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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13. 2023

바퀴 몇 센티까지 보고 오셨어요?

Ppaarami’s Diary6 바퀴벌레

8월 12일

 

  바퀴는 어디에나 있다. 백악기 이후 몇 차례의 대멸종에서도 살아남아 지구 어디에나 서식한다는 벌레다. 없을 수가 없다. 한국의 주거지에도 어쩌면 바퀴가 있었을 것이다. 바퀴가 있다는 사실은 특별할 게 없다. 바퀴를 봤을 때의 태도에 관해서라면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바퀴를 보면 마음껏 놀랄 수 있다. 소리를 질러도 되고 날뛰어도 된다. 그런 반응은 공감을 얻는다. 바퀴를 봤을 때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반응으로 받아들여진다. 때려잡은 무용담이건 정신적 데미지에 관한 호소이건, 바퀴와 마주친 사람의 심정에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한껏 목청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에서는 그럴 수 없다. 스리랑카에서 그렇게 하면 나만 뻘쭘해질 뿐이다.  

  공중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보았다고 치자. 나는 놀라서 굳거나 파르르 떨며 뒷걸음질 치거나 신음을 흘릴 것이다. 내가 그러는 동안 화장실 안에 있던 스리랑카 사랑들은 계속해서 볼일을 보거나 나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거나 바퀴를 힐긋 보고 제 갈길을 갈 것이다. 친절한 사람은 바퀴를 쫓아줄 수도 있다. 주변에 빗자루 같은 게 있다면 그것으로 쓸어낼 테고 아무것도 없다면 발로 툭 쳐서 멀리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나만 카오스 상태이겠지.     


  스리랑카에서는 바퀴에 대한 나의 감정은 공감을 받지 못한다. 집주인이나 주택 관리인에게 집에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응? 그게 왜?", "그래서?", "아, 그랬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마치 내가 "우리 집에 파리가 있어."라고 말했다는 듯이. 나는 그들의 반응이 몹시 실망스럽다. 그들은 나의 실망을 이해하지 못한다. 바퀴에 대한 반응은 현지인과 외지인을 구별 짓는다. 바퀴는 불쑥 나타나서 나를 뻔한 이방인으로 만든다. 나를 도드라지게 한다. 그래서 더 야속하고 얄밉고 징그럽고 무섭고 열받고 같이 살기 싫다. 


  크기는 좀 큰가. 스리랑카에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컴퓨터 마우스 크기의 바퀴벌레를 본 적이 있다. 함께 있던 어르신이 빗자루로 쫓아내는 것을 보면서도 설마 저게 벌레일까 싶었다. 차라리 다리 6개 달린 쥐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본 바퀴도 몸집이 상당했다. 크기가 숟가락 만했다. 찻숟가락 말고 밥 숟가락. 외출을 했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불을 켰는데 싱크대 앞에 검은 얼룩 같은 것이 있었다. 이 자식은 내가 들어왔는데 피하지도 않았다. 그와 나는 한동안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그 녀석이 먼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걸 보고 내가 놀라서 움찔했다. 나한테 다가오는 줄 알고 겁이 났다. 

  "내가 먼저 이 집에 살고 있었어. 좋게 보내줄 때 꺼져."

라고 말하면서 나에게로 저벅저벅 걸어올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다시 그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더욱 뚜렷해져 갔다. 그의 흔적이 집안 곳곳에서 발견됐다. 배설물과 알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소파와 테이블을 치우고 청소를 한다. 이따금 구석 어딘가에서 알집을 발견한다. 이 약아빠진 것이 소파 아래 바닥이 아니라 소파 천에 알을 매달아 놓기도 한다. 나는 소파에는 통 앉지를 않는다. 가끔 손님이 오면 침대 시트를 깔고 잠깐씩 앉는다. 배설물은 집안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를 집 밖으로 내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몸집으로는 웬만한 틈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거의 창문을 열지 않고, 열더라도 내가 창가에 지키고 있으며 5분을 넘기지 않고 닫는다. 내 집에 사는 바퀴벌레가 0이 되는 게 아니라 50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쇄국정책을 선택했다. 그런데도 이미 1이 아니라 + α 상태다. 이 집에 사는 건 좋으니 제발 내 눈에만 띄지 말기를.  



켈라니야에 있는 SPAR 매장 내부. 바퀴벌레 약, 모기 기피제, 나프탈렌 등 벌레 관련 용품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바퀴벌레 약은 생활필수품이다. 그것에게 질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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