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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20. 2023

스리랑카에서 가장 무서운 것

Ppaarami’s Diary9  MOHINI

8월 17일


  스리랑카에는 모히니라는 귀신이 있다.

  모히니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으로 한 밤에 묘지에서 만날 수 있다.(물론 묘지가 아닌 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흰 옷을 입은 모히니는 아기를 안고 있다. 남자들에게 자신은 사리(전통 의상의 이름)를 고쳐 입어야 하니 아기를 잠깐 안고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남자가 아기를 안으면 사리 매무새를 고친다. 남자는 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여인의 눈이 붉다. 남자는 정신을 잃는다. 또는 여인이 사라진다. 어느 쪽이든 결국 남자는 공포 속에서 죽는다.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다. 아기를 떠넘기다니. 버릴 수도 없고 키우기도 무섭고. 퍽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자는 아기를 받아 든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게 될까. 무서워서 어떻게 그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아이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아이가 등장하지 않는 버전도 있다. 모히니는 남자에게 사소한 부탁을 한다고 한다.)


  스리랑카의 번개도 나는 좀 무서웠다. 하늘이 밝을 때도 번개가 치고 어두울 때도 치고 비가 오면서도 치고, 몇 시간이고 하늘이 번쩍거리기가 일쑤다. 가까이에서 번개가 치면 하늘이 두 쪽 날 것 같은 천둥도 같이 온다. 벼락이 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우르릉 쾅하고 번쩍 번개가 하면 정전이 되기도 한다. 혼자서 그런 오후를 보내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스리랑카에 와서 가장 소름이 끼쳤던 순간은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이었다. 스리랑카에 온 지 두 달이 안 된, 혼자 산 지 이 주 정도 되었을 때다. 이 주 가까이 비 구경도 못하고 매일 땀에 절어 살았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살기 위해 킹코코넛을 사서 마셨다. 땡볕아래서 한참이나 툭툭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정말 곤욕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제야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날은 집에 돌아왔을 때 어쩐지 기분이 싸했다. 침실 문을 열었는데 냉기가 혹! 온몸을 덮쳤다. 에어컨이 혼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와, 소름.... 

  에어컨을 몇 시간을 켜둔 건지. 스리랑카는 전기 요금이 비싸다. 에어컨을 펑펑 틀면 한 달 전기 요금이 10만 원도 나올 수 있다고 들었다. 월급 없이 소정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봉사단원에게 전기요금 10만 원은 말도 안 된다. 

열심히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 소음이 통장 잔고 마르는 소리로 들린다. 자책을 하며 에어컨을 껐다. 그러나 곧 다시 켤 수밖에 없다. 더우니까.

  한숨이 나온다. 속에서 난 천불은 에어컨으로는 꺼지지 않는다. 



 지금은 번개가 치는 풍경을 좋아한다. 벼락은 아직 조금 무섭지만 그 역시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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