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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Dec 19. 2023

한국은 제 꿈의 나라입니다.

Ppaarami’s Diary(19)

10월 13일


  지금 내가 ‘우주여행을 꼭 해보고 싶은’ 상태라면 어떨까. 

  우주여행은 십여 년만 지나면 상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고 풍선을 타고 가는 우주여행의 가격은 수 억 원대에 형성되어 있다고 하니 이를 평생의 꿈으로 삼으면 살아생전 한 번쯤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주여행이 나의 버킷리스트 일 순위가 된다면 나는 틈틈이 로켓이나 우주인에 관한 기사를 찾아서 읽고, 관련 기술의 발전이나 우주에서의 생존법 같은 지식을 쌓는 것을 취미로 삼을 것이다. 우주여행을 위한 적금통장을 만들고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우주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또는 ‘나는 우주여행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내가 무슨 우주여행이야, 지구에서도 못 간 데가 많고만.     

  우주여행에 약간은 관심이 있으면서도 갈 마음은 별로 없는 사람이 된 것은 내가 복세편살주의자가 됐기 때문이다. 우주는 복잡하므로, 우주로 가는 과정 또한 지겹게 복잡할 것 같으니 가지 않는 것이 편하게 사는 길이다. 더 큰 이유는 여전히 우주는 일부 선택된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큰 꿈을 가지고 있으면 현재가 버거워지는 법이다. 내가 지금 백수인데 우주여행 적금통장이 웬 말이며 우주에서의 생존법이라니, 세상에 감도 안 온다. 꿈이 작으면 현재의 즐거움을 소소하게 누리면서 살 수 있다. 일 년에 한 번쯤 기차를 타고 국내를 여행하고 계절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충동구매 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후식으로 먹을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소소한 즐거움 속에서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주여행을 포기한 자의 특권이다. 포기하는 건 어렵지 않다. 몇 가지 소스면 충분하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우주여행은 왕복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주인처럼 상당한 신체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어차피 못 갈걸? 

십 년 후면 내 나이가 몇인데, 그 나이에 무슨 우주여행이야. 골다공증 걸리면 어쩌려고.     


  사실 나는 우주여행이라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20대에 기회만 있으면 여행을 다니던 것과 달리 요즘은 여행 자체에 별로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런 내가 우주여행을 가니 마니 논하게 된 것은 스리랑카 학생들과 붓글씨 쓰기 문화 수업을 한 이후다. 

  지난 한글날을 앞두고 붓글씨 쓰기 수업을 했다. 아이들은 한국에 관한 문구 하나씩을 마음에 품고 와서 그것을 종이에 옮겼다. 아이들은 먹 찍은 붓을 잡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나도 그랬다.) 손에 힘을 단단히 주고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 가는 표정들이 진지했다. 어떤 아이는 좋아하는 K-POP의 가사를 적었고, K드라마의 명대사를 적는 아이도 있었다. 세종대왕 4글자로 4행시를 짓고, 보름달과 태권도라는 단어를 그 단어에 어울리는 글씨체로 표현하고 글씨 옆에 그림도 그렸다. 그리고 한 아이는 ‘한국은 제 꿈의 나라입니다.’라고 썼다. 아이는 정말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랑카의 많은 아이들이 비행기를 탈 수 없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이십 대 중반이지만 여권을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택시도 잘 못 탄다. 지하철은 없고 기차는 가끔 탄다. 고향집에 갈 때는 5시간이고 8시간이고 버스를 탄다. 이들은 커피 한 잔에 500~600(2천 원~2천400원) 루피인 커피숍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교육을 받았고, 함께 교육받은 친구들이 있고 대학 시절의 추억이 있고 영어와 한국어로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며 살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다만 한국어를 배운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한국어를 배웠으니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애초에 한국에 가고 싶어서 한국어를 공부한 아이들도 많다. 한국어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한국의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싶다. 한국을 여행하고 싶다. 한국어 교재에서 본 지하철이라는 것을 타고 교재에서 본 가을 낙엽이나 겨울 눈꽃을 보러 가고 싶다.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다. 마땅한 장래희망이다. 다만 비용이 문제다. 그건 큰 문제다. 아이들이 자력으로 한국에 갈 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내가 우주에 갈 비용을 마련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만큼 희망도 크디커서 붓을 쥐고 '한국은 제  꿈의 나라입니다'라는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한국어 시험을 보면서 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장학금을 받아서든, E-9(비전문취업비자) 비자를 받아서든 한국으로 가려고 한다. 나의 청춘이 끝날 무련 줄임말이 유행했다. 그때 복세편살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나는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고로 나는 우주에 가지 않는다. 악착 같이 돈을 벌어서 우주에 갈 비용을 마련하지 않는다. 그 대신 봉사활동을 하러 스리랑카에 왔다. 그래서 우리는 만났다. 인생이 이렇다니까.


  한동안 나는 스리랑카의 학생들이 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공부했다. 방법이 많아서 열심히 한 게 아니라, 없는 걸 억지로  찾아내는 데 힘을 뺐다. 방법이 없지는 않으니 이들 중 누군가는 해 낼 것이다. 치열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치열하게 노력할 것이다. 노력한 모두가 목표한 바로 그것을 해 낼 수는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 더 좋은 것을 발견하기를. 치열함 속에서 평화를 잃지 말기를...





화선지에 글을 쓰기 전에 연습을 하고 있다. 저 문장을 몇 번이고 쓰는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스리랑카 콜롬보에 기항 중인 한국의 구축함, 광개토대왕함. 지난 10월 26일에 스리랑카에 와서 이틀을 머물렀다. 배 위에서나마 잠시한국 영역에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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