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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24. 2023

안 죽인다며! 같이 산다며!

Ppaarami’s Diary 11

8월 19일

 

   또다시 바퀴벌레를 보았다. 이번엔 제법 능숙하게 약을 분사하고 뒤처리를 했다. 그 손이 한동안 찝찝한 건 어쩔 수 없다. 약 때문인가 촉감 때문인가. 그게 아니면 결심의 철회 때문인가.

     

  2018년에 처음 스리랑카에 왔다. 보름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주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그 무렵의 나는 나와 다른 삶의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주중에는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최대한 오래 누워있는 삶에 지쳐있을 때였다. 달라지고 싶은 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 속이 답답했었다. 

  그때도 스리랑카에 오자마자 모기 퇴치 용품부터 찾았다. 나는 모기에 정말 잘 물리는 체질인데, 모기를 잘 잡지 못한다. 눈도 손도 느리다. 그래서 새로운 나라에 갈 때마다 모기에 대항할 무기를 찾는다.(모기는 생각보다 위험하다.) 스프레이형 모기 '킬러'를 애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스리랑카에서는 약국이며 가게 몇 군데를 돌아다녀도 모기 죽이는 약을 살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모기 ‘기피제’를 샀다. 이게 무슨 효과가 있겠냐며 투덜거렸다. 죽이는 약을 써도 물리는데, 고작 기피제라니. 아쉬운 건 나이니 그거라도 수시로 몸에 뿌려대며 돌아다녔다. 수도와 호텔에서 멀어질수록 스리랑카 사람들의 진짜 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생활에서 내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모기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모기를 죽이지 않았다. 화장실이며 세면대에 무늬를 그리며 지나가는 개미도, 벽에 붙어 울어대는 도마뱀도, 바퀴벌레도, 거미도 죽이지 않았다. 그들을 보면서 모기 ‘기피제’를 다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충제를 썼다. 기피제는 여기에서 처음 봤다. 그 차이가 보였다. 죽이는 것과 피하는 것의 차이가.     


  여행이 끝났을 때, 나도 앞으로 모기조차 죽이지 않으며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실제로 그때부터 지난달까지 거의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지난달에 개미를 죽이기 시작했다. 이달에는 바퀴벌레를 죽이기 시작했다. 스리랑카에서 여행하며 한 결심을 스리랑카에서 살기 위해 깼다. 개미는 너무 많고 바퀴벌레는 너무 크다.   

  나는 다시 살생하는 것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이렇게 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스리랑카에 와서 첫 한 달은 호텔에서 지냈다. 나쁘지 않은 호텔이었다. 그렇다고 벌레나 모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별 불편함 없이 잘 지냈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다 날개뼈 근처가 간지러워 무심결에 손을 댔다. 손 끝에서 미지의 생명체가 느껴졌다. 그것은 내 손 끝에 차여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려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틀림없이 내 손과 그것의 신체 어딘가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때부터 벌레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다시 마음속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일단 발생하면 없애기가 아주 어려운 그것이 다시 마음에 자리를 잡았고, 자랐고, 나는 다시 죽이는 사람이 됐다.  나는 그게 내내 원통하다.      


  사실 바퀴는 그저 우연히 거기 있었을 뿐이다. 하필 나는 그 시간에 화장실에 갔을 뿐이다. 내가 방문을 열고 화장실의 불을 켜는 동안 바퀴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내가 바퀴를 발견하고 약을 가지러 갔다 오는 동안에도 바퀴는 가만히 있었다. 내가 약을 뿌리기 시작하고서야 움직였는데, 고맙게도 내가 있는 곳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는 끝까지 쫓아가면서 약을 분사했다. 거의 반통을 분사하고서야 멈추었다.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재빨리 도망쳤어도 좋았을 것을.      

  처리하지 않고 돌아섰다면 나는 밤새 그것이 몸을 납작하게 압축해 내 방 문틈을 통과하고, 발자국을 남기며 방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침대의 다리를 타고 기어올라 방충망을 뚫고 슥슥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상상을 하느라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공포다. 그래서 공포가 무서운 것이다.    


  처리를 잘 끝냈음에도 괜히 살갗 여기저기가 간지럽다. 무릎 뒤나 날개뼈 부근 같은 곳이. 기분도 찝찝하다. 손을 다시 씻고 싶다. 그러나 다시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찾으러 나온 바퀴2와 또 마주치지 말란 법이 없다. 하룻밤에 두 번은 겪고 싶지 않다. 바퀴가 있는 것은 어쩔 수없다. 마주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밤에는 방 밖으로 나갈 일이 없도록 수분 섭취 시간과 양을 잘 관리해야겠다.

  그나저나, 이번에 본 바퀴는 몸이 작았다. 전에 본 것들과는 다른 종이 었다. 내 집에는 그것들의 다양성마저 존재하는구나........



차마 바퀴벌레 사진을 올릴 수 없어서 귀여운 코끼리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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