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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22. 2023

적응과 굴복 사이 어디쯤

Ppaarami’s Diary10

  

8월 19일 


  적응이란, ‘지금부터 내가 이 부분은 용인하겠다. 받아들이겠다. 참아내겠다.’라는 결심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것이다. 이게 자유의지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별도리가 없어서 적응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적응의 대상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거나, 그 대상을 정복할 수 있다면 적응을 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힘 빼지 않고 순응을 하느냐, 격렬히 반항을 하다가 적응에 이르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패배 비슷하게 적응을 시작하면 몸이 나의 결심을 따라주기도 한다. 기특한 경우다.     


  스리랑카에 오자마자 모기 기피제를 사 모았다. 피부가 축축해질 정도로 기피제를 뿌려댔다. 이 더위에 긴소매 옷을 입고, 팔토시도 했다. 그러나 모기는 기피제를 기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옷 섬유도 뚫었다. 한 번 물 때 4~5방씩 물었다. 특공대냐고.... 주로 저녁 식사 시간에 하체 위주로 당했다.  왼쪽 복숭아뼈 주변으로 북두칠성이 새겨졌고, 양 무릎에 대칭하여 붉은 꽃이 활짝 피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모기에 물리면 몹시 아팠다. 가려운 게 아니라 통증이 있었다. 물린 곳이 쌔빨갛게 변했고 붓기도 심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모기 알레르기가 있는 거 아니냐, 댕기 모기에 물린 게 아니냐는 걱정도 많이 샀다. 그러나 30, 40방을 물려도 쇼크가 오거나 열이 오르지 않았다. 버물리를 늘  손에 쥐고 다니면서 물리면 냅다 발랐다. 그래 뭐, 모기가 있으면 물려야지 어쩌겠어라고 생각했다. 다른 도리가 없었으니까. 

  여전히 모기에 물리며 살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덜 물린다. 해가 지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 물리면 이 악물고 모른 척을 한다. 의식하면 더 가렵다. 버물리도 잘 안 바른다. 손톱을 바짝 잘라서 잠결에 물린 데를 긁을 수 없게 만들었다. 요즘은 물려도 덜 붓고 덜 가려운 것 같다.     


  최근에는 더위에도 적응하겠다고 결심했다. 더위에 대한 굴복 선언이기도 하다. 나는 좀처럼 더위를 타지 않는 여름형 인간이었다. 여름에도 꾸준히 긴 옷을 입고 다녔다. 장마철에는 스카프까지 두르고 다녔다. 에어컨 바람은 늘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더워 봐라, 내가 옷을 벗나’ 하며 삼복더위를 비웃었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서나 부릴 수 있는 호기였다. 

  적도 열대 기후의 더위는 레벨이 다르다. 온몸의 기운이, 체액이 증발하는 느낌이다. 감히 양산 없이 양달로 나갈 수 없다. 양달을 보고 있노라면 박소담 배우가 뱀파이어 역할을 위해 오디션을 볼 때 햇빛으로 달구어진 땅을 핥는 연기를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지금 저 땅을 혀로 핥으면 혀가 녹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혀부터 녹기 시작해 천천히 전신이 녹아 모래 바닥에 스며드는 상상을 한다. 그건 아주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다. 절을 구경하러 갔다가 발바닥이 지져지는 고통을 체험한 바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꽤 유명한 불교 사찰이 있다. 절에 들어갈 때는 긴치마나 바지를 입고 신발은 벗어야 한다. 응달 진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맡기고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모래 바닥이 펼쳐져 있다. 양달의 모래바닥. 뭐, 한여름 해변에서 걸어봤잖아?라고 생각하고, 아니 사실 별생각 없이 발을 디뎠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척추까지 뜨거움이 전해진다. 저마다 100℃로 달구어진 모래 알갱이가 한 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내 발바닥에 들러붙는 것 같다. 발바닥이 뜨거운 모래로 코팅이 됐다. 발가락 사이사이마저 뜨겁다. 나는 즉시 되돌아와 신발을 찾아 신었다. 가장 가까운 과일 가게로 달려가 킹코코넛을 들이켰다. 이때부터 나는 양산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우산을 휴대폰과 함께 반드시 챙겨서 외출하게 됐다. 




에어컨을 틀어주는 시원한 카페에 앉아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감상할 때만 예쁜 스리랑카의 태양.


태양 사진을 찍는 방법.  1.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보지 않는다.  2. 카메라를 든 손을 태양이 있는 방향으로 높이 들고  셔터를 누른다. 3. 재빨리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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