등등등..

이에 더해서 부모님의 살림살이가 팍팍한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육의 해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체적으로 맏이들은 포기와 희생에 익숙한 면이 있다.

또한, 돈을 버는 사회생활을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상적으로 맏이의 월급은 가족 공통의 돈이라고 생각들을 한다.

집과 관련된 각종 비용, 동생들 학비, 용돈 등등등..

맏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맏이들은 “집이 잘살아야 된다”는 공동체 관념이 강한 것이 보통이다.

시잔이 지나서 동생들은 부모와 맏이의 헌신 속에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부모도 벌고, 맏이도 벌고, 동생들도 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때부터 경제관념이 지극히 독립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너도 벌고 나도 버니 이제부터는 서로 “주고받기 없기”가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동생들도 가족을 위한 “해주기”가 행해지는데 보통은 이때부터 기억의 꾸러미를 만들고 단단하게 다지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후 세월이 흘러 무슨 가족 모임이 있게 되면 무슨 일 있은가로 인해 서운한 일이 생기게 되면 이때 만들어 놓은 “해주기” 기억꾸러미를 풀어서 하나하나 따지게 된다.

지극히 해 준 것만 따진다.

따지려면 사회생활 이전의 기억도 되새김질해서 더하기 빼기를 잘 버무려서 따지던지 하지..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때는 “기억이 잘 안남” 또는 “용돈 정도 가지고 뭘”로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되면 맏이들은 억울한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맏이들은 억울하기보다는 동생들이 어느새 커서 자기 밥벌이를 하네 하며 흐뭇한 마음을 가지는 경향이 큰 것 같다.

맏이들은 참 속도 좋은 것 같다.

맏이는 동생들과 비교해서 희생하는 강도나 양상이 천지 차이다.

맏이의 희생은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 경우도 많다.

특히 여성이 맏이인 경우는 더한 것 같다.

고등교육의 기회 또는 원하지 않는 결혼 등등등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우리 세대(1970년대 이전 세대)에 여성으로서의 맏이는 참 힘든 삶을 산 경우가 많았다.


나는 맏이가 아니다. 그래서 맏이인 누나를 보면 “누나 정말 고마웠어”라는 말을 진심을 담아서 한다.


기억은 나도 하지만 당연하게 다른 사람들도 기억을 한다.

자신들의 기억이 백 프로 맞았으면 좋겠지만 그 기억은 자신의 성격과 이해력, 주위 상황, 기억력 외 무수히 많은 인자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 또한 이런 무수히 많은 인자의 영향을 받는 기억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모든 기억은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하고자 한다” 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에 의존하여 다툼이 일어나게 되면 자신만의 기억으로 다툼을 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존중"이 없는 한 상처만을 남길 뿐이다.

가족에 대한 지난 과거의 “감정의 기억”은 “그때는 고마웠어” 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추석에 부모님 만나면 또는 맏이를 만나게 되면 자신은 이들이 희생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자신도 이들처럼 희생을 하고 있나 또는 할 수 있나를 생각해 보자.


가족 모임에서 난리법석의 불씨 중 가장 큰 불씨는 “해주기”와 “인정받기”다.

만약 이로 인해 싸움이 자주 발생한다면 “해주기”를 하지 말자.

가족을 위해 “해주기”의 행위를 하게 되면 받는 가족은 무척 행복해진다. 또한 이러한 가족의 행복을 바라보게 되는 “해주기”를 행한 당사지도 덩달아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해주기”는 가족과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니 이것으로 끝이면 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