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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Nov 28. 2023

폭우 속에서 툭툭 기사가 한 말

Ppaarami’s Diary  (12)

8월 29일

     

하루종일 흠뻑 비가 왔다. 어제 스리랑카에 가뭄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참이다.

스리랑카의 입장에서는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였을 테고 나에게는 장마를, 한국의 축축한 여름날을 느끼게 해 준 비였다. 반갑고 시원했다.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밖에서 조금 걸었다. 정취를 즐기며 느릿느릿. 그리고 툭툭을 불렀다. 금방 도착했다. 툭툭을 타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장막 같은 빗물 속에서, 툭툭 문짝에 드리운 천막 속에서 자꾸만 센티멘털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툭툭기사는 분투하고 있었다. 빗물사이로 안전을 확인하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와중에  내비게이션은 자꾸만 인터넷 신호를 잃었다.

   그는 얼마 못 가서 툭툭을 세웠다. 우버앱을 끄겠다며 내 목적지를 물었다. 대답을 하기 전에 왜 우버를 끄는지 알아야 했다. 안전과 관련된 문제다. 그는 일반적인 거리 당 운임료와 우버가 결정한 탑승 요금 및 수수료를 나에게 설명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수수료를 물고 나면 자신은 돈을 벌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우버가 제시한 요금만 내겠다고 했다. 그는 동의했다. 구글맵에 다시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구글맵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다시 차를 세웠다. 이 양반이 왜 이러나 싶어서 어깨너머를 들여다보니 그의 맵이 꺼져있다. 휴대폰 화면에는 그와 그의 딸인 듯한 아기가 다정히 눈을 맞추고 있다. 내 전화기를 건네주니 그건 또 괜찮단다. 

  “2킬로 직진.” 

  내가 내비 역할을 하기로 했다. 비는 잠깐동안 그쳤다가  폭주하기를 반복했다. 불안한 운행이 이어졌다. 그의 내비가 다시 신호를 잡았다. 차를 세우고 목적지를 다시 입력했다. 벌써 예상 도착시간보다 꽤 늦어졌다.  퇴근길 차량 러시가 시작됐다. 기사는 내비게이션 문제가 해결돼서 마음이 조금 놓였는지 그런지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4명이야. 나랑 와이프, 아이 둘. ”

  “응. 사진 봤어. 딸이구나.”

  “나는 새벽부터 일했어. 우리 가족을 위해 오늘 1만 루피를 벌어야 해. 5천 루피도 괜찮아. 그런데 오늘 새벽 6시부터 일했는데 5천 루피를 벌지 못했어. 아침 식사도 못했어.”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 스리랑카가 좋아? 무슨 일을 해? 따위의 스몰토크인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장르가 하드 해졌다. 우버 요금보다 더 받아내려는 수작일 수도 있다. 외국인 승객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다. 그저 하소연일 수도 있다. 지금 상황이 상황이지 않은가. 폭우에, 불안정한 인터넷에, 장시간의 공복.

  그는 내년에 큰 딸이 학교에 간다고 했다. 자신은 일하러 루마니아에 간다고 했다. 스리랑카는 나쁜 나라라고 했다.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을 벌 수 없다고.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스리랑카는 코로나와 맞물려 국가 부도위기를 겪고 최근 IMF구제 금융 요청을 했다. 물가는 치솟는데 정치인들은 이를 관리하지 않았고 서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졌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을 하소연으로 듣기로 했다. 그는 새벽 6시에 일을 시작했는데 12시간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했건만 5천 루피(한국돈으로 약 2만 원)를 벌지 못했고, 폭우 속에 울고만 있을 수도 없다. 그러니 뒷자리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하소연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인터넷이 끊길 때마다 그는 휴대폰의 홈버튼을 눌렀을 테고 그때마다  한 살 된 딸의 얼굴이 디스플레이되어서 그는 오늘따라 더 조바심이 나고 괴로웠을 것이라고.      


  그런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 세상살이의 퍽퍽함에 압도되는 날. 폭우나 폭설이 매섭거나 믿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벽이 눈앞을 가로막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날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어떤 사람은 그 괴로움을 속으로 삭인다. 어떤 사람을 하소연을 한다. 다른 도리가 없다는 듯이.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은 연약한 사들이다. 그들은 가엽고 애틋하다. 

  나는 그의 어깨를 바라보며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내가 모르는 싱할라어로 한 말에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스리랑카는 나쁜 나라가 아니라고. 경제가 나쁠 뿐이라고 나름대로 위로를 하며 하늘이 개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 약속된 금액보다 많은 돈을 주었다. 그는 돈을 잘못 주었다고 말했다. 나는 맞게 주었다고, 저녁을 먹고 좀 쉬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고맙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울먹일 것 같아서 얼른 돌아섰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다. 고작 그 돈을 더 주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그는 그저 고마워했다. 행운을 빈다고 말하려다 관두었다. 나는 내가 탑승했던 툭툭기사 누구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어깨와 그 표정은 가끔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외출을 할 때마다 툭툭을 탄다. 툭툭이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툭툭 때문에 속상한 날도 많았다. 애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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