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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16. 2023

미안한데, 바퀴벌레 타령을 조금 더 하겠습니다.

Ppaarami’s Diary7

8월 13일


  스리랑카에서도 일상은 별다를 게 없다. 일어나서 활동하고 잠든다.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일어나는 시간은 한국에서보다 약간 이르다. 여기서는 6시이지만, 한국은 9시 반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빨래를 한다. 아침에 빨래를 한다는 점은 한국에서와 다르다. 한국에서는 자는 동안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저녁에 빨래를 했다. 스리랑카에서 아침에 빨래를 하게 된 것은 낮동안의 햇볕이 아까워서이다. 쨍쨍한 햇볕에 뽀송하게 마른 옷을 입는 즐거움 때문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아침 식사를 한다. 한국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굳이 먹는다. 공복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위장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밖에서 커피를 마실 일이 별로 없다. 집에서 마시고 나가야 카페인 금단 증상을 예방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아침을 먹게 된 것이다. 빨래를 널고 세수를 하고, 모기 기피제를 잔뜩 뿌리고 출근을 한다. 퇴근길에는 1.5ml 용량의 생수 3병을 사서 집으로 온다. 생수로 갈증을 없애고 음식도 만들고 양치질도 한다. 수돗물이 나오지만 별로 마시고 싶지는 않다. 꼭 3병씩 산다. 4병은 들고 다니기에 너무 무거워서이다. 집에 오면 손을 씻고 정리정돈을 한다. 그리고 이른 시간에 저녁밥을 먹는다. 나는 씻고 나서 밥을 먹기보다는 밥을 먹고 나서 씻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빨리 씻고 싶어서 밥을 일찍 먹는다. 이렇게 하루의 루틴을 모두 챙기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모기장을 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시름이 사라진다.


  오늘도 저녁을 맛있게 먹고 마지막 루틴을 수행하기 위해 수건을 챙겨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을 틀고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샤워실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 보는 바선생이 나보다 먼저 샤워실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그것도 모르고 실례를.... 다음부터는 노크라도 하고 들어가야 하나. 나 못지않게 바선생도 크게 당황을 한 것 같았다. 자기는 그냥 향기로운 수채구멍 근처에 있었던 것뿐인데, 내가 불쑥 들어오더니 물을 틀어버린 것일 테다. 나는 나대로 평소와 다름없이 늘 하던 그 시간에 늘 하던 샤워를 혼자 하려던 것뿐인데 혼자 하는 게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그냥은 샤워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구나 벌거벗은 채로 바퀴벌레와 대치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나와 그는 잠시 서로의 전투력을 탐색했다. 그가 먼저 조금 움직였다. 선빵을 날릴 폼이었다. 그러나 샤워기 물줄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크지 못했다. 나는 기민하게 샤워실 문을 닫고 나왔다. 카메라와 약을 양손에 쥐고 심호흡을 했다. 그의 영정 사진을 찍어주고 약을 뿌렸다. 샤워실 문짝을 방패 삼아 몸을 가리고 팔을 길게 뻗어 바퀴벌레 퇴치 스프레이 반통 정도를 분사했다. 나에게는 그게 바츄카포고 화염방사기였다. 

  격렬한 결투 끝에 나는 살아남았다. 아드레날린이 확장시킨 혈관과 동공이 제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체를 수습했다. 약으로 범벅이 된 샤워실을 청소하고 샤워를 재개했다. 씻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누우면 이기고도 지는 것이므로 끝내 씻어서 일상을 지켰다. 

  바퀴는 언제든 갑작스레 내 등뒤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인생이 이렇게 쉽지 않다.  평화롭던 저녁시간을 송두리째 부숴버린 그 녀석이 편히 잠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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