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17)
10월 07일
랄라(가명)가 새벽부터 문자를 보냈다. 예의 바른 이 친구가 이 시간에 연락을 한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게다가 펑펑 우는 이모지를 8개나 보냈다. 사진도 첨부했는데, 영어로 작성된 이메일을 캡처한 것이었다. 대충 훑어보니 한국에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의 서류 전형에 통과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8월에 룰루와 랄라가 나란히 나를 찾아왔다. KF라는 한국 기관에서 한국어 펠로십 프로그램 참가자를 모집하니 지원 서류 작성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마감 4일 전이었다. 필요한 서류는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이들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하게 나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작성해 온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면서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라고 했다. 우리나라 대학생이라면 필요한 서류를 얻기 위해 노트북을 펼쳤겠지만 이 아이들은 학교 행정실로 갔다. 직접 하드카피를 발급을 받아야 한다. 학교에서 기간 내에 성적증명서와 재학증명서를 발급해 주느냐가 관건이었다. 서류 발급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고, 기간 내에 서류를 보낼 수 없을 거라고 지레 생각한 아이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음에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얘들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래....
나는 무조건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해보자고 아이들을 다독였다. 그리고 4일 동안 자기소개서를 거듭 수정하고, 지원서를 작성하고, 추천서를 받고, 학업을 증명하는 서류도 발급을 받아서 간신히 제출을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참 정신이 없었고, 무조건 기한 내에 서류를 제출한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내 입장에서는 목표를 이루었으므로 그다음은 없었다. 그래서 새벽에 랄라가 보낸 메시지가 낯설었다.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아도 같은 내용이었다. 랄라는 너무 기뻐서 우는 이모지를 마구 입력했고, 가능한 일찍 나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새벽 5시에 보낸 것이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왜 이렇게나 일찍 일어났냐고 물어보았다. 랄라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도대체 몇 시간 동안 기뻐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 잘했어요. 이제 잘 자요.]
랄라에게 답장을 보내고서 정작 나는 잠이 달아났다.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앉으면서 룰루(가명)에 대해 물을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서류 전형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기뻐서 잠 못 이룬 아이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할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룰루도 같은 지원 했다. 둘이 나란히 앉아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같이 한국에 가면 좋겠다고 김칫국을 마시면 즐거워했더랬다.
룰루에게서는 정오가 지날 때까지도 연락이 없었다. 나는 룰루가 서류에서 불합격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고민을 하기 위해 청소를 시작했다. 따로 불러서 위로를 해야 할까. 그러다 울기라도 하면 어쩌지. 만나면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까.
'혹시 이것이 실패라고 생각하니? 한국에 가려는 꿈이 좌절됐다고 생각하니? 그렇다면 한국행을 포기한 것이니? 실패는 포기할 때만 가능한 것이고, 다음에 다시 지원하면 갈 수도 있으니 아직 실패가 아니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포기를 해도 괜찮다. 실패일지라도 참 다행이다. 이제 스무 살 중반인 너에게 이것은 첫 실패일 텐데, 처음 실패를 한 순간에 네 옆에는 든든한 가족과 사랑스러운 친구가 있지 않니. 혼자서 첫 실패를 맞이하는 사람도 많은데, 너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을 하면 위로가 될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는 위로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INFP력 최고치를 가동했더니 열이 올랐다.
머리를 식힐 겸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룰루에게서 문자가 왔다. 역시 사진이 첨부됐다. 랄라가 보낸 것과 정확히 같은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룰루 이 자식이 이메일을 신경도 안 쓰고 있다가 이제야 확인을 하고 내게 알린 것이다. 두 사람은 다시 함께 나란히 앉아서 인터뷰를 준비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도울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즐겁다. 한국에 가는 것이 소원인 아이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나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