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편 어느날 찾아 온 개똥참외 -2화
어느날 찾아 온 개똥참외
처음 개똥참외가 우리 텃밭에 자리를 잡을 때는 아주 다소곳하게 그리고 눈치도 슬금슬금 보면서 고추나무 옆 고랑에 자리를 잡았었다.
그리고 적당하게 세를 뻗으며 보란 듯이 노란꽃망울을 몇 개 피워주기도 하면서 갖은 교태를 부리기도 하고 꽃망울 밑에는 콩알만한 열매도 달아서 잘 키우면 개똥참외를 먹을 수도 있다는 희망도 주었었다.
개똥참외의 덩굴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세를 뻗치며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여 이젠 고추나무보다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텃밭과 울타리 경계석으로 만든 돌담으로 까지 위세를 뻗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추나무 밑 고랑에 자리를 잡은 개똥참외는 돼지꼬리 마냥 돌돌말린 촉수같은 줄기를 고추나무에는 걸치지를 않고 있다.
텃밭 옆의 난간에는 칭칭감으며 올라타기도 하고 돌담을 여기저기를 엿보며 슬금슬금 영토를 확장을 하는데 고추나무에는 일체 접근을 안한다.
고추나무 밑에서 겨우 세들어사는 자신의 처지를 알기 때문일까? 여튼 고추나무가 개똥참외의 존재를 귀찮게 여기지 않도록 무척 조심하고 있구나 하는 모습이다.
어제 아내가 호박잎을 그럴싸하게 닮은 개똥참외의 이파리를 보며 “이 잎도 따서 호박잎처럼 싸먹을 수 있을까?” 하며 잎과 줄기를 만지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감싸안았다.
호박잎은 줄기나 잎을 만졌을 때 약간 잔털이 나 있지만 손을 확 뺄 정도의 감촉은 아니다. 하지만 개똥참외의 잎과 줄기를 만지는 촉감은 까칠한 잔털이 살을 콕 찌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기분 나뿐 감촉을 느끼게 만든다.
아내는 “이거 뭐야 왜이리 거세.. 이것 계속 이렇게 키워야 되나?” 하며 그렇지 않아도 슬금슬금 영토를 넓히고 있는 개똥참외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던 참에 잘 거렸다는 투로 아내가 항의조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한다.
“왜 이 정도 키웠으면 개똥참외 하나 정도는 따 먹어야 되지 않겠어?”
아내는 개똥참외의 의도치 않는 항거에 꽤 기분이 상했는지 곁 눈짓으로 개똥참외를 계속 째려보고 있다.
“봐봐... 이렇게 열매도....” 하며 참외잎을 뒤적뒤적 이며 열매를 찾아보는데 열매가 없다. 그럴싸한 열매가 하나도 안 보였다.
분명히 이주전에 콩알만한 열매를 매달고 있었는데 그러면 지금쯤이면 엄지손가락 만큼 컸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리저리 개똥참외 잎을 뒤적이며 찾아봐도 노란꽃만 여기저기 피어 있지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된거지?”
나는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눈으로 볼 정도의 열매는 당연하게 맺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열매가 안 보이는 것이다.
“그럼 처음 꽃을 피우며 데롱데롱 메달고 있었던 콩알만한 열매는 뭐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 듯 “기망”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난다.
개똥참외가 나를 속인건가?
나에게 꽃을 보여주고 콩알같은 열매를 보여주며 열매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주면서 “나를 잘 지켜주세요” 라는 기망의 메시지를 나에게 준 것인가?
내가 개똥참외에게 잘도 속은 것인가?
개똥참외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없지 없지”하며 단순하지만 명쾌한 경제관념을 상기시켜준다.
“봐-아 이 고추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한달간은 우리에게 맛있는 고추를 열어서 줄거야 그렇지.. 그런데 이 개똥참외는 말야 영양분만 쏙쏙 빨아먹고 우리한테 아무런 것을 주지 않잖아..그치.. 잎도 거칠고 그런데도 이 개똥참외를 키워야 돼?”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개똥참외는 우리가 키운 것은 아니다.
어느날 우리와는 상관없이 고추나무 옆의 비슴듬한 고랑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 싹을 틔우게 했고 그리고는 독한 청량고추나무 밑에서 눈치를 보며 스스로 커나간 것이다.
물론 밭의 주인은 우리부부이고 우리 부부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당장이라도 뿌리채 뽑혀서 한줌의 거름덩이가 될 수도 있는 처지이긴 하다.
조금전 열매를 찾겠다고 개똥참외 잎과 덩굴을 이리저리 밀치며 봤을 때 개똥참외로서의 구실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떡잎들은 새로운 줄기를 뻗기 위해 얼마나 용을 쎃는지 누렇게 변색된 모습이었다.
개똥참외는 나름 살아남기 위해 무척 애를 썼을 것이다.
개똥참외는 노란꽃망울을 피우며 누구나가 좋아하는 달콤한 열매를 잔뜩 메달아서 자신을 찾는 이에게 달콤한 열매를 먹게하고 그 열매 속에 있는 건강한 씨앗들이 널리 널리 퍼져서 내년 여름이면 자신을 꼭 닮은 개똥참외를 만들어 내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개똥참외는 비록 떡잎이 누렇게 썩어들어가는 아픔이 있어도 온힘을 다해서 새로운 노란꽃잎을 피우고 작은 열매를 매달고 있으며 아직도 씨앗을 품은 열매를 매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을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 고추나무와 개똥참외를 본다.
둘다 추운 겨울이 올 때까지 이대로 놔둘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튼실한 고추를 주는 고추나무를 위해 열매를 얻는 것은 가당치 않게 된 개똥참외를 뽑아낼 것인가
나는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