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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10. 2023

니들이 보릿고개를 알아?

Ppaarami’s Diary5 උගන්වන්නම්.

  나는 보릿고개에 대해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날 수업의 주제는 계절이었다. 4학년 학생들은 4년째 한국의 사계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장마가 오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온 강산이 물들고 겨울에는 눈이라는 게 내린다는 것을 학생들은 매 학기마다 들었을 것이다. 스리랑카에서는 볼 수 없는 눈이 어떤 것인지 사진과 설명만으로는 다 알 수 없을 텐데, 그런 게 있다는 걸 4년째 듣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이 학생들과 계절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고민됐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봄의 정서, 가을의 정취 같은 것에 대하여. 그러다 보릿고개까지 이야기가 뻗어나갔다. 봄에는 따뜻하고, 예쁜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새싹이 돋아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학생들에게 한국에는 추운 겨울이 있고, 춥기 때문에 겨우내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몇 개월동안이나 농사를 짓지 못했으므로 초봄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지만 수확을 하기 전까지는 나무뿌리를 파먹다 그마저 없으면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생들의 꽃 같은 얼굴이 똥을 본 듯 일그러졌다. 그 급진적인 변화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점점 심각하고 진지해지는 표정이 재밌어서 나는 몹시 활짝 웃으며 보릿고개를 설명했다. 우리 조상들은 봄에 굶어 죽었어요.... 파하하 웃음을 터뜨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랬다면 학생들이 나를 얼마나 무서워했을까.


  스리랑카에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매를 맺는 나무가 어디에나 있고, 그 나무가 열매를 맺는 데 필요한 충분한 해와 물이 언제나 있다. 이러한 기후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집 마당에서 열린 열매를 기꺼이 나누어주는 넉넉한 인심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 살면 굶어 죽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에 학생들은 그렇게 안타깝고도 무섭다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런 아이들 앞에서 나는 웃으며 보릿고개를 이야기했다. 조금만 덜 웃을 것을. 나는 얼마나 우습고 한심한 선생님인지.


한국어학과 학생들과의 수업 시간. 


스리랑카의 대학생들이 붓과 먹으로 한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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