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10
8월 19일
적응이란, ‘지금부터 내가 이 부분은 용인하겠다. 받아들이겠다. 참아내겠다.’라는 결심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것이다. 이게 자유의지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별도리가 없어서 적응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적응의 대상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거나, 그 대상을 정복할 수 있다면 적응을 할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힘 빼지 않고 순응을 하느냐, 격렬히 반항을 하다가 적응에 이르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패배 비슷하게 적응을 시작하면 몸이 나의 결심을 따라주기도 한다. 기특한 경우다.
스리랑카에 오자마자 모기 기피제를 사 모았다. 피부가 축축해질 정도로 기피제를 뿌려댔다. 이 더위에 긴소매 옷을 입고, 팔토시도 했다. 그러나 모기는 기피제를 기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다. 옷 섬유도 뚫었다. 한 번 물 때 4~5방씩 물었다. 특공대냐고.... 주로 저녁 식사 시간에 하체 위주로 당했다. 왼쪽 복숭아뼈 주변으로 북두칠성이 새겨졌고, 양 무릎에 대칭하여 붉은 꽃이 활짝 피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모기에 물리면 몹시 아팠다. 가려운 게 아니라 통증이 있었다. 물린 곳이 쌔빨갛게 변했고 붓기도 심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모기 알레르기가 있는 거 아니냐, 댕기 모기에 물린 게 아니냐는 걱정도 많이 샀다. 그러나 30, 40방을 물려도 쇼크가 오거나 열이 오르지 않았다. 버물리를 늘 손에 쥐고 다니면서 물리면 냅다 발랐다. 그래 뭐, 모기가 있으면 물려야지 어쩌겠어라고 생각했다. 다른 도리가 없었으니까.
여전히 모기에 물리며 살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덜 물린다. 해가 지면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 물리면 이 악물고 모른 척을 한다. 의식하면 더 가렵다. 버물리도 잘 안 바른다. 손톱을 바짝 잘라서 잠결에 물린 데를 긁을 수 없게 만들었다. 요즘은 물려도 덜 붓고 덜 가려운 것 같다.
최근에는 더위에도 적응하겠다고 결심했다. 더위에 대한 굴복 선언이기도 하다. 나는 좀처럼 더위를 타지 않는 여름형 인간이었다. 여름에도 꾸준히 긴 옷을 입고 다녔다. 장마철에는 스카프까지 두르고 다녔다. 에어컨 바람은 늘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더워 봐라, 내가 옷을 벗나’ 하며 삼복더위를 비웃었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서나 부릴 수 있는 호기였다.
적도 열대 기후의 더위는 레벨이 다르다. 온몸의 기운이, 체액이 증발하는 느낌이다. 감히 양산 없이 양달로 나갈 수 없다. 양달을 보고 있노라면 박소담 배우가 뱀파이어 역할을 위해 오디션을 볼 때 햇빛으로 달구어진 땅을 핥는 연기를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지금 저 땅을 혀로 핥으면 혀가 녹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혀부터 녹기 시작해 천천히 전신이 녹아 모래 바닥에 스며드는 상상을 한다. 그건 아주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다. 절을 구경하러 갔다가 발바닥이 지져지는 고통을 체험한 바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꽤 유명한 불교 사찰이 있다. 절에 들어갈 때는 긴치마나 바지를 입고 신발은 벗어야 한다. 응달 진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맡기고 입구를 통과하면 넓은 모래 바닥이 펼쳐져 있다. 양달의 모래바닥. 뭐, 한여름 해변에서 걸어봤잖아?라고 생각하고, 아니 사실 별생각 없이 발을 디뎠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척추까지 뜨거움이 전해진다. 저마다 100℃로 달구어진 모래 알갱이가 한 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내 발바닥에 들러붙는 것 같다. 발바닥이 뜨거운 모래로 코팅이 됐다. 발가락 사이사이마저 뜨겁다. 나는 즉시 되돌아와 신발을 찾아 신었다. 가장 가까운 과일 가게로 달려가 킹코코넛을 들이켰다. 이때부터 나는 양산으로 더 많이 활용되는 우산을 휴대폰과 함께 반드시 챙겨서 외출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