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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17. 2023

스리랑카에서 새로 생긴 버릇들

Ppaarami’s Diary8 

8월 14일


1. 모기기피제를 농번기 작물에 농약 치듯 전신에 흠뻑 뿌린다.       


2. 손수건을 사용한다. 흐르는 땀을 휴지로는 감당할 수 없다.     


3. 선크림을 악착 같이 바른다. 선크림이 땀에 녹아 눈으로 스며들어 눈물을 흘릴지언정 일단 바른다. 바르면 확실히 피부가 덜 따갑다.     


4. 팔토시를 피부처럼 여긴다. 반팔을 입는 날은 반드시 착용한다. 어느 날엔가 한국말을 잘하는 스리랑카 사람이 대뜸 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중국인, 일본이 이냐고 묻지 않고 단번에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챈 이유를 물었다. 그는 팔토시를 가리켰다. 이런 거 하고 다니면 100% 한국사람이라나 뭐라나.      


5. 외출할 때 휴대폰, 카드, 차 키가 아니라 휴대폰, 잔돈, 우산을 챙긴다. 잔돈은 툭툭을 탈 때 필수다. 100루피짜리 지폐가 3장보다 적게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거스름돈을 주는 툭툭 기사도 있지만 잔돈이 없다며 안 주려고 하는 기사도 있어서 툭툭을 탈 때는 작은 돈을 준비하는 게 마음 건강에 좋다. 우산은 휴대폰만큼 중요한 생필품이다. 일기예보랄 것이 없고 비는 아무 때나 수시로 쏟아져 내린다. 보통은 오후에 온다. 가끔 이른 아침부터 세찬 비가 내리기도 한다. 그런 날은 “이렇게나 비가 오면 학교에 안 가도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 출근 시간이 되면 비가 그친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다시 온다. 퇴근 시간에 비가 오면 툭툭을 잡기가 너무 힘들고, 도로는 막혀있다. 그러나 퇴근길에는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집에 안 가도 되는 게 아닐까?”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 뭐가 됐든 다 전부 이겨내고 집으로 간다.      


6. 집에서 밥을 먹자마자 즉시 설거지를 한다. 음식 중에는 내 입맛에는 티도 안 나게 단 맛이 나는 음식이 많다. 벌레들은 단맛에 많이 민감하다. 그중에서도 개미는 정말로 부지런해서 단맛 나는 음식에 언제나 가장 먼저 도착한다. 밥을 먹는 데 사용한 그릇은 마지막 한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싱크대로 가져가야 한다. 마지막 한 입은 설거지를 하면서 씹고 넘기는 거다. 먹은 그릇만이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면서 사용한 그릇도 잘 관리해야 한다. 깨끗이 치우고 먹어야 하는데, 빨리 치우는 것도 중요하다. 치우는 동안 내가 먹을 음식을 벌레가 먼저 기미 하는 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바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었던가.     

7. 주방 싱크대, 화장실 수채 구멍, 신발 정리대 주변을 수시로 힐끗거린다. 모두 바퀴를 보았던 곳이다. 범인은 반드시 범죄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고 한다. 벌레들은 제가 머물렀던 곳을 기억할 것이다. 머무르는 것이 범죄는 아니다. 내 눈에 띈 것이 죄다. 정말이지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힐끗거리지 말고 정면 주시하면 제 갈길을 가는 게 더 좋은 방법일 텐데, 내 눈은 사주 경계를 멈추지 못한다. 마치 더부살이하는 아이가 눈치 보는 것처럼.     


8. 냄새나는 방귀를 뀌면 자책한다. 벌레들을 유혹했을까 봐서이다. 오- 이 근처에 맛집이 새로 생겼는가 보다~ 하면서 각종 벌레 군단이 몰려드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버스에서 내렸을 때 종종 몸이 가렵고 물린 자국이 있는데 그게 모기에게 물린 모양이 아닐 때가 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물었는지 알 수가 없을 때 불안이 커진다. 어떤 물린 자국은 하루이틀은 아무렇지 않다가 3일이 지나서부터 극심하게 가렵기도 하다. 붉은 점이 되어 꽤 오래 자국을 남기는 것들도 있다. 물린 흔적들이 몸 곳곳에 별자리를 그리고 있다. 한 번이라도 덜 물리고 싶어서 손을 자주 씻고 자주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런 나라서 샤워를 하고서 이불을 덥고 누워있다가 방귀를 뀌면 다시 씻어야 하나 고민된다.      


  이것이 남아시아의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생활 습관이다. 적응의 결과이다. 나는 이곳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강렬한 태양과 강력한 모기를 위해 항상 준비해 두는 생활필수품들. 모기 기피제와 알로에베라 겔, 그리고 선블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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